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전 계약의 효력은?…대법, "숙명여대 부지 무상 사용 적법"

 일제 강점기 옛 대한제국 황실의 재산을 관리하던 이왕직(李王職)이 허가한 국유지 사용은 현재에도 효력이 있을까. 6년 넘게 끌어온 소송에서 대법원이 ‘효력이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물론 최초 사용 허가 이후 80년 동안의 경과를 고려한 결정이다. 

대법원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숙명여자대학교를 운영하는 학교법인인 숙명학원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를 상대로 낸 변상금 부과처분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대법원이 숙명여대 학교부지를 둘러싼 소송에서 다시 숙명여대의 손을 들어줬다. [연합뉴스]

대법원이 숙명여대 학교부지를 둘러싼 소송에서 다시 숙명여대의 손을 들어줬다. [연합뉴스]

숙명여대의 국유지 무단 사용 논란은 8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숙명여대의 전신인 명신여학교는 고종의 계비인 순헌황귀비가 1906년 설립했다. 38년 숙명학원은 대한제국 황실 재산을 관리하던 이왕직 장관에게 현재의 서울 청파동 땅 2만㎡를 학교 부지로 사용하는 것을 조건으로 기간 제한 없이 무상 사용 승낙을 받았다. 숙명학원은 당시의 무상 대부 문서를 아직 보관 중이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이 땅의 소유권은 복잡하게 얽혔다. 구 황실재산으로 분류돼 국유지로 전환된 뒤 구황실재산 사무총국이 관리하다 63년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문화재관리국으로 관리 주체가 바뀌었다. 89년엔 특별회계 폐지로 재무부로 소관부서가 변경됐고 서울 용산구청장에게 관리사무가 위임됐다.  

용산구청은 92년 “숙명여대가 국유지를 무단 점유하고 있다”며 20억여원의 변상금을 부과했고 숙명학원은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냈다. 치열한 법정 다툼 끝에 대법원은 94년 숙명학원의 손을 들어줬다. 38년 이후 숙명학원이 학교부지를 무상으로 대부받아 점유·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변상금 부과처분은 위법하다는 판단이었다.


숙명여대 부지를 둘러싼 소송전은 18년 만에 다시 벌어졌다. 기획재정부에 의해 해당 토지의 관리 권한을 넘겨받은 캠코가 2007~2012년의 무단점유에 대해 73억여원의 변상금을 부과하고 매년 14억원의 대부금을 지급하라고 통보하면서였다. 숙명학원은 다시 반발해 부과처분 취소소송을 냈고 재판은 6년 동안 이어졌다.

서울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대 캠퍼스 [중앙포토]

서울 용산구 청파동 숙명여대 캠퍼스 [중앙포토]

 
1·2심 재판부와 대법원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인 일제 강점기 이왕직과 숙명학원이 체결한 사용대차 계약을 유효하다고 봤다. 이왕직 장관과 기한 없이 토지를 무상 사용하는 대차 계약을 맺은 것이 인정되고 국가는 옛 황실재산법에 따라 이 계약을 승계했다는 것이다.

해당 부지가 국가 소유로 넘어간 이후 관리당국이 수차례에 걸쳐 사용을 승인해 줬고, 건물의 건축이나 증축도 허가한 사실도 판단의 근거가 됐다. 캠코는 92년 용산구청의 변상금 부과 사례를 들어 무상 대차 승낙의 의사 표시를 철회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용산구청이 패소 이후에 건물 증축 등을 허가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왕직 장관이 구 대한제국 황실 소유 토지를 숙명여대 학교부지로 무상 사용할 수 있도록 승낙한 사용대차 계약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