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후 배울 기술 선행학습 … ‘대입 올인’ 해결사 아우스빌둥

[SPECIAL REPORT] 독일식 일·학습병행 시스템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안양평촌서비스센터의 아우스빌둥 트레이니로 선발된 김진중(경기자동차과학고 3·왼쪽)군과 허민수(평택기계공고 3·오른쪽)군이 지난달 21일 트레이너 김주현씨로부터 자동차 정비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신인섭 기자]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안양평촌서비스센터의 아우스빌둥 트레이니로 선발된 김진중(경기자동차과학고 3·왼쪽)군과 허민수(평택기계공고 3·오른쪽)군이 지난달 21일 트레이너 김주현씨로부터 자동차 정비 기술을 전수받고 있다. [신인섭 기자]

한국에서 아우스빌둥이 시행된 것은 지난해부터다. 자동차 정비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는 ‘아우토 메카트로니카’ 직종에 먼저 도입됐다. 독일계 자동차 기업인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와 BMW 그룹 코리아 2개 기업이 트레이니 80명을 선발해 시동을 걸었다. 올해엔 상용차 브랜드인 만(MAN)트럭버스 코리아와 다임러 트럭 코리아가 동참해 모두 4개 기업이 117명을 선발했다.
 
트레이니들은 채용된 회사와 자동으로 연계된 여주대와 두원공대 2개의 협력대학에 나눠 다닌다. 지난해 1기생들은 현재 거의 모두 군 복무 중이다. 교육의 연속성을 살리기 위해 올해 여름 비슷한 시기에 입대했다.
 
취직과 대학 진학으로 연결되는 아우스빌둥 트레이니 모집 경쟁률은 높은 편이다. 그러나 필기 및 인성 검사를 통해 사전에 합격 여부를 가리지는 않는다. 기업 고유의 채용 기준에 따라 기업이 직접 트레이니를 선발하기 때문이다.
 
“학교 성적이나 자격증 유무가 트레이니 선발의 핵심 요건이 아닌가 하는 문의를 많이 받고 있다. 하지만 아우스빌둥은 미래 기술장인(마이스터)을 선발하는 과정인 만큼 전문가가 되기 위해 한 분야에 매진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따라서 업무 분야에 대한 비전과 스스로 노력할 수 있는 열정을 보유한 인재인지를 유념해 보고 있다. 물론 회사에 소속된 만큼 직장인으로서 협력하고 고객을 최우선으로 배려하는 인성은 기본이다.” 조규상 다임러 트럭 코리아 대표의 설명이다.
 
아우스빌둥에선 무엇보다 미래의 직무와 직접 관련된 실용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BMW 송도 바바리안 모터스의 이승한군은 “학교에서는 자격증 위주로 공부한 것 같다”며 “여기선 자동차 정비와 관련된 기술을 생생하게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같은 곳에서 일하는 박재홍군도 “트레이너 등 전문가들과 함께 작업 현장에서 체계적으로 기술과 이론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AD blue가 요소수를 뜻한다는 것을 알았다. 밸브조정할 때 흡기밸브는 0.5mm, evb밸브는 0.7mm, 배기밸브는 0.9mm라는 것을 알았다. 미션오일 교환하는 것을 보았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만(MAN)트럭버스 센터 용인’에서 실습훈련을 받고 있는 장정문(서울공고 3)군의 지난 9월 14일자 ‘레코드북’에 기재된 내용이다. 레코드북은 장군이 이날 그를 지도하는 안치순 트레이너로부터 배운 것을 요약한 일지다. 안 트레이너는 ‘evb밸브’에 밑줄과 화살표를 달아 ‘exhaust valve’라고 수정했다. 안 트레이너는 “트레이니와 함께 배운다는 자세로 가르친다”고 말했다.
 
이곳 트레이니 박형수(부산자동차고 3)군은 “바로 회사에 취업하는 친구들에 비해 처음엔 손기술이 떨어질 수도 있다”며 “그러나 아우스빌둥에선 이론적인 토대가 훨씬 강해져 장기적으로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체계적으로 양성되는 트레이너와 마스터 트레이너는 아우스빌둥 경쟁력의 핵심이다. 한독상공회의소 바바라 촐만 대표는 “기업의 트레이너들이 체계적인 교육전달 방식을 배우는 트레이너 양성 과정인 ‘트레인 더 트레이너(Train-the-trainer)’ 교육은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말했다.
 
주관기관인 한독상공회의소는 독일에서와 같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트레이너와 마스터 트레이너를 선발하고 관리한다. 일정한 자격요건을 갖추어야 지원할 수 있으며 트레이너의 경우 독일 현지에서 파견된 아우스빌둥 전문가들이 직접 교육하는 총 100시간의 트레이닝 양성과정을 이수한 후 필기와 실기 시험을 거쳐야 한다.
 
마스터 트레이너는 트레이너들을 교육하며 트레이니들을 상대로 직접 강연하기도 한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본사 트레이닝 아카데미 매니저인 이재진 마스터 트레이너는 “아우스빌둥 프로그램의 한국 정착 과정에서 트레이너와 마스터 트레이너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컬처 스트럭처(문화구조·culture structure)라는 말이 있는데 아우스빌둥의 경우 독일식 스트럭처가 먼저 들어오고 컬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도입한다고 하더라도 그 나라 문화와 잘 융합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BMW 송도 바바리안 모터스의 이현수 아우스빌둥 마스터 트레이너는 “트레이니들은 남들이 커리어를 시작하는 30대 초반에 벌써 기술적 정점에 달해 개인뿐 아니라 기업 입장에서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지난해 1기 트레이너 44명이 배출된 데 이어 올해에는 2기 트레이너 71명과 마스터 트레이너 5명이 선발됐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 이상국 네트워크 개발 & 트레이닝 부문 부사장은 “트레이너들은 진정한 멘토의 자세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교육생들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아우스빌둥이 특히 주목받는 것은 날로 어려워지는 청년들의 취업 문제 때문이다. 박성천 여주대학 자동차학과 교수는 “청년들에게 실질적으로 지속가능하고 의미 있는 일자리를 제공해 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를 위해선 기업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정부의 정책적 뒷받침, 교육 당국의 전폭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용주 두원공대 자동차학과 교수도 “대학 진학과 이를 위한 사교육에 올인하는 한국의 풍토는 사회적·경제적 낭비 요소가 너무 크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아우스빌둥 프로그램이 독일처럼 확산돼 연간 수십만 개의 안정적인 청년 일자리가 공급된다면 너나없이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시간적·금전적 자원을 무차별적으로 투하하는 문화가 시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진로 선택지가 그만큼 넓어지기 때문에 굳이 진학을 위한 공부에만 힘을 쏟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부모의 과중한 교육비 부담이 줄어든다면 교육문화는 물론 저출산 풍토에도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우스빌둥 프로그램을 확산하려는 노력도 진행 중이다. 한독상공회의소는 지난 7월 4일 기획재정부·교육부·고용노동부·중소벤처기업부·병무청 등 5개 정부 부처, 그리고 대한상공회의소와 ‘아우스빌둥 모델 확산을 위한 민관협약식’을 맺었다. 이용주 교수는 “대학 등 교육 기관과 아우스빌둥 프로그램을 연계하고, 적용 업종과 직종을 확대하는 정책도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경환 기자 han.kyungh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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