중국 VC, 왜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 안 할까

중국 VC(벤처캐피탈)는 한국 스타트업에 투자 안 한다.
중국 자본을 등에 업으려면 실리콘밸리, 이스라엘 기업을 이겨야 한다.
요즘 중국 벤처캐피털 업계에서 맹활약하고 있는 판다 캐피털 창립자 피터 마오(毛圣博)가 한 말이다. 그는 2017년 포춘(중문판)이 뽑은 40세 이하 비즈니스 리더에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 중국의 스타 VC. 누구보다 먼저 샤오미(小米)의 가능성을 감지해 초기 투자했고, 모바이크와 FACE++의 초기 투자자로도 유명하다.  

지난 13일 강남 디캠프에서 유니콘 탄생의 비결을 주제로 제3회 차이나챌린저스데이가 열렸다. 이번에는 기존 차이나챌린저스데이와는 조금 다르게 질의응답을 중심으로 중국 스타 VC와의 끝장 토론이 펼쳐졌다. 오후 7시부터 시작된 이날 토크쇼는 150여명의 청중들이 약 2시간 반 동안 자리를 지켰다.

※유니콘: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

피터 마오 판다 캐피탈 공동 창립자. [사진 아이헤이마]

피터 마오 판다 캐피탈 공동 창립자. [사진 아이헤이마]

Q & A (끝장 토론)
질의 응답 섹션에는 피터 마오 판다 캐피탈 창립자와 장강상학원(CKGSB) 동기인 정주용 비전크리에이터 대표(아래 사진 왼쪽)도 나섰다.

정주용 비전크리에이터 대표(좌)와 피터 마오 판다 캐피탈 공동 창립자(우). [사진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

정주용 비전크리에이터 대표(좌)와 피터 마오 판다 캐피탈 공동 창립자(우). [사진 인천창조경제혁신센터]

중국 VC들이 한국 스타트업 투자에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피터: 한국은 화장품, 디자인, 게임, 메디컬 등 우수한 분야가 많다. 하지만 VC 입장에서 봤을 때 시장의 크기가 작다. 특히 모바일 서비스 분야에 투자하기 위해서는 최소 10억 명의 인구가 필요하다는 판단이다. 한국은 인구가 5000만이고, 동시에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한 아이템이 많지 않다. 허나 브랜딩 능력이 특출나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가 대표적인 예다. 중국의 대표 VC인 IDG캐피탈차이나로부터 투자를 유치한 후 승승장구하고 있다. 뉴발란스, MCM도 마찬가지다. VC는 아니지만 중국 대표 ICT 기업 텐센트는 한국 스타트업 투자에 적극적이다. 배틀그라운드 개발사 블루홀 투자 등이 그 예다.  


정: 중국 대기업들은 몇백 억씩 한국 회사에 투자한다. 국내 기업이 투자를 받으려면 일단 한국에서 검증된 회사여야 한다. 중국에 먼저 오는 건 위험하다. 포인트는 한국이나 미국, 유럽 등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를 쌓고 중국에 진출하는 것이다. 중국 자본은 엄청 스마트해졌다. 이들이 비교하는 상대는 실리콘밸리, 이스라엘에 있다. 이 지역의 경쟁사를 살펴보고 중국에 진출해야 한다. 또 단순 서비스는 안 된다. 이미 중국에는 온갖 서비스가 다 있다. 원천기술, 콘텐츠, 브랜드로 차별화가 되지 않으면 중국서 생존 확률이 없기 때문에 VC 투자가 이뤄질 수 없다.

