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WTO 탈퇴 시사한 건 중국과 협상용 발언

마크 우 교수가 올해 3월 하버드대 페어뱅크중국연구소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 하버드대]

마크 우 교수가 올해 3월 하버드대 페어뱅크중국연구소에서 강연하고 있다. [사진 하버드대]

미-중 무역전쟁의 두번째 장이 열렸다. 두 나라는 상대 수출품 340억 달러에 관세 25%를 부과한 데 이어 이달 23일부터는 160억 달러에 대해서도 25%를 매기기로 했다. 2막은 올 9월에 시작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중국산 2000억 달러에 대해 10~25% 관세를 매긴다”고 발표해놓고 있다. 중국도 질세라 미국산 600억 달러에 같은 관세를 매길 계획이다. 법(무역 규범)보다 주먹이 앞서고 있다. 글로벌 교역 진화의 퇴화다. 지구촌은 1995년 세계무역기구(WTO)를 출범시키면서 교역질서를 특정 국가의 역량과 의지, 재량이 아니라 규범을 바탕으로 한(rule-based) 체계로 바꿨다.
 
퇴화가 어디까지 진행될까. 이 궁금증을 풀기 위해 중앙SUNDAY는 서둘러 마크 우 하버드대 교수(국제통상법)를 전화·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우 교수는 강단에 서기 전에 미국 무역대표부에서 지적재산권 담당(director)으로 일했다. 미중 두 나라가 첨예하게 맞붙는 분야다. 그는 2016년 쓴 논문에서 “중국의 부상이 다자간 교역 체제에 중대한 도전”이라고 경고했다.
 
경고한대로 되고 있다.
“사실 그때 경고한 이유는 좀 다르다. 중국의 경제 구조가 야기하는 문제는 현재 WTO 규범으로 처리하기 힘든 것들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민간과 공공 부문이 불분명하다. 또 국영기업 존재가 시장에 끼치는 영향을 볼때 중국 경제가 시장경제인가 아니면 국가주도 경제인가 같은 특성 때문에 일어나는 무수한 갈등을 WTO 현재 규정으론 만족할 만큼 해결할 수 없다는 얘기였다.”
 
트럼프가 그걸 간파하고 중국을 직접 겨냥한 것 아닐까.
“넓은 의미에선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트럼프가 WTO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직접 중국 등을 겨냥한 데는 오랜 세월 미국인들이 느끼는 불만이 작용해서다.”
 
어떤 불만인가.
“미국은 2001년 시작된 도하라운드부터 불만이 컸다. 농산물 등에 관한 협상에서 개발도상국과 미국 사이 입장 차이가 줄지 않았다. 이때부터 미국은 WTO 체제가 쓸모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건 트럼프 집권 이전부터이지 않는가.
“WTO에 대한 불만은 트럼프뿐이 아니다. 미국 민주당 쪽도 마찬가지다. 미국의 불만은 10년 이상 된 해묵은 문제다. 미국은 정보기술(IT) 발전, 중국과 다른 신흥국의 경제구조가 낳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규정을 신설하고 싶어했다.”
 
 
WTO 항소기구 사실상 무력화돼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미국의 불만은 올 들어 WTO 항소기구(Appellate Court) 위원 선임 또는 재선임을 반대하고 나선 것으로 표출됐다. 항소기구는 회원국간 무역분쟁이 발생했을 때 판단하는 조직이다. 정원은 7명이다. 현재는 4명뿐이다. 올 9월 말에 한 명의 임기가 끝난다. 미국이 반대를 계속하면 내년 말에는 위원 1명만이 남는다. 항소기구가 사실상 무력화됐다. 그 바람에 미국이 중국산 2000억 달러에 대한 보호관세 부과를 WTO에 지난달 제소했지만, 사실상 WTO는 갈등해결 측면에서 작동불능 상태다.
 
최근 트럼프가 WTO 탈퇴를 시사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최악의 경우 탈퇴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트럼프는 이미 여러 차례 WTO의 현재 상태(status quo)는 용납할 수 없다는 의지를 드러내왔다. 그 연장 선상에서 그의 말뜻을 이해하면 될 듯하다. 현재까지는 말이다.”
 
트럼프가 아직도 WTO를 자기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인가.
“장 클로드 융커 유럽연합(EU) 위원장과 WTO 개혁에 대해 합의했다. (중국에 많은) 국영기업이 시장을 왜곡하고 과잉 생산하는 문제 등도 해결하기로 뜻을 같이 했다. 미국이 과거에 WTO를 통해 해결하고 싶어했던 문제다.”
 
조만간 트럼프가 WTO 탈퇴하지 않을까.
“트럼프와 그의 참모들이 말하는 탈퇴 가능성은 협상용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과 EU 등 주요 교역 파트너들과 밀고 당기기에서 교섭력을 키우려는 의도가 가득한 말이란 얘기다.”
 
 
ECB "관세율 50년 새 최고치 이를 수도”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미국 언론도 우 교수처럼 트럼프가 섣불리 WTO를 탈퇴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반면 일부는 트럼프가 환태평양동반자협정(TPP) 추진을 접는 등 일방적인 행동을 적잖이 한 점을 주목한다.
 
트럼프 행적을 보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도 있을 듯하다.
“트럼프가 WTO에 대해 어떤 행동을 할지 말하기는 너무 이르다. 미국과 EU, 중국, 일본, 기타 교역국이 벌이는 협상에 달려 있다. 이 협상이 트럼프가 원하는 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은 한결 일방적인 행동(more unilateral action)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미국이 지금보다 더 일방적으로 행동한다면 WTO 앞날이 걱정된다.
“트럼프-융커 합의처럼 WTO에 대한 다자간 협상을 벌이는 쪽으로 주요 나라들이 움직일 가능성은 여전하다. 하지만 (미국의 눈에) 의미 있는 개혁이 이뤄지지 않으면 WTO는 서서히 존재의미를 잃어갈 수 있다.”
 
WTO가 존재의미를 잃으면 세계 교역질서가 어떤 모습일지는 아직 분명치 않다. 다만,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9일 “일방적으로 무역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위험하다”며 “세계 관세율이 최근 50년 사이 최고 수준으로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마크 우
예일대 로스쿨을 졸업한 위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개발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세계은행(WB) 중국 사무소에서 경제분석가로 활동하다,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에서 일했다. 또 미 무역대표부와 WTO 등에서 지적재산권 전문가로 활동했다. 현재는 하버드 법대 교수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