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세 아이가 성폭행·살해됐는데도…가해자 비호로 발칵 뒤집힌 인도

14일 인도 카슈미르의 겨울 수도인 잠무에서 시민들이 8세 소녀 아시파 바노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범인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촛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14일 인도 카슈미르의 겨울 수도인 잠무에서 시민들이 8세 소녀 아시파 바노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범인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촛불 시위를 벌이고 있다. [EPA=연합뉴스]

인도에서 여성을 상대로 한 성범죄에 항의하는 시위가 전국으로 퍼지고 있다. 인도 NDTV에 따르면 15일(현지시간) 수도 뉴델리와 뭄바이·방갈로르 등 주요 도시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범죄를 처벌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영국 가디언은 이날 시위가 2012년 뉴델리의 ‘인도 버스 집단 성폭행 사건’ 이후 벌어진 최대 시위라고 전했다. 당시 23세 여대생 조티 싱은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중 운전자 등 남성 6명에게 성폭행당했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사망했다. 
사건으로 인도 전역에서 시위가 벌어졌고, 인도 정부가 관광객 감소를 우려할 정도로 전세계에 공분을 일으켰다. 범인 중 4명은 지난해 5월 사형이 확정됐다.
 
15일 시위 역시 잇따라 발생한 끔찍한 성범죄로 촉발됐다. 특히 최근 전모가 드러난 8세 소녀 성폭행 피살 사건이 인도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지난 1월 인도 북부 잠무 카슈미르 한 마을의 무슬림 소녀 아시파 바노가 숲속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경찰 수사 결과 최소 3명의 남성이 바노를 납치·감금하고, 약물을 먹인 뒤 수일에 걸쳐 집단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끝내 바노를 목 조르고, 돌로 내리쳐 살해했다.  
 
사건은 당초 언론에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 최근에야 용의자의 변호인이 경찰의 기소를 방해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세상에 드러났다. 심지어 용의자 중 한 명은 경찰이었다. 
15일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 열린 성범죄 항의 시위에 참가한 어린이가 아동성범죄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진 길에 앉아 있다. [REUTERS=연합뉴스]Adnan Abidi

15일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서 열린 성범죄 항의 시위에 참가한 어린이가 아동성범죄를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진 길에 앉아 있다. [REUTERS=연합뉴스]Adnan Abidi

이후에 벌어진 일은 국민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집권당인 인도국민당(BJP) 소속 잠무 카슈미르 자치정부 장관 2명이 용의자 기소 반대 시위에 참여한 것이다. 힌두교도인 용의자들은 무슬림을 겁주려 범죄를 저질렀다고 실토했는데, 힌두 그룹이 용의자를 비호하는 시위를 열었고 여기에 집권당 정치인이 동참한 것이다. 
 
아동 성범죄 사건이 종교 갈등으로 비화하면서 국민적 분노는 나렌드라 모디 총리까지 향했다. 결국 지난 13일 인도 대법원이 직접 용의자 측의 법 집행 방해에 대해 경고했고, 14일엔 시위 참가 장관 2명이 사임했다.
여성부 장관은 아동 성폭행범의 사형을 요구했고, 모디 총리는 철저한 수사를 약속했다.
 
지난해 6월 발생한 미성년자 성폭행도 지난주 수사가 시작됐다. 가해자는 우타르 프라데시주의 BJP 소속 의원인 쿨디프 싱 센가르. 피해자는 16세 소녀였다. 
피해자 가족에 따르면 그는 일자리를 주겠다는 구실로 소녀를 데려가 경호원을 보초 세워둔 채 성폭행을 저질렀다. 가족들이 경찰에 수사를 요청했지만 사건은 약 10개월간 묻혀있었다. 
지난주 피해 소녀가 의원의 집 앞에서 분신을 시도하고, 소녀의 아버지가 경찰에 구타당해 숨진 후에야 사건은 공론화됐다. 인도 중앙수사국(CBI)는 지난 14일 센가르 의원을 체포했다.
14일 카슈미르 시나가르에서 시민들이 8세 소녀 성폭행 살해사건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힌두교도인 용의자들이 무슬림을 겁주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털어놔 사건은 종교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14일 카슈미르 시나가르에서 시민들이 8세 소녀 성폭행 살해사건을 규탄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힌두교도인 용의자들이 무슬림을 겁주기 위해 범죄를 저질렀다고 털어놔 사건은 종교 갈등으로 비화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런 가운데 지난 9일에도 구자라트주 수라트에서 성폭행당한 뒤 살해당한 소녀의 시신이 또 발견됐다. 15일 현지 경찰은 “86곳에 상처를 입은 소녀의 신원을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인도는 2012년 버스 집단 성폭행 사건 이후 성범죄 처벌을 강화했다. 일선 경찰서에 성폭력 담당 여성 경찰관을 배치하는 등 대책도 마련했다. 하지만 여성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국가범죄기록원의 최신 통계에 따르면 2016년 인도 전역에서 신고된 성폭행 범죄는 3만 8947건이었다. 2011년 2만 4206건보다 61% 증가한 수치다. 또 2016년 아동 성범죄는 1만 9765건 발생해 2015년에 비해 82% 증가했다. 범죄 피해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많아 실제 수치는 훨씬 큰 것으로 추정된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