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언에 혼쭐난 日자민당, 우스꽝스러운 ‘실언 방지 매뉴얼’배포

자민당이 내부자료로 만든 '실언 방지' 매뉴얼.

자민당이 내부자료로 만든 '실언 방지' 매뉴얼.

소속 의원들과 각료들의 실언과 망언에 휘청대는 일본 자민당이 급기야 ‘실언 방지 매뉴얼’을 만들어 배포했다고 마이니치 신문이 15일 보도했다.
 
마이니치 보도와 중앙일보가 확인한 내용에 따르면 이 매뉴얼은 ‘참의원 유세활동 핸드북’의 호외 형태로 만들어졌고, '실언과 오해를 방지하려면'이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참의원 선거 출마 예정자들에게 이메일 등으로 배포됐다고 마이니치는 전했다.
지난 2월 자민당 전당대회서 연설하는 일본 아베 총리 [연합뉴스]

지난 2월 자민당 전당대회서 연설하는 일본 아베 총리 [연합뉴스]

 
매뉴얼 작성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건 지난 4월 동료의원의 후원행사에서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역인 이와테의) 부흥 이상으로 중요한 건 다카하시 의원”이라며 지진 피해 지역을 폄훼했다가 사임한 사쿠라다 요시타카(櫻田義孝)전 올림픽 담당상 케이스라고 한다.  이외에 국토교통성의 부대신도 “아베 총리와 아소 부총리의 지역구 사업을 내가 알아서 해결해줬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결국 물러났다. 
 
정권의 명운이 걸려있다는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당내에 주의를 환기시키겠다는 게 매뉴얼의 목적이라고 한다.  
 
중앙일보가 확인한 A4용지 1장 분량의 매뉴얼 모두엔 “발언내용 전체가 보도되는 일은 없다. 자신이 발언이 언제든 (특정부분만)편집ㆍ발췌될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라. 보도 내용을 결정하는건 눈앞의 기자가 아니다”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러면서 “쉼표를 계속 찍으며 늘어지듯 발언하면 편집될 위험이 커진다. 짧은 문장으로 잘게 나눠 표현하고, 불필요한 표현을 줄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타이틀(제목)로 뽑히기 쉬운 강한 표현을 주의해야 한다”는 대목도 있다. 
 
구체적으로는 ^역사인식과 정치신조에 관한 개인적 의견^성별,또는 성소수자에 대한 견해^사고 또는 재해에 관해 배려가 결여된 발언^병이나 노인에 대한 발언^친한 사람끼리 이야기하는 것 같은 잡담조의 표현 등 5개 패턴을 열거하며 특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이중 역사인식과 관련해선 “나중에 사죄하기도 어렵고, (논란이)장기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밖에 “사적인 대화라 하더라도 언제 누가 스마트폰으로 사진이나 영상을 전송할지 모른다고 생각하라",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들을 언급할 때는 더 한층 배려하라","주변의 갈채에 흥분하면 해선 안되는 말까지 해버릴 가능성이 있다. 항상 자신의 표현에 브레이크를 걸 준비를 하라"는 내용도 담겼다.
 
'망언제조기'로 불렸던 사쿠라다 요시타카(櫻田義孝) 일본 올림픽 담당상이 지난 4월 10일 총리공관에서 사표를 제출한 뒤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다.[도쿄 교도=연합뉴스]

'망언제조기'로 불렸던 사쿠라다 요시타카(櫻田義孝) 일본 올림픽 담당상이 지난 4월 10일 총리공관에서 사표를 제출한 뒤 기자들에 둘러싸여 있다.[도쿄 교도=연합뉴스]

마이니치에 따르면 당 차원의 '실언 매뉴얼'까지 만들어야 하는 상황이 닥친 걸 두고 자민당내에선 “참 딱하다”는 냉소적인 반응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한편 각종 실언으로 매뉴얼 제작의 빌미를 제공한 사쿠라다 전 올림픽 담당상은 14일 한 모임에서 “나를 반면교사로 삼아 달라”,“나처럼 되지 않도록 정치인을 제대로 교육해야 한다”는 자조섞인 발언을 했다.  
 
그는 재임시절 인터넷상에 ‘사쿠라다 실언집’이 나돌 정도로 말실수가 잦았다.    
 
2020년 올림픽을 위해 정부가 직접 지출할 비용 ‘1500억엔(약 1조5000억원)’을 국회 답변에서 ‘1500엔(약 1만5000원)’으로 잘못 말했다. 역시 국회 답변에서 대지진 피해지역인 이시노마키(石卷)시를 ‘이시마키시’로 3번이나 잘못 불렀다. 
 
수영 스타 이케에 리카코(池江璃花子)의 백혈병 투병 소식에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 기대했는데) 정말 실망하고 있다”고 말해 물의를 일으켰다. 사이버 안전 담당 대신을 겸하고 있는 그가 국회에서 “직접 컴퓨터를 사용한 적은 없다”고 말한 것도 논란이 됐다.  
 
도쿄=서승욱 특파원 sswoo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