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대학과 사회의 아름다운 공존을 위해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

가끔씩 느닷없이 이메일을 보내오는 고등학생들이 있다. 어느 고등학교 2학년에 다니는 누구인데, 학교 홈페이지에서 내 주소를 알게 되었고, 바쁘겠지만 잠시 몇 가지 질문에 대답할 시간을 내주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이 친구가 첨부한 질문지에는 예컨대 “한국 정치의 가장 심각한 일곱 가지 문제점은 무엇인가요?” 같은 스케일의 문항이 열 개쯤 적혀 있다.
 
어린 학생들만이 가질 수 있는 패기와 특권일 것이다. 때로는 좀 더 구체적이고 신선한 질문들이 날아올 때도 있다. 청소년 참정권이나 반장 선출제도에 대해 정성스럽게 쓰여진 질문들은 공을 들여 답변하게 된다. 지금도 날씨가 좋은 금요일 캠퍼스는 견학이나 소풍 온 초·중·고등학생들로 넘쳐나고, 주말에는 화려한 색깔로 무장한 등산객들이 캠퍼스를 누빈다. 대학과 지역 사회가 조그마한 공존의 틈을 찾는 것은 그렇게 좋은 날씨와 약간의 넉넉한 마음이면 충분할 것이다.
 
중세 유럽 암흑기를 군데군데 불 밝혔던 대학 도시들, 그곳의 공기를 숨 쉬는 것만으로도 자유가 주어진다고 믿어졌던 것처럼 여전히 사람들은 캠퍼스에 대한 끊임없는 노스탤지어를 간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어떤 이들은 앞으로 실현될 미래의 자유에 대한 갈망으로, 어떤 이들은 지나간 과거에 대한 향수로 대학의 땅을 끊임없이 찾아오고 순례할 것이다. 싫건 좋건 대학은 젊음이 모여들어 지혜로워지고, 질문들이 모여들어 해답이 만들어지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은 사회로부터 사랑받지 못한다. 특히, 최근의 두어 달 만큼 대학이 이토록 집중적인 의심의 대상이 된 적 또한 없었다. 수많은 대학들이 하루아침에 전격적 압수수색의 대상이 되었고, 연구성과들은 국민적 집중 검토의 대상이 되었으며 입시와 장학금과 발행 증명서들 또한 무수한 소문의 대상이 되었다. 사실, 3년 전 최순실 국정농단사건에서 이미 총장과 교수들이 구속되고 징역을 선고받은 것을 생각하면 대학이 사회적 기준에 못 미치는 것을 넘어 특권과 비리의 온상으로 생각된지도 이미 오래되었다.
 
지난 8월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 임명 이후 진행된 수많은 갑론을박에 새로운 노이즈를 보태려는 생각은 전혀 없다. 다만 나는 왜 이제 대학이 검찰 압수수색을 받게 되어도 아무도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그 누구도 대학을 위한 변명도 반성도 하지 않게 되었는지 안타까울 따름이다.
 
대학이 사회가 기대하는 기준의 엄밀한 공정성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그 운용원리가 그야말로 중세적인 ‘가내수공업’ 시대의 뼈대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곳은 천 원짜리 아침식사가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곳이며, 길을 가다 열린 문틈으로 진행되는 강의 소리에 이끌려 슬며시 뒷좌석에 앉아서 청강해도 막는 사람이 없는 곳이다. 당장 오늘 먹을 양식을 생산하지 않아도 내일의 꿈을 담보로 모인 대다수의 구성원들을 묶는 것은 조그만 한 조각의 신뢰와 자율 외에는 없는 곳이다. 신뢰와 자율이 없이는 가르치는 것도 배우는 것도 새로운 지적 여정을 탐사하는 것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은 이제 더이상 조그맣지 않고 가난하지 않으며 무언가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대량생산하기를 사회로부터 종용받는다. 수천억 원의 예산을 쓰고 수천 명을 매년 졸업시키며 서울의 한 구(區)가 쓸 전기를 소비하는 공룡 같은 대학을 신뢰와 자율이라는 가느다란 실로 묶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 곳의 신뢰가 무너지면 모든 곳의 신뢰가 무너지며 자율의 원칙이 알량해 보일 것이라는 점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아마도 그 끝에는 대학이 사회로부터 완전히 외면당하거나 잘해야 산책공원으로 전락하는 세상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사실 대학이 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마무리를 대신하여 이곳에서는 대학과 사회가 아름다운 공존을 유지하기 위해 고려해야 할 몇 가지 원칙을 적어보고자 한다.
 
첫째, 공정성·개방성·검증가능성 등의 측면에서 외부의 사회적 기준이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음을 상기해야 할 것이다. 대학의 기존 제도와 절차들이 전문성을 방패로 한 편의성이 그 특징이었다면, 앞으로의 대학은 좀 더 공개가능하고 검증가능한 모습으로 외부 사회와 소통해야 할 책무가 생기는 셈이다.
 
둘째, 구성원의 신뢰를 깨뜨린 이들에 대한 공정하고도 효율적인 학내 차단 메커니즘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논의해야 할 것이다.
 
셋째, 학생들을 교육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교육의 파트너로 보는 관점의 전환을 어떻게 실천할지 고민해야 할 것이다.
 
넷째, 대학이 이런 변화의 통로를 스스로 뚫고 찾아 나갈 수 있는 자기 발전과 혁신의 기회와 시간을 주었으면 좋겠다. 신뢰와 자율이라는 원칙들은 쉽사리 포기하기에는 너무나 본질적이며 지금 대학이 가야 할 길은 아무도 걸어본 적 없는 길이기 때문이다.
 
박원호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