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차별 70년, 눈물 어린 ‘4·24’

20일 경기도가 개최하는 DMZ국제다큐영화제와 북한의 평양국제영화축전에 나란히 초청된 다큐 '사이사-무지개의 기적'. 재일동포 3세 박영이 감독이 일본정부의 조선학교 탄압 뿌리를 짚었다. [사진 박영이 감독]

20일 경기도가 개최하는 DMZ국제다큐영화제와 북한의 평양국제영화축전에 나란히 초청된 다큐 '사이사-무지개의 기적'. 재일동포 3세 박영이 감독이 일본정부의 조선학교 탄압 뿌리를 짚었다. [사진 박영이 감독]

1945년 해방 직후 일본에 남은 조선 사람들이 우리말‧글을 잊지 않으려고 세운 조선학교를 일본 정부는 모질게 탄압했다. 수십 년 세월도 그 아픔을 바꾸지 못했다. 지난 2010년에도 일본 정부는 고교 무상화 제도에서 자국 내 외국인 학교 중 유일하게 전국 10곳의 조선학교만 배제했다. 지난해 일본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에 해당)는 이런 조처가 ‘합법’이라 쐐기를 박았다. 아베 정권은 다음 달 실시되는 유치원 무상 정책에서도 조선유치원을 배제하는 방침을 밝혔다.
 
“우리말을 가르친다는 것만 빼면 일본학교와 (학습 내용이) 다를 것이 없는데…. 교육권은 평등한 것 아닙니까.” 지난해 어느 재일동포 어머니의 눈물 어린 호소다.  
 

1954년에도 "세금 똑같이 내는데 교육은..." 

재일 조선학교 다큐 '사이사-무지개의 기적'을 남북한에 동시에 선보이게 된 재일동포 3세 박영이 감독. [사진 박영이]

재일 조선학교 다큐 '사이사-무지개의 기적'을 남북한에 동시에 선보이게 된 재일동포 3세 박영이 감독. [사진 박영이]

“일부 일본인들도 오해하고 있는데, 도쿄의 조선인만 해도 해마다 10억엔 이상의 세금을 납부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조선인학교가 1년간의 경비 7000만엔의 교육비를 받는 것은 응당한 권리가 아니겠습니까.” 
이는 무려 1954년, 해방 직후 조선학교 모습을 기록한 흑백영화 ‘조선의 아이’에 담겼던 목소리다. 수십 년이 지났지만 바뀐 게 없었다.  
이런 뼈아픈 역사를 재일동포 3세 박영이(43) 감독은 다큐 ‘사이사-무지개의 기적(이하 사이사)’에 오롯이 담았다. 조선학교 교사였던 김공철 감독이 공동 연출로 이름을 올렸다. 20일 경기도 고양‧파주에서 개막한 제1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돼 내한을 앞둔 박 감독을 e메일로 먼저 만났다.  
한국 국적으로, 자신도 조선학교 출신인 그는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차별은 민족차별이고 정치탄압”이라면서 “재일조선인의 근본 문제인 식민지배 역사의 청산 없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사이사', 재일동포 누구나 아는 말 

이번 영화는 지난해, 4‧24 한신교육투쟁 70주년을 맞아 제작을 시작했다. 1948년 일본 문부과학성의 ‘조선학교 폐쇄명령’에 재일동포들이 뭉쳐 일본 경찰‧헌병대에 피 흘리며 맞섰던 사건이다. 제목의 ‘사이사’는 이 날짜를 우리말로 읽은 것. 그는 “재일동포라면 누구나 아는 말”이라며 “지금 조선학교를 둘러싼 일본 정부의 차별과 탄압은 제2의 4‧24라 불리고 있다”고 했다.  
다큐 '사이사-무지개의 기적'에서 조선학교 교사(가운데)와 학생들의 모습. [사진 박영이 감독]

다큐 '사이사-무지개의 기적'에서 조선학교 교사(가운데)와 학생들의 모습. [사진 박영이 감독]

재일동포 아이들의 우리말 수업풍경도 정겹지만 그간 조선학교를 다룬 다큐에서 보지 못한 내용도 많이 담겼다. 특히 1948년 4‧24 사건의 역사적 맥락을 자세히 짚었다. 박 감독은 “냉전구조 속에서의 4‧24 교육투쟁은 이번 다큐를 제작하며 저도 새로이 인식한 부분”이라면서 “제주 4‧3사건, 남한 5‧10 단독선거와의 연관성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고 했다.  
 

