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복의 사람속으로] 세대 간 차이까지 반영, 통일에 대한 인식 넓힐 때다

김연철 통일연구원장
김연철 원장은 ’요즘 젊은 세대는 당위론이나 사명감보다 자기 이해를 중시한다“면서 ’통일 개념에 대한 세대 간 차이까지 반영해 통일에 대한 인식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김연철 원장은 ’요즘 젊은 세대는 당위론이나 사명감보다 자기 이해를 중시한다“면서 ’통일 개념에 대한 세대 간 차이까지 반영해 통일에 대한 인식을 넓힐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통일연구원은 남북통일 문제에 관한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연구를 통해 국가의 통일정책 수립을 지원할 목적으로 1991년 설립된 국책연구기관이다. 박근혜 정부 때 임명된 손기웅 원장이 9개월여 만에 갑자기 물러나면서 올 1월부터 공석이 된 원장 자리에 김연철 인제대 교수(통일학부)가 지난 4월 임명됐다. 통일연구원은 최근 5년 새 5명의 원장이 바뀌는 극심한 리더십 혼란을 겪었다. 문재인 정부 들어 남북관계가 급진전하면서 통일연구원의 역할은 부쩍 중요해졌다. 지난 11일 서울 서초동에 있는 통일연구원 원장실에서 김 원장을 만났다.
 
통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과거에는 남북이 1민족, 1체제, 1국가를 이루는 것을 통일이라고 했다면 요즘에는 남북이 평화롭게 지내면서 자유롭게 교류·협력할 수 있다면 그게 통일 아니냐는 의견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일수록 그런 경향이 강하다. 통일 개념에 대한 세대 간 차이까지 반영해 통일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게 필요한 시기가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
 
독일처럼 하나의 국가로 통일하는 데 반대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요즘 우리 젊은 세대는 당위론이나 사명감보다는 자기 이해를 중시한다. 통일이 나의 삶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 따진다. 굉장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다. 통일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젊은 세대가 자기 나름대로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젊은 세대, 통일이 삶에 도움 될지 따져
 
우리 정부의 공식적인 통일 방안은 3단계 통일 아닌가.
“그렇다. 1단계 화해·협력에서 시작해 2국가, 2체제인 남북연합 단계를 거쳐 3단계 완전통일로 가는 것이다.”
 
북한의 입장은 뭔가.
“91년 연방제 통일 방안을 느슨한 형태의 연방제 통일로 완화한 데 이어 지금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고 있다. 1국가, 2체제의 연방제 통일을 목표로 하되 두 체제의 권한을 강화하고, 연방국가의 역할을 줄이자는 것이다. 2000년 남북 정상이 채택한 ‘6·15 공동선언’ 제2항에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한다’고 한 것은 통일에 대한 북한의 입장 변화가 반영된 결과다.”
 
3단계 즉, 완전한 통일이 굳이 필요한가에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두 번째 단계 즉, 남북연합 단계를 지금까지는 완전 통일로 가는 하나의 과정으로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일부 학자들을 중심으로 남북연합도 최종적인 통일국가의 한 형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김 원장 생각은 어떤가.
“2단계와 3단계의 중간쯤 아닐까. 완전한 통일을 최종적 목표로서 부정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너무 서두를 건 아니라고 본다. 서로의 차이가 공존하는 기간을 충분히 길게 잡는 것이 이질성을 완화함으로써 후유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 아닌가 싶다.”
 
북한에도 통일연구원과 유사한 기관이 있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산하에 조국통일연구원이 있다. 인력이 300명으로 우리의 3배 규모다.”
 
두 기관이 공동연구를 진행한 적이 있나.
“없다. 앞으로 추진할 생각이다.”
 
구체적 복안이 있나.
“얼마 전 중국 선양에서 민주평통 주최로 열린 남북학술회의에 참석했다. 마침 조국통일연구원에서 실장급 연구원 2명이 왔길래 6·15 공동선언 제2항, 즉 통일 방안에 대한 두 기관의 공동연구를 제안했다. 원칙적으로 찬성한다고 했다. 3차 남북 정상회담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 통일연구원 사람들만 아니라 다양한 스펙트럼의 전문가들로 팀을 구성해 통일 방안에 관한 남북 공동연구를 추진할 생각이다.”
 
어떤 형태의 통일이든 북한 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통일은 불가능한 것 아닌가.
“물론이다. 비핵화와 평화체제는 논리적으로 한 쌍이다. 북한이 핵을 갖고 있는 한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를 제도적으로 보장할 방법은 없다. 항구적 평화체제 없이 평화통일은 불가능하다.”
 
비핵화가 과연 가능할까.
“김정은 위원장은 이달 초 방북한 특사단에 비핵화 의지를 재확인했다. 트럼프 행정부 첫 임기 내 완료하자는 시한도 제시했다. 기술적 차원의 완전한 비핵화까지는 시간이 훨씬 많이 걸리겠지만 ‘북핵 문제’라는 당장의 위험을 제거하는 데는 2년이란 시간이 결코 짧지 않다고 생각한다.”
 
2년 내 어디까지 가능할 걸로 보나.
“비핵화 대상에는 핵무기와 핵물질은 물론이고 핵시설과 핵 관련 지식이 다 포함된다. 시설과 지식까지 없애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구형 원자로 하나 폐기하는 데도 2년 갖고는 안 된다. 방사능 제염을 해서 하나하나 다 해체해 시멘트로 고화 처리까지 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핵무기나 핵물질을 해외로 반출하거나 폐기하고, 사찰과 검증까지 마치는 데는 그렇게 많은 시간이 안 걸린다. 2년 내 가능하다고 본다. 일단 시급한 안보 위협인 무기와 물질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그 이후 과정은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너무 낙관적인 전망 아닌가.
“핵무기와 핵물질 문제가 해결되면 당연히 북·미 관계가 정상화될 것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에 개방되는 것이다. 외부와의 접촉이 늘어나면 투명도가 높아진다. 투명도가 높아지면 핵시설 폐기를 포함한 그 이후의 비핵화 과정은 불가역적이고, 통제 가능한 상황이 된다.”
 