차이나챌린저스데이. [사진 차이나랩]

차이나챌린저스데이. [사진 차이나랩]

중국 VC의 투자 기준은 뭔가요?
피터: 우선 마켓이 커야 한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시장을 갖고 있느냐다. 스타트업은 성공률이 낮기 때문에 시장이 협소하면 안 된다. 예전에 샤오미 초기 투자를 결정했을 때도 사실 급속도로 커지는 스마트폰 시장을 겨냥했었다. 다음은 타이밍이다. 지금 왜 이 비즈니스 모델이 나왔는지, 과거에는 왜 이게 없었는지 등을 면밀히 체크한다. 그리고 팀원이다. 팀원들이 사업과 잘 맞는지 전체 DNA를 살펴본다. 가령 인공지능(AI) 회사라면 팀원 중 최소 한 명은 기술 수준이 업계 선두를 달려야 한다. 엔터테인먼트 회사라면 CEO의 기질과 사업 방향을 본다.  

정: 모바이크는 원래 다른 VC들은 드롭했던 스타트업이다. 하지만 판다 캐피탈이 모바이크에 초기 투자했던 이유는 기술 차별화였다. 피터와 팀원들은 실제로 자전거를 타며 바퀴에 펑크는 안 나는지, 도난당하지는 않는지 등을 다 검증하고 투자를 결정했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투자사 서비스를 검증하고, 만족도를 실험해본다.  

지금 중국에서 가장 핫한 투자 분야는?
피터: 첫째, 인공지능이다. 방대한 인구를 기반으로 빅데이터가 발생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데이터를 수집해 여러 곳에 머신러닝을 적용하고 있다. 한 텔레마케팅 회사에서는 인공지능이 전화를 하고 있다. 목소리가 정말 사람 같다. 심지어 콜센터의 백색 소음까지 구현하며 중국의 수많은 사투리도 인식할 수 있다. 이 경우 인건비를 크게 줄일 수 있어 획기적이다. 또 중국에서는 엑스레이, CT, MRI 등을 찍어도 정확히 진단할 수 있는 의사가 부족한데 이 문제를 인공지능이 해결해주는 솔루션도 주목을 받고 있다.  

둘째, 의료보험 분야다. 커버리지가 꾸준히 확대되면서 누구나 병원을 가게 됐다. 관련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셋째, 틱톡(抖音) 같은 라이프스타일/엔터테인먼트 앱도 요즘 굉장히 핫하다. 또 뮤지컬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유망한 분야다. 속도가 중요한 VC들이 관심 있게 보는 분야는 아니지만 뮤지컬 같은 흥미로운 시장들이 많다.  

정: 중국의 소비 업그레이드(고급 소비) 추세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서 언급한 젠틀몬스터가 성공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이 중국 시장에 접근할 때 '저가' 전략보다는 '세미 럭셔리'로 다가가는 게 좋을 것이다. 유럽의 100년 된 브랜드와 차별화를 시키는 것이다. 하다못해 훠궈(중국식 샤브샤브) 레스토랑도 점점 고급화되는 추세다.

피터: 한국에서 꽤 인지도를 쌓은 회사라면 채널 파트너를 통해 중국 시장에서 더 큰 성장을 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겉으로 보이는 것을 매우 중시한다. 디자인이 중요하다. 요즘 불티나게 팔리는 게 다이슨 청소기다. 다이슨에서 내놓은 수십만 원짜리 헤어드라이어도 없어서 못 판다. 자동차도 옛날엔 아우디가 대세였지만 지금은 벤츠가 영(Young, 젊은)한 디자인을 밀면서 잘 나가고 있다. 포르쉐, 벤틀리 등도 중국인 입맛에 맞춘 SUV를 내놓고 있다. 이런 사례들을 한국 기업이 많이 참고했으면 한다.

