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곳곳서 "우리나라 사람"…머큐리엔 보헤미안의 피가 흐른다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사진 중앙포토]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사진 중앙포토]

[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전설의 록밴드 '퀸' 리드 보컬, 우리가 몰랐던 것들 
최근 영국 록밴드 ‘퀸’의 리드 보컬인 프레디 머큐리(1946~91년)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화제를 몰고 다닌다. 프레디 머큐리라는 걸출한 록 가수 때문이다. 영화 제목과 같은 ‘보헤미안 랩소디’는 물론 ‘위 아 더 챔피언’ 같은 불후의 명곡을 남긴 ‘퀸 자체가 이미 전설의 록밴드지만 프레디 개인은 가히 신화급이다.

노래의 리듬과 멜로디에서 우러나는 감정을 고스란히 목소리와 표정, 그리고 행동으로 표출함으로써 폭발적인 무대를 연출했다. 4옥타브를 오르내린다는 광폭의 음색과 공연장을 들었다 놨다 하는 격정적인 무대 매너는 관중의 가슴을 온통 헤집기 일쑤였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배우가 실제 프레디 머큐리를 재현하려고 노력한 모습이 역력하다.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의 한 장면. 배우가 실제 프레디 머큐리를 재현하려고 노력한 모습이 역력하다.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그런데 그의 얼굴을 보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영국인과 사뭇 다르다. 영국 자체가 유사 이래로 수많은 민족이 들어와 정착한 나라이긴 하다. 켈트족, 로마 제국의 여러 곳에서 왔을 다양한 종족으로 이뤄졌을 로마인(최근 영국에서 발견된 로마 시대 인골은 분석 결과 중국계로 추정된다고 한다), 앵글로색슨의 게르만인, 덴마크인, 프랑스 노르망디에서 넘어온 노르만인 등등 실로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런 것을 고려해도 프레디는 외모가 너무 튄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출생은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섬
도대체 그는 어디 출신의 영국인일까? 그래서 프레디 머큐리의 족보를 한번 찾아봤다. 그는 흔히 아프리카 동부의 탄자니아 출신으로 알려졌다. 태어난 곳이 탄자니아의 섬인 잔지바르인 건 맞다. 그런데 따져 보면 잔지바르는 1505년 이후 포르투갈 식민지를 거쳐 아라비아의 해양국가 오만의 식민지로 노예거래의 중심지로 존속했다. 토착 아프리카 문화에 이슬람 문화가 더해지고 식민지 종주국인 영국 문화, 그리고 영국인에 데려온 인도인의 문화가 뒤섞인 복잡한 문화적 배경이 있는 지역이다.  

 
 
프레디, 인도에서 10년간 기숙학교 다녀
프레디의 부모는 인도 서부 구자라트주 출신으로 영국의 식민지 관리로서 잔지바르로 이주했다. 잔지바르에서 태어난 프레디는 인도로 8살 때 1954년 인도로 보내져 뭄바이 근처의 영국식 기숙학교에서 1963년까지 10년 가까이 지냈다. 어려서 아프리카와 인도 문화를 고루 체험한 셈이다.  

 
인도 출신 부모 고대종교 조로아스터교 신자
 
독특한 점은 프레디의 집안사람들이 인도에서도 종교적으로 소수인 조로아스터 교도라는 사실이다. 조로아스터교는 고대 페르시아의 종교로 더러운 것을 정화한다고 해서 불을 숭배하기 때문에 배화교로 번역된다. 고대 페르시아인 자라수슈트라(영어로 조로아스터, 독일어로 차라투스트라로 옮김)가 창시한 종교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교향시 제목에 등장하는 바로 그 차라투스트라다. 니체의 이 난해한 철학 서적은 차라투스트라가 10년간의 동굴 수도를 마치고 나와 설교하는 내용으로 이뤄졌다. 내용은 조로아스터교가 아닌 니체가 주장하는 초인, 권력의지, 영원회귀 등을 다룬다고 하는데 읽어봐도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사람이 더 많은 게 사실이다.  

록그룹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오른쪽)의 실제 공연 모습.[사진 중앙포토]

록그룹 '퀸'의 보컬리스트 프레디 머큐리(오른쪽)의 실제 공연 모습.[사진 중앙포토]

