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 “미국 과학자 되지 말고 한국 과학기술의 문익점이 돼라”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958년 10월 1일 미 우주항공국(NASA) 출범 뒤인 59년 1월 의회에 나와 연설하고 있다. 뒷줄 왼쪽은 당시 부통령이던 리처드 닉슨, 오른쪽은 미 하원의장 샘 레이번. 미국은 소련이 57년 10월 4일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자 충격을 받았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장기 우주 계쇡을 수행할 NASA를 설립하고 과학기술 연구와 교육 체계를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했다. [NASA 홈페이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1958년 10월 1일 미 우주항공국(NASA) 출범 뒤인 59년 1월 의회에 나와 연설하고 있다. 뒷줄 왼쪽은 당시 부통령이던 리처드 닉슨, 오른쪽은 미 하원의장 샘 레이번. 미국은 소련이 57년 10월 4일 세계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자 충격을 받았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 장기 우주 계쇡을 수행할 NASA를 설립하고 과학기술 연구와 교육 체계를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했다. [NASA 홈페이지]

독립운동가 출신으로 3대 문교부 장관을 김법린 초대 원자력 원장의 마지막 당부는 ‘자기희생’이었다. 철학자인 김 원장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는 내게 “한 알의 밀알이 되라”고 주문했다.  

“자네는 미국 가서 박사 학위를 받은 다음에 미국 과학자가 되지 말고 귀국하도록 하게. 돌아와서 할 일이 있네. 자네 세대는 빈약한 국내 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었지만 자네 후배들까지 그렇게 되면 되겠나?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희생해야 거목이 될 수 있네. 자네는 미래 과학기술 한국의 기반을 위해 희생하게.”
이 말을 듣는 순간 머리에서 불꽃이 일었다. 내가 잘 되라는 덕담은 숱하게 들었지만 남을 위해 희생하라는 이야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말을 이어갔다. 
“한국이 잘 사는 나라가 되려면 무엇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뤄져야 하네, 그런데 과학기술의 발전이란 것이 한두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게 아닐세. 미국에 가서 혼자 박사 학위를 받는다고 되는 게 아니란 말이지. 물론 박사 학위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 하지만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한국의 전반적인 과학 수준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 그 비결을 알아오는 것일세. 많이 배우고 연구해서 한국 전체의 과학기술 수준 향상에 기여해야 해.”
그러면서 미국의 연구·개발 체계와 과학기술 인재 양성 제도를 자세히 공부하고 돌아오라는 구체적인 주문까지 했다.  
“그러니 자네는 미국에 있는 동안 그들의 유명 대학교, 유명 연구소, 정부 과학기술 기관을 고루 다녀보도록 하게. 그러면서 미국이 어떻게 세계 최고의 과학기술 문명을 발전시키고 있는지, 과학기술자는 어떻게 기르는지 그 비결을 알아 오게.”
그래야 훗날 우리 실정에 맞는 교육과 연구 기관을 만들 수 있고, 그런 다음에야 선진국과 맞먹는 과학기술 역량을 가질 수 있다는 뜻이었다. 개발도상국인 한국이 과학입국과 경제발전을 할 수 있도록 '과학기술 분야의 문익점'이 되라는 주문이었다. 
이 말을 처음 듣는 순간 충격을 받았다. 그전까지 머릿속에는 미국 박사 학위를 받고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꿈만 가득했기 때문이다. 장학생이 된 이상 어떻게든 박사 과정을 이수해야 했기에 공부에만 신경을 쏟았다. 김 원장은 그런 내가 미처 생각하지도 못했던 크고 새로운 소명을 알려줬다. 이는 내가 왜 유학을 떠나는지, 가서 전공 외에 미국의 어떤 부분을 보고 배울 것인지, 돌아와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다. 어쩌면 개인의 영달이나 명예를 목표로 삼았을 수도 있었던 미국 유학의 방향을 국가와 국민을 먼저 생각하는 쪽으로 돌릴 수 있었다. 미국에서 어려운 상황에 부닥칠 때마다 왜 이런 고생을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분명히 새기며 극복하는 힘이 되기도 했다. 1960년 3월 24일 미지의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해보니 미국은 항공우주국(NASA)을 신설하는 등 과학기술 분야 투자를 늘리고 연구·교육 체계를 온통 뜯어고치고 있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