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총학 대신 카톡·페북발 촛불집회

김태호 사회2팀 기자

김태호 사회2팀 기자

‘화호류구(畵虎類狗)’

 
‘호랑이를 그리려다 개를 그렸다’는 뜻이 담긴 제목의 대자보가 18일 고려대 정경대 후문 게시판에 붙었다. 일부 학생들은 세 차례 조국 법무부 장관 규탄 촛불 집회에서 고려대 총학생회가 보여준 무능과 소통 부재 등을 비판하며 총학 탄핵을 요구했다. 온라인에 먼저 올린 대자보 내용을 줄여 135명의 고대생 서명을 받아 게시판에 붙였다. 이런 움직임은 3차 집회부터 이어졌고 4차 집회도 총학이 빠진 채 학생들이 추진했다. 19일 함께 집회를 연 서울대·연세대도 총학이 안 나섰다.

 
수차례 열린 대학 촛불 집회에서 총학이 중간에 나선 적은 있어도 집회를 계속 이끌지는 못했다. 주로 학내 온라인 커뮤니티·카카오톡 오픈 채팅방·페이스북 등에서 논의가 이뤄졌다. 서울대는 총학이 일정 역할을 했지만, 논의를 시작한 건 커뮤니티 등에서 모인 학생 개인들이었다. 고려대도 커뮤니티 중심으로 집회가 추진됐다. 부산대는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열고 연서명을 받았고 연세대도 재학·졸업생이 모인 커뮤니티에서 집회 논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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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학 대신 커뮤니티·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더 효율적이라는 의견이 있다. 서울대 1차 집회에 참여했던 이경민(25)씨는 “총학생회가 집회를 추진하면 거쳐야 할 절차가 많고 오래 걸려 총학 대신 개별 학생들이 커뮤니티·SNS 등에서 모여 자발적으로 집회를 추진하고 논의했다”고 말했다. 또 “목소리를 낼 방법이 마땅히 없는 게 요즘 대학의 현실이라 접근성이 좋은 SNS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공유하고 바로 행동에 나선다”고 덧붙였다.

 
총학의 역할이 과거와 달라져서라고도 말한다. 서울대 집회 경험이 있는 한 학생은 “과거 총학은 투쟁이 목표인 학내 기구였지만 이제는 학생복지·문화를 위한 지원단체 성격이 강하다”며 “학생들의 요구에 맞게 총학의 성격도 변했다”고 말한다.

 
서울대 집회를 이끈 또 다른 학생은 “총학이 학생들의 집회요구를 모두 수용하기엔 부담스러워 출구전략 차원에서 4차 집회부터 빠진 게 아닐까 생각한다”며 총학이 겪었을 부담을 언급했다. 교수들도 최근 온라인을 통해 연서명을 받아 시국선언을 준비하기도 했다.

 
한편에선 커뮤니티·SNS를 통한 논의가 학생사회 전체를 대변하지 않는다고도 한다. 고려대에 재학 중인 윤덕기(24)씨는 “커뮤니티 등이 만능은 아니며, 그 의견만 따르는 건 문제”라면서도 “무용론이라기엔 적지 않은 재학·졸업생이 커뮤니티를 사용하기 때문에 총학 등이 커뮤니티의 중론을 결코 무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총학의 빈자리를 커뮤니티·SNS로 채운 학생들의  집회를 두고 ‘정치적인 선동과 개입이 있을 거다’라고 지레짐작하기도 한다. 총학과 같은 대표성을 띈 단체가 안 나서니 특정 정치성향을 가진 학생들이 주도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물론 총학이 나서도 이런 의심은 계속됐다. 그러면서 정치권은 ‘마스크 쓴 학생들이 의심스럽다’라고도 했다. 결국 각 정치 진영에선 대학가 집회를 끌어다 입맛대로 해석했다.

 
그러나 수 차례 집회를 자발적으로 열고, 정치색을 빼겠다며 학생증과 졸업증명서를 확인하는 학생들을 두고 그저 색안경만 끼고 평가할 일은 아니다. 어른들은 집회를 바라보며 앞다투어 정치적 해석을 하기에 앞서 달라진 대학가 문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먼저 해야하지 않을까.
 
김태호 사회2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