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스버그 맥주 광고에는 왜 아인슈타인이 나올까?

위인이 그곳에 있었던 이유는 단지 맥주 때문이었다. -A. J. P. 테일러(1906~1990. 영국 역사학자)   
   
아인슈타인 이미지를 활용한 덴마크 맥주 칼스버그 광고. [사진 칼스버그]

아인슈타인 이미지를 활용한 덴마크 맥주 칼스버그 광고. [사진 칼스버그]

 1901년 9월 맥주 축제 옥토버페스트(Oktoberfest)의 개막을 앞두고 독일 뮌헨 시민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뮌헨시가 역사상 처음으로 축제장에 백열등을 달기로 결정했기 때문이었다. 전기 시설이 완비되면 옥토버페스트는 바야흐로 밤낮으로 즐길 수 있는 축제로 거듭나는 셈이었다. 기뻐하기 바쁜 시민들과 달리 옥토버페스트 전기공사를 맡은 설비업체는 긴장했다.
 “모두 서둘러야 한다. 가로수에 놀이기구까지 조명기구를 설치하려면 사흘이 필요한데 시간이 별로 없구나!”
 유대계 전기 설비업자는 꼼꼼하게 조명 시설을 점검했다. 그의 곁에는 대학을 졸업하고도 변변한 직장을 잡지 못한 백수 아들이 있었다. 옥토버페스트 전기 공사 책임자 헤르만 아인슈타인의 못 미더운 아들이 바로 20세기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로 추앙받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이다. 
세기의 천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중앙포토]

세기의 천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중앙포토]

 전기공사가 마무리되고 드디어 옥토버페스트의 막이 올랐다. 북부 베를린과 함부르크에서 사람들이 찾아왔고 멀리 오스트리아의 빈과 스위스 취리히에서도 맥주 매니어들이 몰려들었다. 축제 참가자의 화젯거리는 단연 백열등이었다. 어둠이 내리자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1847~1931)이 개발한 백열등이 행사장 곳곳을 밝혔다. 희미한 가스등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백열등을 켠 축제장은 난생처음 보는 별세상이었다. 맥주를 파는 천막, 구운 닭고기와 소시지를 파는 포장마차도 대낮처럼 훤했다.
 행사장을 밝히기 위해서는 수천 개의 백열등이 필요했고, 조명 시설을 설치하는 것은 전기업자의 몫이었다. 20세기 초 전등은 막대한 수입을 상징했다. 아인슈타인의 아버지는 운 좋게 옥토버페스트 조명 계약을 따냈지만, 그 행운은 오래가지 못했다. 독일 내 반유대인 정서가 고조되면서 이권은 이듬해 다른 회사로 넘어갔다. 만약 옥토버페스트와 헤르만 아인슈타인의 계약이 지속했다면,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후대에 전기회사 사장으로 기억됐을지 모른다.
 
 천재에게 평범함을 허락한 맥주
 아인슈타인은 긴장하면 말을 더듬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낙제생’으로 알려졌지만, 어렸을 때부터 공부를 잘했다. 특히 수학과 물리학이 뛰어났다. 하지만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만다. 아인슈타인에게 학교는 감옥과 다름없었다. 철혈재상 비스마르크가 등장하면서 군대와 같은 강압적인 분위기가 학교를 지배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아인슈타인은 복종과 암기력만 요구하는 교육제도를 견디지 못했다.    
아인슈타인이 수학하고 교수로 재직했던 취리히공과대학. [사진 취리히공과대학]

아인슈타인이 수학하고 교수로 재직했던 취리히공과대학. [사진 취리히공과대학]

 독일을 떠나 1896년 스위스 취리히공과대학에 입학한 아인슈타인은 캠퍼스 커플이 되어 연애를 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맥주를 마시면서 예사로 수업을 빼먹었다. 훗날 그의 아내가 된 밀레바 마리치가 필기한 노트를 빌려보며 벼락치기로 기말시험을 통과했다.  
 아인슈타인이 대학 시절을 보낸 취리히는 독일어권으로 독일 문화의 영향이 강한 지역이었다. 독일계 젊은이에게 맥주는 일상적인 음료이자 대화를 나누는 매개체였다. 아인슈타인은 유대인이지만, 가톨릭으로 개종한 부모의 영향으로 비교적 술에 관대한 분위기에서 자랐다. 그는 친구들과 카페에서 맥주잔을 앞에 놓고 우정을 쌓았다. 
취리히 엥에호수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젊은이들. [사진 스위스관광청]

취리히 엥에호수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젊은이들. [사진 스위스관광청]

 당시 취리히에서는 스위스 장크트갈렌(Sankt Gallen) 지역 맥주, 쉬첸가르텐(Schützengarten)의 명성이 높았다. 1779년 탄생한 쉬첸가르텐은 지금도 생산된다. 만약 취리히에서 아인슈타인을 추억하고 싶다면 도시를 가로지르는 리마트강이나 엥에호수 주변 노천카페로 향할 것을 권한다. 아인슈타인도 이곳에 앉아 시원한 바람을 쐬며 쉬첸가르텐을 마셨을지 모를 일이다. 
 
