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가 캐럴 덮쳤다…금지곡 위기 처한 X마스 명곡들

‘PC(정치적 올바름)’의 시대, 캐럴을 둘러싼 논란
 
“I've got to go away(저는 가야겠어요).” “But baby, it's cold outside(하지만 그대, 밖은 추워요).” 
캐럴 ‘베이비 잇츠 콜드 아웃사이드(Baby It‘s Cold Outside)’가 등장하는 1949년작 로맨틱 코미디 영화 ‘넵툰의 딸 (Neptune‘s Daughter)’의 한 장면. [사진 중앙포토]

캐럴 ‘베이비 잇츠 콜드 아웃사이드(Baby It‘s Cold Outside)’가 등장하는 1949년작 로맨틱 코미디 영화 ‘넵툰의 딸 (Neptune‘s Daughter)’의 한 장면. [사진 중앙포토]

 그만 집으로 가겠다는 여자와 “밖은 춥다”며 자꾸 붙잡는 남자.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종종 들려오는 인기 캐럴 ‘베이비 잇츠 콜드 아웃사이드(Baby It‘s Cold Outside)’는 한 커플의 실랑이를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듀엣곡입니다. 
 
 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의 음악감독인 프랭크 로서가 1944년 작곡했고, 1949년 제작된 로맨틱 코미디 영화 ‘넵툰의 딸 (Neptune‘s Daughter)’에 등장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후 레이디 가가, 마이클 부블레 등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으며, 한국에서도 성시경·에일리 버전으로 선보인 적이 있는 겨울 노래의 ‘고전’ 이죠. 
“이 술엔 뭐가 들어있죠?”
 미국 온라인 사이트 랭커(www.ranker.com) 설문조사에서 ‘최고의 겨울 노래’ 3위에 오르기도 했던 이 노래가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 언론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지역 라디오 방송인 ‘스타102(Star102)’가 “미투(#MeToo) 운동의 시대에 청취자들이 이 노래를 적절치 못하다고 느낄 수 있다”며 앞으로 이 노래를 방송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죠. 
 
 이어 4일에는 캐나다 라디오 방송인 벨 미디어, CBC 라디오, 로저스 미디어 등이 같은 선언을 합니다. 이에 대해 “적절한 조치”라는 지지와 “과하다”는 반대 의견이 엇갈리면서 소셜미디어(SNS)에서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이 노래를 틀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노래 가사가 ‘동의 없는 성관계’를 암시한다고 말합니다. 여자는 “The answer is no(대답은 ‘아니요’에요)” 라고 말하는 데 남자가 “You know it’s cold outside(밖에 추운 걸 알잖아요)”라며 끈질기게 졸라대는 가사 등을 예로 들면서요. 게다가 “이 술에 뭐가 들어있죠?(what’s in this drink?)”라는 내용은 ‘데이트 강간’을 떠올리게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베이비 잇츠 콜드 아웃사이드'의 내용을 풍자한 SNL의 한 장면. [사진 유튜브 캡처]

'베이비 잇츠 콜드 아웃사이드'의 내용을 풍자한 SNL의 한 장면. [사진 유튜브 캡처]

 이런 논란은 올해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몇 년 전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이 찾아오면 이 노래를 비판하거나 풍자하는 기사나 방송이 나오곤 했습니다. 지난 2015년 미국 풍자코미디쇼 ‘새터데이나이트라이브(SNL)’는 크리스마스 특집 방송에서 성범죄자인 코미디언 빌 코스비 분장을 한 배우를 등장시켜 이 노래의 내용을 비꼬기도 했죠. 
“이 술에 뭐가 들었죠?”(여자) “당신이 직장에서 원하는 걸 얻도록 도와주는 마법의 약이 들었지.”(남자) 
 
노래가 만들어지던 시대 분위기 고려해야  
 하지만 방송 중단 선언은 “너무 과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작곡가 프랭크 로서는 당시 연말 파티에서 아내와 부르기 위해 이 곡을 만들었다고 하죠. 노래의 전반적인 분위기 역시 강압적이라기보단 서로에게 마음이 있는 두 남녀의 ‘밀당’을 보여주는 내용이라는 주장입니다. 
 
 노래가 만들어진 1940년대의 사회 분위기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코미디언 젠 커크맨은 트위터에 “(노래 속) 여성은 남자와 함께 있고 싶지만, 자신이 그와 머물겠다고 했을 때 사회적 평판이 훼손될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라며 지금의 잣대로 70년 전의 노래를 평가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습니다.
 이 캐럴을 틀지 않겠다고 선언한 방송사 ‘스타 102’가 온라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 9만 여명 중 6%만이 이 노래가 방송에 ‘부적절하다’고 응답했습니다. 94%는 ‘이 노래는 클래식이므로 방송에서 틀어도 된다’며 방송국의 조치에 반대 의견을 표했습니다. 
 
 노래를 재해석하는 시도도 있었네요. 2013년 abc의 연말 방송에서는 레이디 가가와 조셉 고든 레빗이 이 노래를 듀엣으로 불러 화제가 됐는데요. 당시 두 사람은 집에 가겠다는 남자(조셉 고든 레빗)와 춥다며 그를 자꾸 붙잡는 여자(레이디 가가)로 원곡의 성별을 바꿔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징글벨’은 인종차별의 산물이다?
 논란이 된 캐럴은 이 노래 만은 아닙니다. 워싱턴포스트에 따르면 산타에게 요트나 티파니 보석을 선물로 달라고 말하는 ‘산타 베이비(Santa baby)’나, 성적인 내용이 담긴 ‘아이 서 마미 키싱 산타(I saw mommy kissing santa)’ 등의 캐롤이 아이들 교육에 좋지 않다는 지적도 계속해서 나옵니다.  
 지난 해에는 미국 보스턴대 카이아나 해밀 교수가 크리스마스 대표 캐럴인 ‘징글 벨(Jingle Bells)’이 인종차별적 뿌리를 갖고 있다는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썰매를 타고 흰 눈 위를 달린다는 ‘징글 벨’의 가사는 인종 문제와는 아무 관련이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노래가 처음 불리게 된 것이 1857년 보스턴 시내의 한 파티에서였고, 당시 백인들만 모인 이 자리에서 가수들은 불에 탄 코르크로 얼굴을 검게 칠하고 흑인들을 조롱하며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런 행사는 1930년대까지 계속됐습니다. 
 
 이 논문이 발표된 후 온라인에는 “왜 무해한 것으로 여겨져 온 캐럴을 정치적으로 난도질 하느냐”는 반발이 이어졌습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징글 벨’은 인종차별,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백인 중심, ‘베이비 잇츠 콜드 아웃사이드’는 성차별적이라 부르지 말라는 것이냐”며 고전적인 캐럴에 ‘정치적 올바름(PC·political correctness)’의 잣대를 들이대는 데 대한 불만을 터트렸죠. 
 
 해밀 교수는 자신의 연구가 논란이 되자 “나의 의도는 캐럴을 부르지 말자는 게 아니”라며 “노래에 담긴 인종주의적 기원을 밝혀, 음악이 흑백 문제에 미친 영향을 성찰해보자는 뜻이었다”고 해명했습니다.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