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의 폭우'로 총재 출마선언 늦춘 아베…"돌다리도 두드리고"

“폭우 피해 대응이 일단 마무리되지 않으면 (총재선거) 출마 표명도 하기 어렵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속한 호소다(細田)파 소속 한 간부가 13일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전한 말이다. 그 만큼 아베 총리가 서일본 폭우 피해 상황을 민감하게 주시하고 있다는 얘기다. 
 
13일 오전 일본 내각이 발표한 폭우로 인한 희생자는 232명(사망 204명·행방불명 28명)이다. 1982년 299명이 사망한 나가사키(長崎)시 대홍수 이후 최대 수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아베 총리는 서일본 지역의 폭우피해가 발생한 뒤, 11일부터 예정됐던 중동ㆍ유럽 순방을 취소하고 지방 순회 일정도 모두 중단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오른쪽) 일본 총리가 최근 폭우 피해를 본 서부 피해지역을 11일 자위대 헬기에서 바라보고 있다. [사진 총리관저 인스타그램 캡처]

아베 신조(安倍晋三·오른쪽) 일본 총리가 최근 폭우 피해를 본 서부 피해지역을 11일 자위대 헬기에서 바라보고 있다. [사진 총리관저 인스타그램 캡처]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3일 에히메현을 찾아 수해로 목숨을 잃은 주민들에게 묵념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3일 에히메현을 찾아 수해로 목숨을 잃은 주민들에게 묵념을 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지난 5일 밤 아베 총리와 주요 각료들이 중의원 숙소에서 회식을 벌인 사진이 부른 파장이 예상보다 컸다. 이 자리엔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정조회장, 오노데라 이쓰노리(小野寺) 방위상, 가미카와 요코(上川陽子) 법무상, 다케시타 와타루(竹下渉) 총무회장 등이 참석했다. 서일본 지역 3개부현(府県) 16만여 명에게 피난지시 및 권고가 내려진 때였다.
 
13일 도쿄신문 1면은 “기상청이 ‘기록적 폭우’를 엄중히 경고하며 이례적으로 기자회견까지 한 날 밤 회식을 하고, 3일 뒤에야 대책본부를 설치했다”면서 “아베 내각이 호우대응에 만전을 기했느냐”고 지적했다.
 
문제의 사진을 트위터에 올렸던 니시무라 야스토시(西村康利) 관방부장관은 12일 국회에 출석해 물의를 빚은 데 대해 사과했지만 이 마저도 비판의 여지를 남겼다. 니시무라 부장관이 “주말에 큰 비로 인한 재해가 발생했을 때 회식을 한 것처럼 오해를 드려 많은 분들에게 불편하게 해, 반성하고 있으며 사죄드린다”고 했는데 “회식을 한 걸 사과한 게 아니라, 오해를 하게 한 걸 사과했다”(도쿄신문)는 빌미를 준 것이다. 
 
아베 일본 총리(앞줄 왼쪽 두번째) 가 대규모 피해를 남긴 서일본 지역 집중 호우 중인 지난 5일 중의원 의원들의 숙소인 '중의원숙사'에서 동료 의원들과 술자리를 가져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술자리 참석자인 니시무라 관방 부장관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술자리 컷. [연합뉴스]

아베 일본 총리(앞줄 왼쪽 두번째) 가 대규모 피해를 남긴 서일본 지역 집중 호우 중인 지난 5일 중의원 의원들의 숙소인 '중의원숙사'에서 동료 의원들과 술자리를 가져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술자리 참석자인 니시무라 관방 부장관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린 술자리 컷. [연합뉴스]

 
아베 총리는 이날 28명의 희생자(사망 26명·행방불명 2명)를 낸 에히매(愛媛)현을 찾았다. 지난 11일 오카야마현에 이은 두번째 현장 시찰이다. 정부의 초동대처가 미흡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을 의식한 듯 아베 총리는 이날 각의를 열고 59개 재해 지역에 총 350억엔(약 3493억원)의 교부금을 조기집행을 결정했다. 
 
아베 총리는 당초 정기국회가 마무리되는 이달 22일께 총재선거 출마의사를 밝힐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섣불리 총재 선거 출마선언을 했다가는 ‘재해 지역을 경시하느냐’는 여론에 직면할 수 있다고 보고, 시기를 저울질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달 11일 아베 총리의 고향인 야마구치현에서 열리는 ‘총재선거 총결기 대회’에서 출마표명을 할 수도 있고, “재해 지역에 2차 피해가 일어나거나 하면 더욱 늦어질 가능성도 있다”(호소다파 간부)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서일본을 덮친 기록적인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한 히로시마(廣島)현 쿠마노 지역에서 9일 경찰 구조대와 자위대가 붕괴된 주택 잔해에서 발견된 희생자를 이송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서일본을 덮친 기록적인 폭우로 산사태가 발생한 히로시마(廣島)현 쿠마노 지역에서 9일 경찰 구조대와 자위대가 붕괴된 주택 잔해에서 발견된 희생자를 이송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서일본 지역 폭우로 인해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히로시마현에서 자동차가 진흙 속에 파묻혀 있다. [EPA=연합뉴스]

서일본 지역 폭우로 인해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히로시마현에서 자동차가 진흙 속에 파묻혀 있다. [EPA=연합뉴스]

 
서일본 폭우피해가 아베의 ‘3선 가도’에 치명타로 작용하진 않겠지만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자’는 계산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의 지지율이 회복세를 타고 있고, 6월 니가타(新潟)현 지사 선거에서 여당 후보가 당선되면서 자신감이 붙은 상태다.  
 
다만 출마 표명 시기가 늦어지면 아베 총리가 취약한 지방에 투자할 시간이 적어진다는 초조함은 있다. 지난 2012년 총재선거 때도 아베 총리는 국회의원 표에서는 1등을 했지만, 지역 당원 투표에서는 경쟁자인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의원에게 밀렸기 때문이다.  
 
관련기사
 
서일본 폭우피해는 다른 의원들의 총재선거 출마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도전자’ 이미지를 주기 위해 아베 총리의 출마 표명 직후를 노리고 있었던 이시바 의원 역시 때를 보고 있는 중이다. 이시바 의원은 “호우피해도 많이 발생하고 있고, 앞으로 수도권 직하지진, 난카이(南海) 트로프 지진 등이 예상되고 있다”면서 ‘방재성 신설’ 카드를 들고나왔다.  
 
또 다른 유력 주자인 기시다 후미오 정조회장은 이달 말 예정이었던 파벌 연수회를 뒤로 미뤘다. 기시다 회장의 고향인 히로시마(広島)현은 이번 비 피해로 100명 이상의 희생자(사망 81명, 행방불명 43명ㆍ13일 현재)가 예상되는 곳이다.
 
도쿄=윤설영 특파원 snow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