 기적을 위하여 건배
 아인슈타인은 대학 졸업 후 백수로 지내다 친구 아버지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스위스 특허사무소의 하급 직원으로 취직했다. 스위스 수도 베른(Bern)의 특허사무소에서 일하게 된 것은 그에게 큰 행운이었다. 당대 유럽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실험서인 특허신청서를 검토하면서 자신이 쓸 논문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스위스 장크트갈렌 지역에서 생산되는 쉬첸가르텐 맥주. [사진 쉬첸가르텐]

스위스 장크트갈렌 지역에서 생산되는 쉬첸가르텐 맥주. [사진 쉬첸가르텐]

 특허사무소에서 아인슈타인은 불꽃처럼 일했다. 새벽에 출근해 온종일 특허서류를 심사한 뒤 퇴근하면 밤새워 논문을 썼다. 빨리 논문을 써 대학교수가 돼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렸다. 아인슈타인의 불안함을 달래준 것이 맥주였다. 베른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과 어울려, 때로는 밀레바의 손을 잡고 선술집을 찾았다. 
 드디어 ‘기적의 해’가 찾아왔다. 1905년 아인슈타인은 독일의 학술지 ‘물리학 연보(Annalen der Physik)’에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의 토대가 되는 논문 5편을 잇달아 발표했다. 5번째 논문을 완성한 날 아인슈타인과 밀레바는 맥줏집으로 향했고 난생처음 정신을 잃을 정도로 취했다. 20세기 물리학의 진로를 바꾼 혁명적인 이론들이 한 사람에 의해, 그것도 그토록 단기간에 연거푸 나온 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었다. 
아인슈타인이 즐겨 찾았던 취리히 오데온바. [사진 스위스관광청]

아인슈타인이 즐겨 찾았던 취리히 오데온바. [사진 스위스관광청]

 아인슈타인은 평소에는 연구에 방해가 된다고 음주를 삼갔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들과 어울리는 소탈한 자리에서는 마음껏 맥주를 마셨다. 1909년 취리히대학, 1912~1914년 취리히공과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면서는 취리히의 ‘오데온 바(Bar Odeon)’를 자주 찾았다. 맥주 한 잔 놓고 학생들과 토론을 즐겼다. 맥주는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했던 괴팍한 천재 아인슈타인과 세상을 이어주는 끈이었다. 
 그래서일까. 기네스와 칼스버그 등 유명 맥주 주류 회사의 광고 이미지에 아인슈타인이 심심찮게 등장하고 있다.
영국에 과학자를 배출한 맥줏집이 있다?
이글펍은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장소다. [사진 이글펍페이스북]

이글펍은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이 DNA 이중나선 구조를 발견한 장소다. [사진 이글펍페이스북]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캠퍼스 북서쪽에 중세시대 성채처럼 보이는 고색창연한 건물이 있다. 이곳은 노벨상 수상자를 무려 29명이나 배출한 물리학의 본산 캐번디시연구소(Cavendish Laboratory)다. 과학사의 전설이 된 케임브리지의 명물은 연구소만이 아니다. 캐번디시연구소에서 불과 20m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선술집 ‘이글 펍(The Eagle Pub)’도 과학도에게 두고두고 회자가 되는 장소다.   
사연은 이렇다. 1953년 2월 28일 한 청년이 이글 펍에서 맥주를 마시다가 “생명의 신비를 풀었다”고 소리치며 길거리로 뛰쳐나갔다. 그는 DNA 구조를 발견한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James Watson)이다.  
왓슨과 함께 기네스 맥주를 마시던 동료 프랜시스 크릭(Francis Crick)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따라 나갔다. 펍의 단골이었던 두 사람은 이날도 어김없이 유전물질을 다음 세대로 전하는 세포에 관해 토론했다. 그러던 중 기네스 거품이 컵 밖으로 흘러내리는 장면을 보고 DNA가 2중 나선 구조라는 영감을 얻었다. 왓슨과 클릭은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두 사람이 앉았던 자리에는 노벨상 수상 사진과 이곳이 DNA 구조를 발견(discover)한 장소라는 황동 액자가 붙어있다. 해마다 2월이 되면 ‘이글스의 DNA(Eagle’s DNA)‘라는 이름이 붙은 특별한 에일 맥주가 판매된다. 펍 천장을 가득 메우고 있는 낙서도 유심히 봐야 한다. 2차 세계대전 당시 공군 조종사들이 출격에 앞서 초조함을 달래며 남긴 글과 그림이다. 지금도 과학과 역사 그리고 맥주를 좋아하는 여행객이 성지순례 하듯이 이글 펍에 찾아들고 있다. 
 
백경학 맥주칼럼니스트 stern100@hanmail.net  
독일 뮌헨 슈바빙의 맥줏집과 중세 양조술의 전통을 계승한 유럽 수도원을 순례하며 맥주를 배웠다. 2002년 국내 최초의 하우스 맥주 전문점 ‘옥토버훼스트’를 창업했다. 현재 장애 어린이 재활을 위한 ‘푸르메재단’ 상임이사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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