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물 주는 호스, 2m 바람벽 … 폭염·태풍 이겨낸 무주 사과 장인

전북 무주의 사과 장인 이보상씨가 자신의 과수원을 둘러보고 있다. 이씨는 한해 100t 가량의 사과를 수확한다. [이수기 기자]

전북 무주의 사과 장인 이보상씨가 자신의 과수원을 둘러보고 있다. 이씨는 한해 100t 가량의 사과를 수확한다. [이수기 기자]

지난 5일 전북 무주군 안성면의 한 과수원. 해발 650m 고지에 오르자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처럼 붉은 사과 열매를 매달고 있는 사과 나무가 끝없이 펼쳐졌다. 산 경사면에 자리한 이 과수원에만 약 2000여 그루의 사과나무가 있다. 이곳은 전북 무주에서 30년 넘게 사과 농사를 지어온 이보상(60)씨의 과수원이다. 이씨는 이 일대 약 3만3000㎡(1만평) 규모의 과수원을 갖고 있다. 그가 한 해 수확하는 사과만 100t 가량이다. 이중 절반 가량이 추석을 겨냥해 9월 초중순에 수확하는 홍로 품종의 사과다. 나머지 50t이 부사다. 이씨는 “올해는 30년 과수원 농사 중 가장 어려웠던 한 해”라고 말했다.
 
실제 올해는 이씨를 비롯한 과일 재배 농가들에 그 어느 때보다 힘든 한해였다. 개화기인 4월 이상 저온으로 냉해를 입은 데다, 여름철 폭염 등으로 인해 수확량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농민들 사이에선 올해가 ‘오재(五災·다섯 가지 재앙)가 겹친 해’라는 자조 섞인 이야기도 나온다. 냉해를 시작으로 더위는 물론 늦장마와 태풍까지 겪었기 때문이다. 늦장마는 과일의 당도를 비롯한 상품성을 떨어뜨린다. 실제 올해의 이상 기후는 과일의 생산량에도 악영향을 줬다. 12일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농업관측본부에 따르면 올해 사과 생산량은 지난해보다 15.2%가 줄어든 46만2000t에 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올해 추석 성수기(추석전 2주, 9월1일~23일)의 사과 출하량 역시 전년 성수기보다 14%가 적은 5만5000t 수준으로 예상된다. 사정은 배도 마찬가지다. 올해 배 생산량은 전년보다 21%가 적은 20만9000t에 그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추석 과일 물가가 벌써부터 들썩인다’는 걱정이 괜한 소리가 아니다. 실제 9월초 현재 추석용 선물세트에 많이 쓰이는 사과 홍로(10㎏, 상품 기준)의 경우 가격이 전년보다 6.2%가 뛰었다. 정부가 비축물량을 조기에 방출하는 등 물가 관리에 비상이 걸렸다. 이런 어려운 여건에도 꾸준히 전년 이상의 생산량을 유지하는 과수농가도 있다. 이씨가 대표적이다. 그는 “냉해와 더위 탓에 그 어느 때보다 농사 짓기가 힘들 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꾸준히 이상 기온 등에 대비를 해온 덕에 수확량 자체는 크게 줄지 않았다”고 소개했다.
 
이상 기온에도 그가 큰 피해를 입지 않은 비결 중 하나는 무주군의 유리한 지형 조건이다. 실제 무주군은 사과 재배의 적지다. 주변 산들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어 풍수해 피해가 적다. 연평균 일교차는 20~25도에 달해 병충해가 적어 거의 농약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서늘하고 건조한 기후 덕에 사과가 잘 자라는 것도 특징. 하지만 무주에 있는 모든 사과 재배농이 올해 이씨처럼 좋은 성과를 낸 것은 아니다. 지형 조건에 과학적인 영농법과 품질을 지키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보태졌다.
 
 
10년 전 이스라엘 과학농법 도입
 
이씨가 과수원에 설치한 높이 2m 바람벽.

이씨가 과수원에 설치한 높이 2m 바람벽.

