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생 백혈병 환자에게도 “죽음 임박” 알려야 한다니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의 모습 [중앙포토]

한 대학병원 중환자실의 모습 [중앙포토]

초등학교 6학년 진호(가명ㆍ12)는 얼마 전 급성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항암제를 바꿔가며 수차례 항암 치료를 거듭한 끝에 나아지는 듯했다. 동생의 조혈모세포(골수)를 기증받아 이식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식 수술을 준비하던 진호에게 갑자기 고열과 두통 증상이 나타났다. 급히 응급실을 찾아 검사했더니 백혈병이 재발했다는 진단이 나왔다. 잇따른 항암 치료에도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 새 폐에 진균이 감염되는 합병증이 생겼다. 면역력이 약해진 탓에 항진균제 치료에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폐에 물이 차올랐다. 병세가 급격히 악화됐다. 의료진은 진호에게 더이상의 항암 치료가 의미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연명 의료 결정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
 
현행 연명의료결정법은 어린 환자에게도 의무적으로 회생 불가능한 말기ㆍ임종기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알리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에 따르면 담당 의사는 진호에게 “너는 곧 죽는다”고 말하고 연명 의료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진호의 부모는 “아이가 알면 낙심해서 상태가 더 나빠질지 모른다”며 반대했다. 담당 의사는 고민에 빠졌다.
 
생의 마지막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연명의료결정법은 진호 같은 미성년 환자에게도 적용된다. 어린 환자에게 연명의료 중단을 시행하는 의료진들에게 ‘자기 결정권’은 고민거리다. 김민선 서울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유권해석을 통해 연명의료계획서에 미성년 환자 대신 친권자가 서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어린 환자에게 반드시 설명해야 한다는 법 조항을 계속 유지해야만 할지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 미성년자라 해도 부모가 본인에게 알리지 않고 결정해도 되느냐는 지적도 있다. 환자가 10대 청소년이라면 자신의 죽음에 대해 판단하고 의사를 표현할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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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예 연명 의료 중단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도 있다. 노숙자나 독거노인 같은 무연고자들이다. 현행법에 이들에 대한 연명 의료를 중단할 근거가 없다.  
 
지난 8월 65세 남성 A씨가 길거리에서 쓰러져 서울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그는 말기 암 환자였다. 심폐소생술을 하고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병원은 경찰과 주민센터의 도움으로 가족을 찾았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중환자실에서 며칠 보내며 고비는 넘겼지만 더이상의 치료가 의미 없는 상태였다. 환자는 의식이 없었다. A씨는 공공 병원으로 옮겨져 인공호흡기를 달고 연명하다 한 달 만에 숨졌다.  
 
연명 의료 중단은 본인이 결정하는 게 원칙이다.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상황이면 사전 작성하거나, 연명의료계획서에 서명하면 된다. 의사를 표현할 수 없다면 가족 2명이 “환자가 평소 연명 의료를 원하지 않았다”고 진술하거나, 가족 전원이 합의해 연명 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 A씨 같은 무연고자가 의식을 잃는다면 이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최근 5년간 숨진 무연고자는 8000여명에 달한다. 이 중 적지 않은 사람이 연명 의료를 할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한 연명의료결정법률안에는 ‘법정대리인이나 가족이 없는 환자는 병원윤리위원회에서 연명의료 중단을 의결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위헌 소지가 있다"며 이 조항을 삭제했다. 라정란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팀장은 "1인 가구가 급속도로 늘고 있고 과거와 가족의 형태가 달라지는데 법은 이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라며 "가족 없는 환자가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한 대안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s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