중국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다이슨 헤어드라이기. [사진 소후]

중국에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다이슨 헤어드라이기. [사진 소후]

중국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싶은데 어떤 기준으로 투자처를 선택해야 할까요? 또 60% 이상의 유니콘에 BAT가 투자한 걸로 알고 있는데, 자칫 투자한 스타트업이 BAT가 투자한 회사에 밀리는 건 아닐지요?
피터: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 투자는 국내(중국)에서도 초미의 관심사다. BAT는 거의 모든 것에 투자하고 있다. 요즘에는 까르푸 같은 오프라인 마트 등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도 투자한다. "우리를 뛰어넘는 회사가 나타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을 해소키 위한 공격적 투자라고 볼 수 있다. 중국에 투자하고 싶다면 우선 문화를 아주 심도 있게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기관 투자가 안전하다. 개인 혹은 해외 기업이 딜을 따내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한중 양국 간 문화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다면 실패하고 만다. 투자는 현지화가 중요하다.  

한국인 개인이 중국 기업에 투자하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하지만 중국 생활 10년 이하라면 엔젤투자자 자격으로 투자에 성공할 확률이 극히 낮다. 그냥 상장사에 투자하는 것이 낫다.  

정: 중국에 1만 개의 VC가 있다. 그들과 경쟁해야 하므로 성공률이 굉장히 낮다. 정말 좋은 딜이 한국까지 왔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현지 경쟁이 굉장히 치열하다. 판다 캐피탈의 경우 1년에 1000개가 넘는 회사와 만난다. 그래도 1년에 몇 개 투자 안 한다. 또 BAT가 투자한 회사와 경쟁할 것 같은 회사에는 투자하지 않는 게 낫다.  

그리고 한국인이 중국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느냐 마느냐가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투자한 다음이다. 투자 대박이 나도 돈을 빼올 수가 없다. 중국은 세계에서 자금 유출 문제를 가장 엄격하게 다스리는 국가다. 위안화는 들어가기는 쉽지만 나오기는 정말 어렵다. 또 달러로 투자가 가능한 케이스는 한국 개인투자자를 받지 않는다. 피터 말처럼 그냥 상장사에 투자하는 게 낫다. 나스닥, 홍콩에 숨어있는 옥석이 꽤 있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해 성공한 중국 기업이 있나요?
피터: 블록체인 기술 응용 케이스는 아직 많지 않다. 개인적으로 이 시장은 그렇게 조급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블록체인을 인터넷이라고 생각해보자. 1세대 인터넷 기업이 다 성공한 건 아니었다. 지금 남아있는 기업이 별로 없다. BAT는 2세대다. 그러므로 더 기다려봐야 한다. 지금 주목하는 부분은 블록체인 기술이 어디에 응용되느냐이다.  

정: 블록체인 시장은 올해, 내년 중에 킬러앱이 나와야 한다. 그러니까 검증된 솔루션/사례가 나오면 본격적인 도약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한편 중국의 블록체인 사업자들은 "일단 기술을 적용하고 보자!"는 마인드다. 블록체인을 철학적, 본질적으로 접근하는 미국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누가 승자가 될지는 잘 모르겠다.

이탈리아 밀라노에도 진출한 모바이크. [사진 셔터스톡]

이탈리아 밀라노에도 진출한 모바이크. [사진 셔터스톡]

중국에 100개가 넘는 공유 자전거 업체가 있었지만 모바이크 등 극소수만 생존했습니다. 무슨 차이가 있었나요?
피터: 가장 초기의 공유 자전거 업체는 모바이크, 오포(ofo)다. 두 회사를 다 가봤다. 그런데 모바이크를 선택한 이유는 자전거 혁신을 이뤘기 때문이다. 또 실시간으로 이동 경로, 주행 거리 등 데이터를 쌓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물론 헬로바이크(알리바바 투자) 같은 괜찮은 곳도 있었지만 대다수 업체들은 제품(자전거) 기술 개발에 집중하지 않았다. 더불어 모바이크는 주주들이 훌륭한 데다 재무투자 성격이었기 때문에 기획과 개발에 역량을 쏟아부을 수 있었다. 이용자의 키에 따라 자전거 안장 높이가 자동으로 조절되는 기술, 소재 경량화 등이 대표적인 예다.  