 
조로아스터 종교 난민이 조상 
아무튼 조로아스터교는 천지창조를 주관한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에게 경배를 드린다고 해서 마즈다교로도 불린다. 유일신만 따른다고 해서 ‘세계 최초의 일신교’로 평가된다. 선한 생각과 말, 행동, 그리고 인간 자유의지를 통해 인간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아후라 마즈다가 악을 끝내 물리치고 승리하면서 우주와 시간이 끝난다는 종말론을 내세운다. 사후세계도 믿는다. 
중동 각지에서 탄생한 여러 종교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평가 받는다. 물론 해당 종교에선 펄쩍 뛰겠지만.  
고대에는 이란 전역과 상당수 중동 지역에 조로아스터교가 번성했으나 622년 탄생한 이슬람의 세력이 633~654년 페르시아 지역을 정복하면서 밀려났다. 지금의 인도 지역과 중앙아시아에 과거 페르시아에서 이주한 조로아스터교 신자의 후손들이 남아 명맥을 이어간다. 전 세계에 20만 명 정도가 믿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페르시아어(이란어)로 페르시아인이라는 의미의 ‘파르시’로 불린다. 인도의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1989~1964년, 재임 1947~1964년)의 딸로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총리인 인다라 간디(1917~1984년, 재임 1966~1977년, 1980~1984년)의 남편 페로제 간디(1912~1960년)가 조로아스터교를 믿었다. 참고로 페로제 간디는 인도의 국부로 추앙받는 힌두교도 마하트마 간디(1869~1948년)와 아무런 혈연관계가 없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사진=이십세기폭스코리아]

 
아버지는 식민지 관리로 잔지바르 근무 
프레디의 삶을 정리하면 할수록 복잡하다. 영국 식민지인 인도가 부모의 고향이다. 고대 페르시아계 종교로 인도에선 소수종교인 조로아스터교를 믿는 집안 출신이다. 영국의 또다른 식민지인 동아프리카 잔지바르에서 관리로 일하던 부친 밑에서 자랐다. 토착 아프리카 문화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한 잔지바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인도 뭄바이 인근의 영국식 기숙학교에서 다녔다. 종족, 문화, 종교, 언어 등 모든 것이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독립 잔지바르에서 혁명 터지자 영국행
1964년 영국에서 독립한 잔지바르 술탄국에서 혁명이 일어나 잔지바르 인민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인도계와 아랍계를 탄압하자 프레디의 가족은 이 섬을 떠나 영국으로 이주했다. 영국에 정착한 프레디는 영국 국적을 얻었으며 1970년 결성된 록그룹 퀸에 들어가서 가수의 길을 걸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프레디는 결국 영국인으로 살게 됐다. 그는 영국 문화의 일부로 편입되는 수준을 넘어 현대 영국 록음악 문화, 더 나아가 세계 문화를 창조하는 아이콘이 됐다. 그는 91년 에이즈로 세상을 떠났다.  
 
프레디 머큐리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우리나라 사람’ 또는 ‘우리 민족의 후손’이라는 말을 듣는다. 2016년 이란을 방문했을 당시 현지인 가이드로부터 프레디 머큐리가 이란인 후손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그의 본명을 찾아봤더니 파로크 불사라였다. 그는 영국 국적을 취득하면서 이름을 파로크에서 프레드로 바꿔 영국에선 프레드 불사라로 불린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슬람 신정체제이지만 그 이전은 물론 혁명 이후인 지금도 서구 문화를 은밀하게 즐기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일부 이란인이 전설의 록그룹 퀸의 리더 보컬 프레드 머큐리가 천 년도 더 전에 자국에서 이주한 페르시아인의 후예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건 절대 이상하지 않다. 심지어 이란 경제부를 방문했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미국 가수 배버라 스트라잰드의 노래 ‘우먼 인 러브’가 들리기도 했다. 그는 유명한 유대인이기도 하다. 문화는 국경도 장벽도 없어야 한다.  
영국 록그룹 '퀸'의 리더 보컬 프레디 머큐리. [사진 중앙포토]

영국 록그룹 '퀸'의 리더 보컬 프레디 머큐리. [사진 중앙포토]

 
인도인 친구는 프레디가 ‘인도가 낳은 위대한 아티스트’라고 주장한다. 케냐에 갔을 때 현지인 가이드는 프레디를 ‘위대한 아프리카인’이라고 말했다. 각종 인명사전에는 ‘영국 출신의 록 가수’로 표기된다. 모두의 말이 다 맞을 수도 있다. 사실 그가 어디 출신인지는 중요하지도 않다. 중요한 건 그가 다문화와 다종교 시대 앞서간 아이콘이라는 사실이다. 모든 인간이 차별 없이 뭉치는 문화융합 힘을 보여준 인물이다. 
이번에 나온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다양한 문화가 뒤엉킨 배경 속에서 영국인으로 살다가 세상을 떠난 프레디의 삶을 반추해보는 계기가 되는 건 반가운 일이다. 과거 제국주의와 식민주의가 만든 다문화 환경이 그를 기른 자양분이 됐다. 프레디가 ‘식민주의’와 ‘포스트 식민주의’, 나아가 ‘포스트 포스트 식민주의’까지 새롭게 살펴보는 시대를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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