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스트라다무스 예언 받드는 프로방스의 와이너리

 프랑스 남동부의 프로방스(Provence)를 생각하면 늘 가을이 떠오른다. 한여름의 독기가 사라진 볕은 따사롭고 물기가 줄어든 공기는 바스락거린다. 무엇보다 건물과 들녘의 색이 가을빛을 닮았다. 프로방스에는 작고 사랑스러운 마을이 수두룩하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지중해의 휴양지도 있고, 불멸의 화가가 예술혼을 불사르던 도시도 있다. 그리고 요리 대국답게 ‘맛’을 중심에 둔 마을도 당연히 만날 수 있다.

프랑스 레 보 드 프로방스 지역에 자리한 마스 드 라 담 와이너리.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따라 포토밭 곳곳에 돌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사진 노중훈]

프랑스 레 보 드 프로방스 지역에 자리한 마스 드 라 담 와이너리.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따라 포토밭 곳곳에 돌기둥을 세웠다고 한다. [사진 노중훈]

 
 50년 전통의 가족 호텔
 마르세유 동쪽 약 50㎞ 거리에는 고즈넉한 중세 마을 라 카디에르 다쥐르(La Cadiere d’Azur)가 있다. 1969년 문을 열어 2대째 이어온 베라르(Berard) 호텔이 이 마을에 자리한다.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을 보유한 부티크 호텔이다. 12년 전 아버지 르네 베라르가 별을 획득했고, 아들 장프랑수아 베라르가 별을 유지하고 있다. 텃밭에서 약초를 재배하는 어머니는 1월 중 3주를 제외하면 문 닫는 법이 없는 호텔에서 매일 상냥한 미소로 손님을 맞는다.
프랑스 최초로 쿠킹클래스를 만든 주인공 르네 베라르 셰프. 베라르 호텔을 운영 중이며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도 보유하고 있다. [사진 노중훈]

프랑스 최초로 쿠킹클래스를 만든 주인공 르네 베라르 셰프. 베라르 호텔을 운영 중이며 미쉐린 1스타 레스토랑도 보유하고 있다. [사진 노중훈]

 생호두를 곁들인 샐러드, 부야베스(일종의 생선 스튜) 스타일로 조리한 눈볼대와 농어, 졸인 오렌지를 깔고 칼리송(프로방스 전통 과자) 모양의 아이스크림을 얹은 디저트로 구성된 저녁 식사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재료의 신선함이 쉴 새 없이 식욕을 자극했다.
 르네 베라르는 26년 전 프랑스에서 최초로 쿠킹 클래스를 시작한 주인공이다. 호텔 근처에 있는 프로방스 양식의 건물에서 요리 수업을 진행하는데, 인기가 상당하다. 그가 식자재를 구입하는 곳은 이웃 항구도시 사나리쉬르메르(Sanary-sur-Mer)의 전통시장이다. 수요일마다 시장에 들르니 거의 모든 가게 주인과 너나들이로 지낸다. 그야말로 살가움이 넘쳐 흐른다. 당장 지방선거에 나가도 당선이 확실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쿠킹클래스 식재료를 사기 위해 사나리쉬르메르 지역의 전통시장을 찾았다. 노 셰프가 생선을 신중히 고르는 모습. [사진 노중훈]

쿠킹클래스 식재료를 사기 위해 사나리쉬르메르 지역의 전통시장을 찾았다. 노 셰프가 생선을 신중히 고르는 모습. [사진 노중훈]

 쿠킹 클래스는 차분하고 꼼꼼하게 진행됐다. 주름이 깊게 팬 백발의 노(老) 주방장은 부지런히 채소를 썰고, 생선 비늘과 가시를 제거하고 살을 발라냈다. 올리브유도 조심스레 따랐다. 3시간 뒤 마침내 앙쇼야드(마늘·올리브유·식초를 넣고 만든 안초비 퓌레를 빵에 발라 오븐에 구운 요리), 베라르가 가장 사랑하는 식재료인 눈볼대가 들어간 생선 수프, 대구 살 퓌레, 망고 소르베 등이 완성됐다. 맛도 맛이지만 “음식을 만들 때는 모든 순간이 중요하다”는 요리 대가의 진중한 태도가 더 큰 울림을 남겼다. 
쿠킹클래스에서 맛본 수프. 르네 베라르 셰프가 가장 사랑하는 식재료인 눈볼대로 만들었다. [사진 노중훈]

쿠킹클래스에서 맛본 수프. 르네 베라르 셰프가 가장 사랑하는 식재료인 눈볼대로 만들었다. [사진 노중훈]

