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싸는 증권맨, 여의도 칼바람 부나

여의도 증권가의 화려한 야경. 구조조정의 삭풍이 몰아치면서 유난히 추운 겨울을 나야 할 상황이다. [중앙포토]

여의도 증권가의 화려한 야경. 구조조정의 삭풍이 몰아치면서 유난히 추운 겨울을 나야 할 상황이다. [중앙포토]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짙어진 불황의 그림자가 증권가에 칼바람을 몰고 올 분위기다. 온라인 거래가 늘고 비용 절감용 지점 통합과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증권사가 늘면서 증권맨의 설 자리가 계속 줄어들고 있어서다.
 
6일 금융투자협회 공시에 따르면 올해 9월 30일 기준 56개 국내 증권사의 지점 수는 998개다. 국내 증권사 지점 수가 1000개 아래로 떨어진 건 사상 처음이다. 지점 수가 1790개에 달했던 2010년 말과 비교하면 8년 사이 절반가량이나 줄었다.
 
지점 수가 줄어들면서 여의도를 떠나는 증권맨도 늘고 있다. 증권사 임직원 수는 2011년 말 4만4055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감소하면서 현재 3만6220명으로 집계된다.
 
더욱 심각한 건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1월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이 합병한 KB증권은 이달에만 경기도 고양시 화정동, 울산시 전하·화봉동 등 3곳의 지점을 없애고 인근 점포와 통합했다. KB증권은 또 지난 5일부터 증권사 통합 후 처음으로 희망퇴직 신청도 받고 있다. 만 43세(1975년생)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월 급여의 27~31개월분까지 연령에 따라 지급하고 생활지원금과 전직 지원금을 합해 3000만원을 주는 조건이다.
 
지난달부터 노사 간 임금협상 중인 미래에셋대우에서도 통폐합을 통한 30% 정도의 지점 감축안이 나오고 있다. 미래에셋대우는 2016년 말 미래에셋증권과 대우증권이 합쳐진 뒤 두 회사 지점을 통합해 대형화하는 전략을 펼쳐 왔다. 합병 전 180여 곳이던 지점은 현재 148곳(9월 말 기준)으로 줄었다. 만일 30%를 더 줄인다면 내년에만 40곳 넘는 지점이 문을 닫을 수 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금융투자업계에선 대형 증권사의 잇따른 지점 축소나 희망퇴직이 증권가 구조조정의 신호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임원은 “희망퇴직은 말할 것도 없고 두 개의 점포를 합치기만 해도 자연스럽게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이 늘 수밖에 없다. 업무 중복, 원거리 발령에 따른 출퇴근 곤란 등 때문이다”고 말했다. 실제 미래에셋대우는 대우증권 인수 후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지만 합병 이후 지점 축소만으로도 직원 수가 230명 정도 줄었다.
 
증권업계 구조조정의 원인으로는 크게 두 가지가 지목된다. 일단 어려워진 살림살이가 구조조정 불안감을 부추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 55곳의 3분기 당기순이익은 9576억원으로 2분기보다 23.1%(2882억원) 급감했다. 1분기 1조4507억원을 기록한 이후 두 분기 연속 줄었다. 미·중 무역전쟁, 삼성바이오로직스 사태 등으로 증시가 크게 휘청이면서 거래대금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주식 중개로 벌어들인 수탁수수료가 전체 수익의 40~50%를 차지하기 때문에 증시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보다 근본적인 이유로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에 따른 거래 관행의 변화가 꼽힌다. 지점을 찾아 거래하는 고객은 줄고 개인용 컴퓨터(PC)나 스마트폰으로 주식 투자를 하는 투자자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지난해 코스피 시장에서 영업점 단말기를 이용한 거래는 14%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PC를 이용한 홈트레이딩시스템(HTS)과 스마트폰을 통한 모바일트레이딩(MTS)을 통해 이뤄졌다. 증권사 지점과 직원을 통하지 않은 비대면 증권 거래가 전체의 80%에 달하면서 지점을 유지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온라인 거래가 늘면서 영업점 상담 직원 등 주식 중개 관련 수요는 줄 수밖에 없다. 거래 수수료에 의존하는 천수답 경영에서 벗어나 투자은행(IB), 자산관리(WM), 기업금융 등 사업을 다각화해 새로운 수익원을 늘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염지현·조현숙 기자 yj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