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트맨보다 묵직하고 강렬하다, 호아킨 피닉스의 ‘조커’

조커로 거듭나는 광대 아서. 주연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이 돋보인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조커로 거듭나는 광대 아서. 주연 호아킨 피닉스의 열연이 돋보인다.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왜 그리 심각해(Why so serious)?” 이런 대사로 영웅 배트맨을 약 올리던 간사한 조커는 없었다. 지난달 코믹스 기반 히어로 영화론 사상 처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대상)을 차지한 ‘조커’(감독 토드 필립스)가 2일 개봉한다.
 
영화는 DC코믹스에서 80년간 군림해온 미치광이 악당이자, 배트맨의 숙적 조커의 탄생기를 그렸다. 주인공은 빈부격차가 극에 달한 도시 고담의 가난하고 고독한 광대 아서 플렉(호아킨 피닉스). 병든 홀어머니는 그를 ‘해피’라 부르며 세상에 기쁨과 웃음을 주라 하지만, 코미디언을 꿈꾸는 그에게 돌아오는 건 사람들의 비웃음과 발길질뿐이다. 어릴 적 뇌손상을 입은 그는 울고 싶은 순간마다 오히려 발작적인 웃음을 터뜨린다. 비정한 세상은 그를 낭떠러지로 내몰고, 총을 쥐어주고, ‘조커’란 존재가 발사될 뇌관을 건드린다.
 
영화는 히어로물보단 찰리 채플린의 서글픈 코미디와 더 닮았다. 1980년대 초로 설정된 희망 없는 도시의 풍광은 마틴 스코시즈 감독의 ‘택시 드라이버’나 시드니 루멧 감독의 ‘네트워크’ ‘형사 서피코’ 등 1970년대 영화 속의 베트남 전쟁 이후 음울했던 뉴욕을 연상시킨다.
 
조커에게 이런 이름과 사연을 부여한 건 코믹스 영화를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조커가 주인공인 단독 영화가 개봉한 것도 최초다. ‘행오버’ ‘듀 데이트’ 등 B급 코미디 영화를 주로 해온 토드 필립스 감독이 각본을 직접 쓰고 어디에도 없던 조커 이야기에 광대의 비애까지 실어냈다. 지난달 26일 한국 취재진과 화상 기자회견에서 그는 “희극과 비극간의 경계를 탐험한 영화다. 한 번도 다뤄진 적 없는 이 다층적인 악당의 기원을 통해 히어로물 장르를 완전히 전복시켜보려 했다”고 말했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는 절박한 심장박동까지 전해올 만큼 사실적이다. 역대 어떤 조커와도 다르다. 코믹스 캐릭터 최초 아카데미상(남우조연상)을 거머쥔 히스 레저의 조커(영화 ‘다크 나이트’)와도 결이 다르다.
 
잔혹한 로마 황제를 연기한 ‘글래디에이터’ 등으로 세 차례나 아카데미 연기상 후보에 올랐던 호아킨 피닉스다. 2년 전 ‘너는 여기에 없었다’에선 늘 자살을 꿈꾸는 청부업자 역을 맡아 칸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차지했다.
 
마블 히어로 ‘닥터 스트레인지’ 역을 포기하고 택한 이번 영화에서도 작정하고 캐릭터에 덤벼들었다. “영양실조 상태의 늑대처럼 보이길” 바랬던 아서 역을 연기하기 위해 하루 사과 한 알만 먹으며 23㎏이나 감량했다. 아서가 냉장고로 들어가는 강렬한 장면도 사전 계획 없는 즉흥 연기였다. 토드 필립스 감독은 “다른 사람들이 머리로 계산할 동안 호아킨은 재즈 연주하듯 연기한다”고 했다.
 
미국 현지에선 벌써부터 내년 초 피닉스의 생애 첫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점치는 분위기다. 반면 또 다른 우려도 나온다.
 
아서의 총기 사고가 촉발하는 폭동이 영화 속에 마치 불의에 저항하는 혁명처럼 그려진다는 이유다. 극 중 아서가 이웃 여성 소피(재지 비츠)에게 품는 감정에 대해서도 불편하다는 지적이 많다. 미국 시사지 ‘타임’은 이 영화에 100점 만점에 20점을 주며 “데이트하지 못한 슬픈 남자가 킬러 히어로가 된다. 그건 정말 역겨운 조크”라고 혹평했다. 현지 경찰은 총기 사고에 대한 위험성에 긴장하는 태세다. 히스 레저의 조커 역에 과몰입한 20대가 2012년 속편 ‘다크 나이트 라이즈’ 를 상영하던 미국 콜로라도주 도시 오로라의 한 극장에서 총기를 난사해 12명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미국에선 청소년관람불가에 해당하는 R등급을 받았다. 한국에선 15세 관람가다. 일본·영국·스웨덴 등과 함께다.
 
나원정 기자 na.won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