우선 그의 과수원은 올 여름 무더위에도 열과(熱果·열기로 인한 피해를 입은 과일)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 비결은 과수원 내 사과나무 주변을 잇는 검은색 호스에 있다. 이는 ‘점적관수(Drip Irrigation·물을 나무 뿌리 등에 일정하게 흘려보내는 것)’를 위한 호스다. 점적 관수는 원래 물이 부족한 이스라엘에서 최소한의 물로 식물을 키워내기 위해 개발된 기술이다. 이씨는 벌써 10여년 전 이를 자신의 과수원에 도입했다. 과수원 전체를 잇는 관수시설(호스)의 총 길이는 3.5㎞에 달한다. 제때 시원한 물을 공급한 덕에 가뭄과 열기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했다.
 
여기에 사과나무 사이사이 고랑에는 2m 정도 높이의 파란색 모기장 같은 시설이 줄지어 서 있다. 수확기 태풍 등으로 인한 피해를 막기 위한 바람벽이다. 바람이 심하게 불 때면 이 벽을 내려 과일에 직접 강한 바람이 닿는 것을 막는다. 과수원에 쳐져있는 바람벽의 길이는 3㎞에 달한다. 이씨 만의 농사 노하우도 있다. 그는 바닷물과 담수를 일정 비율로 섞어 나무에 준다. 바닷물의 염분을 활용해 병충해를 막기 위함이다. 올 여름처럼 고온과 가뭄이 이어질 땐 응애와 진딧물 같은 해충의 발생확률이 커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그의 과수원은 올해에도 별다른 병충해 피해를 입지 않았다. 농촌진흥청 강문석 농업연구관은 “이씨는 가뭄과 태풍 대비를 미리 다 해놓은 셈”이라고 평했다. 여기에 그는 봄철에 솎아낸 열매들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액체 비료로 만들어 사과나무에 다시 주입해오고 있다. 이를 통해 사과의 당도를 끌어올린다.
 
바닷물의 염분 활용 병충해 예방
 
사과 장인 이보상씨가 설치한 점적관수.

사과 장인 이보상씨가 설치한 점적관수.

무주군 일대에서 그는 끊임없는 투자와 연구를 하는 농민으로 꼽힌다. 과일유통업체인 채과원의 남국필 이사는 “천혜의 자연환경 조건에 과학적인 영농법까지 갖춰 성과가 좋을 수 밖에 없다”고 평했다. 품질을 지키기 위한 노력도 꾸준하다. 그는 나무 한 그루 당 생산되는 사과 수를 평균 100~120개 선으로 유지한다. 지나치게 많은 사과를 얻기 보다 적정수의 사과를 얻어야 품질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한해 3~5번의 적화와 적과(꽃과 과일을 솎아내는 작업)는 기본이다.
 
나무 자체의 품질도 꼼꼼히 관리한다. 보통 사과나무는 30년 가량 수확이 가능하지만 그는 가급적 나무가 20세 가량이 되면 이를 도태시키고 다른 젊은 나무를 심는다. 아무래도 젊은 나무가 더 맛좋은 과일을 낼 수 있을 것이란 믿음에서다.
 
수확기에는 사과가 가급적 압상(壓傷·눌려서 나는 상처)을 입지 않도록 숙련도가 높고 손의 힘이 지나치게 세지 않은 이들만 골라 고용한다. 또 가을에 수확한 사과라도 당도가 14브릭스가 되지 않는 것은 상품으로 내놓지 않는다. 이씨는 “아까운 기분이 들더라도 품질을 지키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덕분에 그가 내놓는 사과는 최소 15브릭스 이상의 당도를 자랑한다. 일부는 16.6브릭스까지 당도가 나온다. 추석용인 홍로의 경우 평균 당도는 14브릭스 내외다. 이런 까다로운 노력 덕에 전체 수확량의 30% 정도는 백화점 등에 선물세트 용으로 팔려나간다. 인치현 롯데백화점 청과바이어는 “이씨와 현재 15년째 거래를 계속해 오고 있는데, 사과 품질과 관련해 소비자의 컴플레인 신고가 들어온 것은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물론 어려움도 있다. 올해 그의 과수원 역시 선물용 대과(大果) 수확 비중은 예년보다 다소 낮을 것이란 우려다. 한다고는 했지만, 날씨의 영향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어서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역시 올해 홍로의 대과 생산 비중은 전년보다 13%포인트 가량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씨는 “무더위 속에서 사과를 솎아내는 등의 작업은 체력적으로도 너무 힘들었고 나무도 사람 못지 않게 힘이 들었을 것 같다”며 “내년에는 더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연구하고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무주=이수기 기자 retalia@joongang.co.kr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