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데스리가 최대 돌풍 뒤엔 호랑이+괴짜 감독 있다

슈트라이히 감독이 지휘하는 프라이부르크는 올 시즌 분데스리가 최대 돌풍을 이끌고 있다. [사진 프라이부르크 인스타그램]

슈트라이히 감독이 지휘하는 프라이부르크는 올 시즌 분데스리가 최대 돌풍을 이끌고 있다. [사진 프라이부르크 인스타그램]

독일 남서부의 작은 도시 프라이부르크는 요즘 시끌벅쩍하다. 세계적인 친환경 도시로 유명한 이곳에 오랜만에 역동적인 볼거리가 생긴 덕분이다. 바로 프로축구 SC 프라이부르크다.  
 
'만년 중하위권' 프라이부르크는 2019~20시즌 분데스리가(1부 리그)에서 역대급 시즌 초반 성적을 기록 중이다. 지난달 29일(한국시각) 열린 뒤셀도르프와의 분데스리가 원정 경기에서 2-1로 이긴 프라이부르크는 강호 샬케를 제치고 3위로 올라섰다. 예년 같았으면 이미 중하위권으로 밀려났을 시점인데, 올 시즌은 6경기에서 단 1패(4승1무)만 허용했다. 지난 시즌 성적은 13위. 2만4000석 규모의 홈구장 슈바르츠발트 슈타디온은 경기마다 매진이다. 독일 키커는 "프라이부르크가 역사를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프라이부르크의 돌풍 뒤엔 이곳에서만 8번째 시즌을 맞는 크리스티안 슈트라이히(54) 감독이 있다. 슈트라이히는 프라이부르크의 아이콘이다. 그는 부임 첫 해인 2012~13시즌 프라이부르크를 분데스리가 5위에 올리는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 프라이부르크가 1부 리그 5위 내에 든 건 1994~95시즌 이후 약 20년 만이었다. 이 기간 프라이부르크는 1부 하위권과 2부 리그를 오르내렸다. 독일 언론에 따르면 슈트라이히는 독일 최강 바이에른 뮌헨 감독 후보로 꼽힐 만큼 능력을 인정받은 지도자다. 2013년 독일 축구 '올해의 지도자상'도 받았다.
프라이부르크는 뒤셀도르프를 꺾고 6경기 만에 리그 3위로 올라섰다. [사진 프라이부르크 인스타그램]

프라이부르크는 뒤셀도르프를 꺾고 6경기 만에 리그 3위로 올라섰다. [사진 프라이부르크 인스타그램]

 
슈트라이히가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주어진 환경에서 성과를 끌어내기 때문이다. 슈포르트 빌트는 "슈트라이히는 리그 최고의 사령탑인가"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슈트라이히의 이력에도 주목했다. 지도자로서 그의 경력은 초라하다. 2부 리그에서 정상을 차지한 것이 유일한 우승 기록이다. 슈포르트 빌트는 "매년 한정된 자원으로 많은 것을 끌어내는 슈트라이히에 독일 축구가 감탄한다"며 "프라이부르크는 예산이 3000만 유로(약 390억원)로 리그에서 가장 적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슈트라이히는 매번 사람을 놀라게 한다. 지난 7년간 팀을 지휘할 수 있었던 비결"이라고 덧붙였다.  
 
뮌헨 사령탑으로 두 차례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험한 오트마르 히츠펠트는 슈트라이히의 인품과 열정을 높게 평가했다. 히츠펠트는 "프라이부르크 같은 팀은 매년 좋은 선수를 상위 팀에 뺏기지만, 슈트라이히는 한 번도 불평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분데스리가 관계자는 "한 팀에 몸담은 시간을 선수는 10년, 지도자는 5년이면 레전드급으로 쳐주는데, 슈트라이히 감독은 벌써 8년째에 접어들었다. 이건 구단은 물론 팬과 선수들까지 그를 인정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슈트라이히 감독은 한정된 자원으로 최고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지도자다. [사진 프라이부르크 인스타그램]

슈트라이히 감독은 한정된 자원으로 최고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지도자다. [사진 프라이부르크 인스타그램]

 
슈트라이히는 '호랑이 감독'으로 유명하다. 강한 카리스마를 앞세워 선수단을 완벽히 장악한다. 프라이부르크 소식통은 "튀는 선수는 슈트라이히 감독 밑에서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슈트라이히는 준비가 덜 된 선수는 과감히 주전에서 제외하기도 한다. 선수를 벤치에 앉혀 자극하는 그만의 지도 방식이다. 선수들도 감독의 의중을 잘 알고 따른다. 이들은 벤치로 밀렸다고 부끄러워 하기보다는 좋은 경기력을 되찾는 걸 우선 순위에 둔다. 훈련량도 강도도 강한 편이다. 
경기 장면을 파고들어 보완점을 찾아내는 집요함은 슈트라이히만의 강점이다. 슈트라이히는 코칭스태프를 시켜 상대 팀의 전력과 전술을 완벽히 해부해야 직성이 풀린다. 주장 마이크 프란츠는 "프라이부르크에서 축구에 눈을 떴다. 이렇게 많은 영상 미팅은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할 정도다.  
 
프라이부르크 선수 중엔 '등번호 10'을 단 선수가 없다. 10번은 일반적으로 팀의 에이스가 다는 등번호이다.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 네이마르(파리 생제르망)가 대표적이다. 이유는 슈트라이히가 '원팀'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프라이부르크 소식통은 "프라이부르크엔 슈트라이히 감독 부임 때부터 10번을 단 선수가 없었다. 에이스를 두고 경기를 한 것보다 팀 전체가 하나로 움직이는 축구를 선호하는 감독의 괴짜같은 성향이 배번까지 영향을 미친 것"이라고 말했다. 슈트라이히 감독은 빌트와 인터뷰에서 "나의 축구엔 전형적인 '10번(공격형 미드필더)'로 불리는 플레이메이커가 없다"면서 "우리 팀엔 9.5번은 있어도 10번은 없다. 한 선수에게 의존하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권창훈은 프라이부르크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사진 프라이부르크 인스타그램]

권창훈은 프라이부르크 데뷔전에서 데뷔골을 넣었다. [사진 프라이부르크 인스타그램]

 
물론 팀이 너무 잘 나가는 건 권창훈에겐 기쁘면서도 아쉬운 일이다. 보통 팀이 좋은 경기를 이기고 좋은 흐름을 타고 있는 상황에서 감독은 전술과 선수 구성에 변화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권창훈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디종(프랑스)에서 프라이부르크로 이적했다. 권창훈은 8월 24일 리그 2라운드 파더보른과의 데뷔전에서 후반 쐐기골로 3-1 승리를 도왔지만, 이후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 프라이부르크 소식통은 "슈트라이히 감독이 군면제를 받지 않은 권창훈을 영입한 건 분명 기용 의사가 있다. 축구라는 게 흐름 싸움이므로 어느 시점에선 중용될 것으로 내다본다"고 말했다.
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