셜록 홈즈를 꿈 꾸는 여고생들, '탐정 특강'에 몰려들다

이충현 민간조사사가 탐정업에 대해 특강을 하고 있다. [사진 이충현 씨 제공]

이충현 민간조사사가 탐정업에 대해 특강을 하고 있다. [사진 이충현 씨 제공]

“실제로 ‘명탐정 코난’이나 ‘셜록 홈즈’처럼 일하나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탐정을 하고 싶은데 가능한가요?”
 
지난달 12일 경남 진주 경해여고 소망관에서 진행된 ‘탐정의 세계’ 특강에서는 여고생들의 질문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이날 경해여고에서 23개 직업군 특강이 진행됐는데 남자의 직업으로 여겨지는 탐정 특강을 선택한 여고생이 96명으로 가장 많았다. 항공승무원(87명), 약사·간호사(77명), 공연기획사(76명) 수업 보다 신청자가 많았다. 인기 직업으로 꼽혔던 교사(39명), 공무원(42명), 유치원장(29명)은 의외로 신청자가 적었다. 
 
특강을 기획한 학교 측에서도 놀랍다는 반응이다. 안병석 경해여고 교장은 “7년 전부터 매년 직업 특강을 진행하는데 여고생이 탐정업에 이렇게 관심이 있는 줄 몰랐다”며 “최근 영화나 미국 드라마에 탐정이 자주 등장한 게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탐정업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직업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8일 탐정 영업을 금지하고 탐정이라는 명칭을 쓸 수 없도록 한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이 헌법에 부합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 회원국 중 탐정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일본은 6만여 명의 민간조사사가 활동하고 있을 정도로 민간조사제도가 활성화돼 있다.  
 
탐정업은 지난 대선에서 공약으로도 등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인 탐정제 도입을 약속했다. 자치경찰제 전면 시행으로 치안 공백이 생기면 탐정을 직업으로 인정하자는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도 높다. 국민이 요구하는 치안 수준은 높아가고 보험사기, 교통사고, 기업 보안 등 공권력이 닿지 않는 영역의 분쟁이 늘어나고 있어서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지난해 7월 이완영 자유한국당 의원은 ‘공인 탐정 및 공인 탐정업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영화 '탐정'의 한 장면. [중앙포토]

영화 '탐정'의 한 장면. [중앙포토]

학생들 사이에 탐정은 미래직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날 ‘탐정의 세계’ 특강을 들은 차민지(17) 양은 “만화 ‘명탐정 코난’과 영화 ‘셜록홈즈’에 등장하는 탐정이 타고난 추리력으로 사건을 해결할 때 멋져 보였다”며 “내가 취업할 때 쯤 정식 직업으로 인정받는다면 도전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 장래 희망이 마케팅 전문가인 김세희(17) 양은 “마케팅을 잘하려면 추리력, 예측력이 요구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탐정에 관심을 갖게 됐다”며 “탐정과 유사한 ‘민간조사사’ 자격증을 따는 것도 생각 중이다”고 말했다.  
 
민간조사사는 각종 민·형사상 사건에서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 합법적으로 증거를 수집해 의뢰인에게 전달한다. 한국민간조사협회가 2009년부터 민간 자격증을 발급하고 있으며 지금까지 약 2000여명이 민간조사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8년 전 민간조사사 자격증을 취득한 이충현(38)씨는 현재 ‘탐정 충실장’이라는 별명으로 활발히 활동 중이다. 이씨 는“일반인들이 민간조사사를 잘 모르기 때문에 별명에 ‘탐정’을 넣었다”며 “사람 찾기나 경호 업무를 주로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헤어진 남성으로부터 3년간 스토킹에 시달려온 20대 후반 여성의 의뢰를 받고 정황증거를 확보해 법원으로부터 접근금지 명령을 받아내는 등의 일을 한다. 그는 “경찰은 범죄 혐의점이 발견되지 않는 단순 실종이나 개인 간의 사기 관련 범죄에는 공권력을 크게 투입하지 않는다”며 “민간조사사는 경찰의 업무를 대신하는 게 아니라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한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민간조사사가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불법을 자행하거나 사생활을 과도하게 침해하는 등의 부작용이 적지 않다. 실제로 흥신소나 심부름센터에서 심심찮게 불법 행위를 자행하고 있다. 그래서 탐정이 공인된 직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부의 엄격한 관리와 자격 심사가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곽명달 대한부산시탐정연구회장은 “탐정의 부정적 인식을 바꾸고, 일정 수준의 사법권을 부여하려면 엄격한 자격심사가 전제돼야 한다”며 “수준 높은 법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속적인 교육도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제로의 집행인’ [중앙포토]

애니메이션 ‘명탐정 코난:제로의 집행인’ [중앙포토]

 
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