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일본, 군국주의 걱정된다

책 속으로
하얀국화

하얀국화

하얀 국화
매리 린 브락트 지음
이다희 옮김, 문학세계사

 
흐르는 편지
김숨 지음, 현대문학
 
한중일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
오누마 야스아키·
에가와 쇼코 지음
조진구·박홍규 옮김, 섬앤섬
 
흐르는 편지

흐르는 편지

서울 율곡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벌어지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의 수요시위는 지난 8일이 1347차 집회였다. 공교롭게도 수요일인 돌아오는 8·15 광복절, 시위는 1348차를 맞게 된다. 1992년 1월부터 17년째 이어지는 피맺힌 항의이지만, 추상적인 숫자로 표현되는 시위 기록만으로는 일본군 위안부들이 실제 겪어야 했던 처참한 고통을 실감하기 어렵다.
 
소설이 힘을 내는 건 이런 대목에서다. 특유의 공감 능력과 마술적인 연금술로, 60여 년 전 소녀들의 아픔을 지금 여기, 눈앞에 되살린다.
 
한중일 역사인식

한중일 역사인식

여성작가 김숨(44)의 장편 『흐르는 편지』는 잔혹하다는 느낌이 들 만큼 ‘재현’에 집중한 작품이다. 만주 땅 낙원위안소(‘낙원’은 지독한 반어법이다)가 배경인데, 금자라는 열다섯 소녀를 화자로 내세워 여성 특유의 감수성으로, 남성들은 짐작하기 어려운, 짓이겨져 찢기는 고통을 생생하게 그린다. 읽기 버거운 장면이 있을 정도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를 짐작할 수 있다.
 
한국계 미국 여성 작가 매리 린 브락트(40)의 장편 『하얀 국화』는 같은 위안부가 소재지만 성격과 느낌이 사뭇 다르다. 소설의 핵심은 물론 위안부의 참상 고발이다. 하지만 위안부 얘기에 이념의 비극인 제주 4·3 사건을 결합했다. 동생 아미를 대신해 끌려간 언니 하나는 위안부의 비극을 시연하고, 제주 해녀로 평생을 산 동생 아미는 이념의 상처를 곱씹는다. 이런 얘기가 21세기 서울과 제주, 1940년대 만주와 몽골까지 넘나들며 펼쳐져 어떤 대목은 로드무비 같다. 작가 브락트는 어머니가 충북 옥천 출신 한국인, 아버지가 미군이었다. 독일에서 태어나 지금은 10년 넘게 영국 런던에서 산다. 다분히 서양인의 시각에서 위안부 문제를 다뤄, 김숨 소설에 비하면 보다 차분하고 이야기가 다채롭다. 당연히 서양 독자에게 더 먹힐 것 같은 접근법이다. 브락트는 자신의 소설을 이렇게 설명했다. e메일 인터뷰다.
 
일본군 위안부와 제주 4·3사건을 버무린 장편 하얀 국화를 쓴 매리 린 브락트. [사진 매리 린 브락트]

일본군 위안부와 제주 4·3사건을 버무린 장편 하얀 국화를 쓴 매리 린 브락트. [사진 매리 린 브락트]

단순히 위안부 제도만 문제 삼기보다 하나·아미 자매의 극적인 인생 여정을 그리는 데 소설의 상당 부분을 할애했다.
“일본군 위안부의 존재를 모르는 서양 독자들을 겨냥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자신들의 얘기를 세상에 알린 지 20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서양 독자들은 그 사실을 잘 모른다. 그동안 눈에 띄는 이야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위안부는 물론 일본의 한국 식민 지배 사실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효과적인 방법은 하나·아미 자매의 애틋한 사연에 집중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위안부의 고난을 넘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 그렇게 했다.”
 
미국·영국 독자들의 반응은.
“많은 독자가 놀랍다는 반응이다. 위안부나 제주 해녀에 대해 더 알고 싶어 구글 검색을 한다는 독자를 만날 때마다 기분이 좋아진다.”
 
하나는 자신의 원수를 직접 갚지 않는데.
“소녀다운 순수함을 잃지 않게 하고 싶었다. 소설은 상당 부분 전쟁 중 야만 행위에 관한 것이다. 그런 와중이지만 하나의 인간성을 지키고 싶었다. 전쟁은 인간을 짐승으로 만들지만 모든 인간이 다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
 
한·일 관계는 늘 삐걱거린다.
“나는 소설가일 뿐 정치학자가 아니다. 긴밀한 양국 관계는 진실과 용서, 상호존중 위에서 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은 4·3 사건 등 한국전쟁 시기에 스스로 저지른 범죄행위를 시인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불행하게도 반대로 가는 것 같다. 자꾸 군국주의로 향한다.”
 
『한중일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는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 오누마 야스아키의 대담집이다. 70년대 중반부터 사할린 잔류 한국인들의 귀환에 힘쓴 오누마가 도쿄 전범 재판 등 한·중·일 세 나라의 착잡한 과거사를 균형 있게 서술하려고 노력한 책이다. 위안부 문제를 비중 있게 다뤘는데 일본인의 시각이라는 한계는 있다. 가령 위안부 할머니들이 바라는 일본 정부의 법적인 배상은 어렵다고 본다.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 등 일련의 전후 법적 처리 과정이 기초부터 흔들리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적을 알아야 싸울 수 있는 법. 합리적인 일본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