조선학교 박해 배후엔 미국 연합군 

영화에서 그는 조선학교 폐쇄령 배후에 연합군 총사령부(GHQ)의 압박이 있었음을 강조한다. 재일조선인사를 전공한 메이지가쿠인대학 정영환 교수는 제작진과 인터뷰에서 해방 당시 제8군 사령관 로버트 아이첼버거 중장의 일기를 증거로 제시했다. 정 교수는 “일기를 보면 1948년 4월 시점에 ‘조선에서 일어난 폭동’이란 표현이 있다. 이는 제주 4‧3사건을 말하는데 그는 일본의 조선인들이 ‘빨갱이’와 연대해 재일점령군(미국 극동군)을 곤란에 빠트릴 데모를 일으킬지 모른다는 위험성을 생각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다큐 '사이사-무지개의 기적'에 등장한 미국 연합군 아이첼 버거 중장. 광복 직후 일본에 주둔하던 그의 일기장엔 연합군이 일본 정부에 조선학교를 폐쇄하도록 압박을 가한 정황이 드러나있다고 영화는 주장한다. [사진 DMZ국제다큐영화제]

다큐 '사이사-무지개의 기적'에 등장한 미국 연합군 아이첼 버거 중장. 광복 직후 일본에 주둔하던 그의 일기장엔 연합군이 일본 정부에 조선학교를 폐쇄하도록 압박을 가한 정황이 드러나있다고 영화는 주장한다. [사진 DMZ국제다큐영화제]

또 “그해 5월 10일 실시되는 (북을 제외한) ‘한국’의 단독선거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일본 문부성에) 그전에 문제를 처리하기 바란다는 요구를 했던 것 같다”면서 “어디까지나 교육문제였던 조선학교 운동을 반미투쟁이라 생각하기 시작했다. 군국주의 지배하에 빼앗긴 것들을 되찾으려는 요구를 냉전이란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며 60만에 지나지 않는 (재일동포)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억압이 닥쳐온 것”이라 설명했다. 
효고조선학교 김석효 이사장에 따르면 일본 문부성은 이미 그에 2년 앞서 “소수민족을 사회적 분쟁의 요인으로 찍고 그런 집단을 육성하는 학교설립을 기본적으로 반대한다”는 각서를 낸 바다. 결국 1948년 4월 24일, 전쟁 후 일본에서 유일한 비상사태선언이 발령됐다. 무수한 희생 속엔 일본의 총에 맞아 사망한 열여섯 살 김태일 군도 있었다.  
 

교복 저고리 칼에 찢겨도 지켜낸다 

박 감독은 “지금도 우리 동포들과 양심적인 일본인들이 조선학교 차별에 맞선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면서 “함께해줄 분이 한 사람이라도 불어나길 소망하며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1949년 모두 폐쇄됐던 조선학교는 50년대 이후 조총련과 북한에 지원금을 받아 하나둘씩 다시 일어났지만 일본 우익과의 갈등을 깊어져갔다. 교복인 치마저고리가 칼에 찢기곤 하는 위협도 잇따랐다.  
여전히 북한에 수학여행을 가기도 하지만 이제 조선학교엔 북한뿐 아니라 한국‧일본 등 다국적 학생들이 다닌다. 국적은 달라도 뿌리는 같다. 박 감독은 “이번 영화로 일본에서 나고 자랐지만 같은 동포임을 전하고 싶다”고도 했다. 
조선학교의 과거와 오늘을 담은 다큐 '사이사-무지개의 기적'는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24일과 27일 상영된다.[사진 DMZ국제다큐영화제]

조선학교의 과거와 오늘을 담은 다큐 '사이사-무지개의 기적'는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24일과 27일 상영된다.[사진 DMZ국제다큐영화제]

 

북한 평양국제영화축전에도 초청받아 

이번 영화는 20일 북한에서 나란히 개막한 북한 유일 국제영화제인 제17차 평양국제영화축전에도 초청됐다. 한국을 찾는 박 감독 외에 다른 제작진이 북한을 방문할 예정이다. DMZ국제다큐영화제 이승민 프로그래머는 “한국 국적 감독의 작품이 남북한 영화제에 동시기 상영되는 건 거의 최초”라고 귀띔했다. 
“해외 동포는 북에서 비자를 발급해주기에 이미 2010‧2014년 영화제를 비롯해 여러 차례 북한에 다녀왔다”는 박 감독은 “이번 영화를 남북의 모든 겨레가 함께 봐주기를 소망했는데 이번 초청에 많은 동포가 기뻐해 줬다”면서 “남과 북의 관객 반응이 궁금하다”고 했다.
 
조선학교 학생들의 북한 방문기를 담은 ‘하늘색 심포니’로 3년 전 미국 달라스아시안영화제 다큐상을 받는 등 20대 때 처음 카메라를 들고부터 재일동포 문제를 꾸준히 다뤄온 그다. 영화의 부제 ‘무지개의 기적’에 새긴 바람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말로 ‘키세키(きせき)’엔 기적‧휘석(광물의 종류)‧궤적 3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무지개는 과거와 현재‧미래를 이어줄 다리이며, 우리 학교를 지켜낸 기적, 휘석과도 같은 아이의 밝은 웃음, 동포들이 걸어온 발자취로서 궤적의 모든 의미를 담았습니다. 이 영화로 더 많은 분과 이야기 나누고 싶습니다.”  

관련기사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