정: 모바이크 연구소를 간 적이 있다. 보안상 말할 수는 없지만 자전거가 아닌 모델도 있었다. 왜 이렇게 다양한 걸 만드냐고 물어봤더니 중국은 넓고 도시마다 적합한 모델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기술 심화로 서비스 고도화를 이루는 게 모바이크의 핵심 가치다.  

이하는 피터 마오 판다 캐피탈 공동 창립자의 강연 요지.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VC는 한 방의 홈런을 위해 배트를 끊임없이 휘두릅니다.
주식투자의 신 워런 버핏이 배트를 휘두를 때마다 안타를 치는 것과는 정반대죠. VC가 하는 모든 일은 오직 홈런(대박)을 치기 위해서입니다. 대박 투자 1~2개로 VC의 성공이 판가름 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타이밍이 굉장히 중요하죠. 아무리 걸출한 서퍼라도 파도가 제대로 안 일면 말짱 꽝인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인터넷이라는 파도를 잘 탔기 때문이죠.  

스타트업은 왜 망할까?
VC 방법론을 알아보겠습니다. 일단 본질을 꿰뚫고 '상식적'으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중국에 리즈웨이커(荔枝微课)라는 성, 고부관계 등을 팟캐스트 형식으로 전달하는 플랫폼이 있습니다. VC의 시선으로 이 플랫폼을 한 번 바라볼까요? 일단 리즈웨이커와 형식은 다르지만 콘텐츠는 유사한 잡지가 얼마나 팔리는지 알아봤습니다. 시장이 너무 작더군요. 마켓 자체가 작기 때문에 비즈니스가 잘 될 수 없습니다.

[사진 소후]

[사진 소후]

또 얼마 전 중국에서 O2O 세차 서비스가 우후죽순 생겼었는데요. 쉽게 말해 좋은 세차장을 발견하는 앱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비즈니스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사람들은 집에서 가깝거나 이미 이용해본 세차장을 선택하기 마련이기 때문이죠. 앱들이 경쟁적으로 할인 쿠폰을 뿌려 잠깐 핫하긴 했지만 할인이 사라지자 유저를 잃고 말았습니다.  

지난해 뜨거운 이슈였던 무인편의점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인편의점 상품마다 RFID(무선인식) 태그가 부착되는데요. 코스트를 따져보면 오히려 인건비가 더 싸다고 생각합니다. 또 인간 판매원이 있으면 물건 정리도 하고 손님을 위해 상담도 해줄 수 있죠. 도시락을 데워준다든가 하는 여러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편의점 무인화는 효과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인편의점. [사진 소후]

무인편의점. [사진 소후]

성공하는 공유경제 모델은 따로 있다
어떤 아이템이 공유경제 사업에 알맞을까요? 우선 자본 문턱이 높고 사용 단가가 낮아야 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이죠. 에어비앤비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반면 공유 보조배터리는 성공할 수 없는 모델입니다. 보조배터리 가격은 30위안 정도로, 가정용, 차량용, 사무실용 3개를 사도 부담이 안됩니다. 사용빈도도 그렇게 높지 않죠. 또 아이템의 표준화 여부가 중요합니다. 아이템의 개성이 중요하다면 공유경제에 맞지 않습니다.

공유 보조배터리. [사진 소후]

공유 보조배터리. [사진 소후]

유동성도 있어야 합니다. 공유 자전거는 이용한 뒤 길가에 놔두면 다른 사람이 타고 가지만 공유 보조배터리는 반드시 반납처가 있어야 합니다(길거리에 보조배터리를 놓을 순 없으니까요). 공유 우산, 공유 의류도 보조배터리와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언급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죠.  

행사가 끝난 후 피터 마오와 교류하기 위해 줄을 선 참가자들. [사진 차이나랩]

행사가 끝난 후 피터 마오와 교류하기 위해 줄을 선 참가자들. [사진 차이나랩]

 
차이나랩 이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