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 15시간 전부터 줄섰다···압구정 '노숙 대기' 치과, 왜

10일 오후 10시, 압구정 투명치과 앞에 가장 먼저 도착한 대기자 손모(24)씨와 이모(25)씨. 김정연 기자

10일 오후 10시, 압구정 투명치과 앞에 가장 먼저 도착한 대기자 손모(24)씨와 이모(25)씨. 김정연 기자

“싸서 여기로 온 건데 이 꼴이 난 거죠.”
 
지난 10일 오후 10시, 서울 압구정의 한 치과 문 앞에 사람들이 사과박스를 깔고 앉아있었다. 치과가 진료를 시작하는 건 15시간 뒤인 이튿날 오후 1시부터다. 치과 앞에 진을 친 사람들은 보조배터리, 덮을 옷 등 밤샘 준비물을 갖추고 대기 태세에 돌입했다.
 
이모씨가 밤샘을 위해 챙겨온 준비물과, 모기를 쫓기 위해 나가서 사 온 모기약. 김정연 기자

이모씨가 밤샘을 위해 챙겨온 준비물과, 모기를 쫓기 위해 나가서 사 온 모기약. 김정연 기자

이들은 지난 5월부터 시간과의 싸움을 하고 있다. 병원이 싼값을 미끼로 '묻지 마 호객'을 한 뒤 진료 용량을 초과하자 사실상 손을 놓고 있어서다. 울산에서 밤 기차를 타고 올라왔다는 황모(23)씨는 “지방 치과에서는 800만원, 여기는 300만원이었다. KTX 왕복 비용 합해도 다른 곳보다 훨씬 쌌다”고 말했다.

 
문제가 시작된 건 지난 5월 ‘투명교정 부작용’으로 이 치과가 언론에 보도되면서부터다. 병원 측은 경영난을 이유로 쓰던 건물 하나를 통째로 휴진한 채 별관에서만 진료를 했다. 환자들에게는 ‘선착순’으로만 진료를 받는다고 공지했다. 이모(25)씨는 “5월 9일 진료 이후 예약은 문자 한통으로 취소 통보받았다”고 말했다.
 
사태는 5월 이후 계속 악화되고 있다. 이달 들어서는 1번 대기자가 되려면 최소 전날 오후 12시 전에 치과 앞에 도착해야 한다. 경기도 광주에서 왔다는 손모(24)씨는 “6월 초에도 오전 9시에 이미 39번이었다”고 했다. 하루에 60~100명만 진료하는 탓에 줄만 섰다가 그냥 돌아가는 이들도 있다는 게 많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6월 22일, 압구정 투명치과 별관 앞에 대기중인 환자들. [사진 공종복씨 제공]

6월 22일, 압구정 투명치과 별관 앞에 대기중인 환자들. [사진 공종복씨 제공]

 
6월 22일, 압구정 투명치과 별관 앞에 대기중인 환자들. [사진 공종복씨 제공]

6월 22일, 압구정 투명치과 별관 앞에 대기중인 환자들. [사진 공종복씨 제공]

 
덥고 습한데다 모기도 많은 탓에 이들은 밤새 모기약을 뿌리며 버텼다. 오후 11시쯤 병원 앞에 도착한 장모씨는 “충청도에서 2시간 걸려 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3주 전에 아랫니 2개를 발치했는데 오늘 교정장치가 떨어져서 급하게 왔다”고 했다.  
 
 
11일 오전 5시, 대기자 8번까지 계단에 앉아있는 모습. 위 계단참에는 3명이 신문지를 깔고 자고 있었다. 김정연 기자

11일 오전 5시, 대기자 8번까지 계단에 앉아있는 모습. 위 계단참에는 3명이 신문지를 깔고 자고 있었다. 김정연 기자

 
11일 오전 5시가 되자 대기자가 8명으로 늘었다. 앞서 온 대기자들은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잠을 청했다. 경기도 의왕에서 왔다는 김모(30)씨는 “교정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런 일이 생겨 황당하다”며 “환불신청도 했는데 아무 답이 없다”고 했다. 울산에서 온 황모씨는 “나는 교정이 거의 끝나서 유지장치만 받으면 되니까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선결제로 병원비만 내고 진료를 받지 못하는 환자들도 많다. 이날 오전 5시 치과 앞에 도착한 김모(27)씨는 “4월 중순 첫 진료 당시 ‘오늘 결제해야 이 가격에 해준다’며 결제를 밀어붙여서 300만원 결제를 했다”고 전했다. 장모씨는 “올 때마다 의사가 바뀌는 등 교정치료 측면에서는 많이 불안하지만, 일단 결제한 금액 때문에 오는 건데 이제 다른 병원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투명치과 대기자들이 자체적으로 포스트잇에 적어 나눠가진 번호표. 김정연 기자

투명치과 대기자들이 자체적으로 포스트잇에 적어 나눠가진 번호표. 김정연 기자

 
밤새 치과 앞에서 기다리는 이들은 병원의 폐업을 두려워하고 있다. 병원 원장 강모(52)씨가 이전에 운영하던 ‘화이트 치과’에서 이벤트로 고객을 모은 뒤 폐업한 적이 있어서다. 실제 치과 소속 직원들은 ‘폐업으로 인한 권고사직’을 이유로 대거 사직서를 쓰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고소장 접수, 소비자보호원 제소, 청와대 국민청원 등을 진행 중이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11일 사기 혐의로 원장 강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김정연 기자 kim.jeongyeo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