 
 와인 6만 병 보유한 레스토랑 
 미식에 관한 자부심이 유별난 마을 레 보 드 프로방스(Les Beaux de Provence)도 흥미롭다. 마을에서 제일 튀는 존재는 ‘빛의 채석장’ 카리에르 드 뤼미에르(Carrieres de Lumieres)다. 쓸모를 다한 대형 채석장이 이색 전시장으로 거듭났다. 면적 6000㎡ 높이 14m에 달하는 채석장에서 프로젝터 100여 대가 고흐·고갱·모네 같은 유명 화가의 그림을 비춘다. 시각과 음향 효과가 절묘한 앙상블을 이뤄 분위기가 사뭇 몽환적이다.
레 보 드 프로방스 마을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인 '빛의 채석장'. [사진 노중훈]

레 보 드 프로방스 마을을 대표하는 관광 명소인 '빛의 채석장'. [사진 노중훈]

쓸모를 다한 채석장 안에 프로젝트로 고흐·고갱·모네 같은 전설적인 화가의 작품을 비춘다. [사진 노중훈]

쓸모를 다한 채석장 안에 프로젝트로 고흐·고갱·모네 같은 전설적인 화가의 작품을 비춘다. [사진 노중훈]

 마스 드 라 담(Mas de la Dame)은 이 지역 최초의 와이너리다. 1935년부터 할아버지가 일군 가업을 손녀들이 물려받았다. 오래된 와이너리답게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온다. ‘바다가 육지를 덮는 날, 스텔(비석 또는 돌기둥)이 그것을 막을 것이다’라는 노스트라다무스(그의 고향도 프로방스다)의 예언에 따라 할아버지가 와이너리에 돌기둥을 많이 세웠다고 한다. 와인병에도 스텔이 그려져 있다. 포도밭은 고흐의 화폭에 담겼을 만큼 아름답다. 특히 저녁놀이 내려앉아 홍조를 띤 모습이 압권이다. 프로방스는 로제 와인이 강세를 띠지만, 이 일대만큼은 돌과 자갈이 많은 토양의 특성상 레드 와인이 유명하다.
레보 드 프로방스 지역의 따사로운 가을 풍경. [사진 노중훈]

레보 드 프로방스 지역의 따사로운 가을 풍경. [사진 노중훈]

 보마니에르(Baumaniere)는 지역을 대표하는 명물 호텔이다. 엘리자베스 여왕과 찰스 황태자, 피카소와 샤갈 등 호텔에 머물렀던 면면이 화려하다. 창업자의 손자인 장 앙드레 샤리알(Jean Andre Charial)이 호텔을 운영한다. 그는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인 우스토 드 보마니에르의 셰프이기도 하다. 레스토랑 한쪽에는 1959년 장 콕토(작가이자 영화감독)와 피카소가 이곳에서 식사한 뒤 그의 할아버지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 걸려 있다. 와인 컬렉션도 어마어마하다. 6만여 병이 보관돼 있는데, 1900년 이전에 생산된 희귀 와인이 20병이나 된다.
마스 드 라 담 와이너리는 고흐의 화폭에도 담겼다. [사진 노중훈]

마스 드 라 담 와이너리는 고흐의 화폭에도 담겼다. [사진 노중훈]

 샤리알의 카리스마가 지배하는 저녁 식사는 강렬했다. 올리브를 시작으로 눈볼대 무스, 안초비와 마늘을 발라 구운 양고기 등이 줄줄이 이어졌다. 와인은 물론이고 음식과 빵의 궁합도 중요하게 여겨 코스마다 종류가 다른 빵이 곁들였다. 식재료에 대한 해석, 조리의 완결성, 플레이팅 등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 없었다. 프로방스 미식 기행의 절창이었다.
안초비와 마늘을 발라 구운 양고기.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을 보유한 보마니에르 호텔 레스토랑에서 맛봤다. [사진 노중훈]

안초비와 마늘을 발라 구운 양고기. 미쉐린 2스타 레스토랑을 보유한 보마니에르 호텔 레스토랑에서 맛봤다. [사진 노중훈]

여행정보
수영장과 로마식 온천을 갖춘 베라르 호텔. [사진 노중훈]

수영장과 로마식 온천을 갖춘 베라르 호텔. [사진 노중훈]

 프랑스 파리까지 간 다음, 에어프랑스 국내선을 이용해 마르세유로 이동한다. 마르세유에서 라 카디에르 다쥐르까지는 자동차로 약 40분, 레 보 드 프로방스까지는 1시간 15분 걸린다. 35개 객실을 갖춘 베라르 호텔(hotel-berard.com)은 로마 시대 온천을 재현한 스파도 이용할 만하다. 보마니에르 레 보 드 프로방스 호텔(baumaniere.com)도 야외수영장과 로마 시대 온천을 갖췄다.
 
 
 
 노중훈 여행작가 superwiner@naver.com
『식당 골라주는 남자』『노포의 장사법(공저)』 등을 펴냈고, 현재 MBC 라디오 프로그램 ‘노중훈의 여행의 맛’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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