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4번째 과학 노벨상 받은 일본을 바라보는 씁쓸함

일본이 과학 분야 24번째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리튬이온 배터리 발전 공로로 화학자인 요시노 아키라가 9일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요시노는 공동 수상자인 존 구디너프(미국)와 스탠리 휘팅엄(영국)이 만든 리튬이온 배터리의 원형을 상용화해 요즘처럼 휴대전화 등 온갖 전자기기를 돌리는 전지로 발전시켰다. 일본은 지난해에도 혼조 다스쿠 교토대 특별교수가 생리의학상을 받는 등 2년 연속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며 과학기술 강국임을 입증했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 비중이 세계에서 다섯번째에 이른다. 그동안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노벨 평화상 1건밖에 수상하지 못한 한국의 현실이 새삼 대비된다.
 
과학기술 분야 노벨상은 인류의 시야를 넓힌 새로운 발견이나 기술에 주어진다. 그 발견과 기술이 사실로 입증되고 인간 생활에 실제 영향을 주기까지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한국연구재단이 최근 10년간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에 기여한 핵심 논문을 조사한 결과 수상자 평균 연령은 57세였다. 핵심 논문 생산에는 평균 17.1년이 걸리고 생산 후 수상까지 평균 14.1년이 소요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노벨상 수상까지 총 31.2년의 세월이 필요한 셈이다.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러려면 한 분야에 천착한 과학자는 물론 연구를 지원할 사회적 시스템이 반드시 정착돼 있어야 한다.
 
우리의 현실은 거리가 멀다. 교육과 문화, 정책이 모두 실용 일변도다. 교육은 당장 대입에 도움이 될 국·영·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어린 학생이 창의적 생각을 하고, 그것을 발전시킬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꾸준한 연구보다는 당장 쓸 수 있는 기술을 연구하는 데 매달리고 있다. 미국과 일본 같은 선진국을 따라 배우며 생산기술 발전에만 매달려 온 한국식 발전 모델의 한계다.
 
정책도 기초기술보다는 당장 물건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실용기술을 개발하는 데 맞춰져 있다. 기업은 물론 정부의 연구 정책이 순수과학으로 눈 돌리기 시작한 시간도 너무 짧다. 기초과학 연구자금을 지원하는 한국과학재단이 설립된 게 1977년이다. 실질적인 연구기반을 조성하기 위한 ‘창의적 연구진흥사업’은 1996년에야 시작했다. 기초과학 종합연구기관인 기초과학연구원(IBS)은 2011년에야 만들어졌다. 그나마 정권이 마련한 연구사업을 다음 정권이 들어서면 인력을 줄이고 분야를 바꾸는 식으로 연구자들 의욕을 꺾어 왔다. 메이지유신 뒤 젊은 과학자를 유학 보내고 1917년 아시아 최초의 기초과학 종합연구소인 이화학연구소(RIKEN)를 설립한 일본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이런 환경과 풍토에선 아무리 우수한 연구자라도 살아남기 힘들다. 정부와 기업, 국민의 인식이 확 바뀌어야 하는 이유다. 지금 노벨상을 기다리는 건 나무 밑에서 입 벌리고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격이다. 하지만 감이 떨어질 나무조차 제대로 못 키우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