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이 “핵 리스트 신고·검증 수용” 직접 공언하면 A+

3차 남북 정상회담 관전 포인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월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2차 정상회담 시작 전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5월 26일 오후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2차 정상회담 시작 전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남북정상회담이 다가왔다. 1월부터 달려온 평창 평화프로세스가 어느덧 결실의 시기에 접어들었다. 어떠한 결과가 나오든 진실의 순간이다. 한국 정부는 한반도 운전자의 위상을 확고히 자리매김할 것인가 아니면 그간의 과정이 희망적 상상에 불과했는가를 확인하게 될 것이다.
 
현재 비핵화 협상은 정체기에 접어들었다. 6월 북·미 정상회담 개최 전만 해도 검증만 남았느니, 핵무기를 조기에 북한으로부터 반출하느니(front loading)와 같이 희망찬 기대로 충만했지만 아직 비핵화 로드맵조차 만들지 못한 상황이다.
 
북한은 소위 단계적이고 동시적인 협상 방식을 통해 미국이 요구하는 ‘신고-검증-폐기’ 방식의 로드맵을 거부하고 있다. 그 대신 북한이 비핵화 대상 시설을 정하고, 국제사회의 검증 없이 일방적으로 폐기하며, 그에 대한 보상 역시 북한이 자의적으로 정해 미국에 요구하고 있다. 풍계리 핵실험장과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기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북한은 이들 비핵화 조치가 불가역적이라고 주장하지만, 터널을 다시 뚫고 시설을 다시 설치하면 된다. 그 비용도 한·미 연합군사훈련 개최 비용보다 훨씬 저렴할 것이다.
 
북한의 자세가 이렇다면 비핵화 협상의 미래는 어둡다. 북한이 다음에 제시할 조건을 알 수 없고, 그 조건을 수용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의 비핵화로 나갈 수 없는 깜깜히 협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북한에 핵 리스트 신고를 요구했던 것이고, 북한이 이를 거부하자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취소했던 것이다. 이번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비핵화 협상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북한과의 협상은 늘 어렵다. 체제의 명운을 걸기에 쉽게 양보하지 않기 때문이다. 양보를 한다 해도 그 대상은 한국이 아닌 미국이 될 수도 있다. 실로 복잡한 문제지만 그렇다 해서 핵 협상의 결과를 평가할 기준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결국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무기와 핵 프로그램을 내려놓아야 하고 이를 위한 협상을 예측 가능하게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이를 기준으로 남북정상회담에서의 비핵화 협상 시나리오를 만들고 성적을 매겨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김정은 위원장이 핵 리스트 신고와 검증을 받아들일 의사가 있음을 공개석상에서 밝히는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직접 공개석상에서 밝힌 만큼 신뢰도가 높고 예측 가능한 비핵화 로드맵을 만들 수 있다. 미국은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을 재추진할 것이고, 북한이 요구하는 종전선언과 미국이 원하는 핵 리스트 신고가 합의될 것이다. 필요에 따라서는 단계적 제재 해제도 논의될 것이다. 최상의 시나리오며 성적은 당연히 A+다.
 
둘째, 김정은 위원장이 핵시설 신고를 받아들일 의사가 있음을 공개석상에서 밝히는 것이다. 핵 리스트를 핵시설, 핵물질, 핵무기로 세분화해서 그 첫 단계로 핵시설 신고와 종전선언을 맞바꾸는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살라미(salami) 협상을 지속하지만 미국이 요구하고 있는 신고와 검증 로드맵을 수용한다는 점에서 비핵화의 예측 가능성이 높다. 미국도 이를 수용하여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하고 문제를 풀어갈 것이다. 성적은 A다.
 
셋째, 김정은 위원장이 핵시설 신고와 검증을 받아들이기로 했다고 문재인 대통령이 밝히는 것이다. 내용은 차이가 없지만 발표 주체가 김정은 위원장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당사자가 아닌 제3자의 언급은 나중에 말을 바꾸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방북한 정의용 특사는 김 위원장으로부터 "연합군사훈련은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발표했지만 북한은 5월 한·미 연합공군훈련 ‘맥스 썬더’를 이유로 고위급회담을 취소한 전례가 있다. 따라서 신뢰도가 상대적으로 낮은 시나리오며 그에 따라 성적 또한 B+다.
 
넷째, 북한이 신고나 검증과 관련한 언급 없이 영변 원자로 가동 중단 등과 같은 동결 조치를 하고 미국에 종전선언을 요구하는 것이다. 영변 원자로 가동 중단은 핵물질 생산을 중단하는 실질적 조치로 그 의미가 크다. 따라서 미국이 수용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하지만 북한이 핵 리스트 신고를 하면 영변 이외의 비밀 핵시설도 포함되고 향후 검증과정에서 핵물질의 양은 과학적으로 추정 가능하다. 북한이 끝내 신고를 거부하는 것은 이러한 비밀 시설을 감추겠다는 의도다. 핵 능력 부분 동결의 의미는 있지만 신뢰도가 낮은 살라미 협상의 변형이기에 성적은 B다.
 
다섯째, 김정은 위원장은 ‘완전한 비핵화 의지’만을 언급하고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요구하는 선에서 타협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의 비핵화 의지 표명이 평가받을 수 있지만 북한의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쉽게도 성적은 C+다. 그 밖의 시나리오 구상도 가능하지만 평가가 필요 없는 낙제 수준이다.
 
현재 한국 정부는 비핵화 협상과 관련하여 어떤 성과를 목표로 협상안을 만들었는지 구체적 내용을 밝히지 않고 있다. 다만 문정인 대통령 특보가 밝힌 북한의 ‘구두(口頭) 신고 의사 표명 후 종전선언’ 방식이 준비된 것으로 보인다. 이 역시 김정은 위원장의 입으로 공개 의사표명이 이루어진다면 A+나 A에 가까운 대안이다. 과연 북한이 어떻게 답할지 궁금하다.
 
물론 남북정상회담의 의제는 비핵화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교류협력과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도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비핵화에 진전 없이는 ‘한국의 안보 우려’가 해소될 수 없다. 정부의 분발을 촉구하며 다가올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의 큰 진전을 기대한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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