 
북, 핵 없이 살 수 있는 여건 조성이 관건
 
북한이 핵무기나 핵물질을 일부라도 숨길 경우 그걸 다 찾아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을까.
“맞다. 그래서 사찰·검증과 관련한 국제사회의 금언이 ‘믿어라, 그리고 검증하라’ 아니겠나. 불신으로 사찰과 검증 문제에 접근하면 영원히 해결이 불가능하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신고를 둘러싼 논란도 마찬가지다. 신뢰가 없는 상태에서 무조건 다 신고하라고 하면 신고 과정에서 좌초할 것이다.”
 
그럼 무엇부터 신고해야 하나.
“일단 영변 핵시설처럼 북한과 국제사회가 공통적으로 인정할 수 있는 손쉬운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지금은 북·미 간에 신뢰가 거의 없기 때문에 아주 초보적이고 상징적인 것부터 시작해 신뢰를 쌓는 게 중요하다. 그걸 바탕으로 무기나 물질 같은 어려운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북한이 무기와 물질의 리스트와 폐기 및 사찰·검증 시간표를 제시하고, 이를 실행에 옮기는 것이다. 트럼프 첫 임기 내 북핵 위협을 제거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다.”
 
종전선언은 어디에 위치해야 하나.
“종전선언은 관계 정상화와 평화체제로 가는 입구 중의 입구다. 영변 핵시설 신고와 맞바꾸는 방식으로 초입에 해야 할 것이다.”
 
트럼프 첫 임기 내 무기와 물질 문제를 해결하면 미국은 반대급부로 북한에 무엇을 줘야 하나.
“제재 완화와 관계 정상화는 물론이고 평화협정까지 체결해야 할 것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이 북한이 완전히 핵을 포기할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갖고 있다. 완전한 비핵화를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 아닐까.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할까 의심하는 것은 북한에 초점을 맞춰서 보는 일방적 시각이다. 나는 북핵 문제를 관계적 시각에서 보고 있다. 북핵 문제는 관계의 산물이고, 냉전 체제의 산물이다. 결국에는 핵무기가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이냐의 문제다. 최종 단계까지 의심을 거둘 수는 없겠지만, 관계 진전을 위한 노력이 더 중요하다. 작은 진전이라도 이루어내고, 이를 제도화해 다진 뒤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제가 상당히 활발한 느낌이다.
“제재로 인한 대외무역 축소 효과는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를 자원 배분의 시장화나 농업·기업 부문의 자율권 확대 같은 시장 기능 강화로 상쇄하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전체적으로 보면 정책 변화에 따른 플러스 효과보다는 제재로 인한 마이너스 효과가 큰 것으로 보인다.”
 
위성 사진의 시계열 분석을 통해 북한 도시 연구를 하고 있다고 들었다. 최근 어떤 변화가 있나.
“평양은 물론이고 지방 도시들도 확확 달라지고 있다. 갑자기 들판에 건물이 들어서는가 하면 도시에 새로 도로가 생기고 있다. 특히 북·중 접경지대에 신축 건물이 많아졌고, 경제활동이 분주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중국이 제재의 고삐를 늦췄기 때문 아닐까.
“중국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제재의 ‘정상화’라고 하더라. 작년까지는 유엔 안보리 제재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적용했지만, 지금은 정상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작년에는 삽이나 곡괭이조차 철 금속이 사용됐다는 이유로 반입을 금지했지만, 지금은 민수용으로 분류해 허용한다는 것이다. 올 들어 북·중 관계가 개선되면서 제재의 집행에서 유연성이 좀 커진 것 같다.”
 
문재인 정부 입맛 맞는 실력·경력·코드 3박자 갖춰
김연철 원장은 96년 성균관대에서 ‘북한 산업화와 경제정책’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삼성경제연구소 북한경제팀 수석연구원, 경실련 통일협회 정책위원, 민주평통 자문위원, 민화협 정책위원 등을 역임했다. 2004년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정책보좌관으로 일하며 통일 정책에도 관여했다. 교수 시절에는 민주당 외교안보통일자문회의 위원 자격으로 문재인 캠프와도 인연을 맺었다. 문재인 정부의 입맛에 맞는 실력, 경력, 코드의 3박자를 갖췄다.
 
김 원장은 뛰어난 문장력과 전문성을 토대로 활발한 저술 활동과 언론 기고 활동을 해왔다. 『냉전의 추억』, 『협상의 전략』, 『70년의 대화』 등 4권의 저서를 냈다. 통일연구원장이 된 이후에도 한겨레신문에 기명칼럼을 계속 쓰고 있다. ‘이해 충돌’ 우려를 제기했더니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데다 다른 국책연구기관장들도 그렇게 한 경우가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름대로 정책 홍보 효과가 있기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도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통일 문제에 관한 유일한 국책연구기관으로서 26개 국책연구기관의 북한 관련 연구를 종합·조율하고, 국내 북한 관련 연구의 허브 기능을 하는 한편 남북 통일연구기관 간 학술교류 활성화를 재임 중 목표로 꼽았다.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bae.myungb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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