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꼭대기, 이젠 내려갈 길만…” 안락사 선택한 75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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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기 사진 백만기

[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44)

 
19세기만 해도 30대에 머무르던 인간의 수명이 급격히 늘어 최근엔 거의 80대에 이른다. 불과 한 세기 만에 수명이 배 이상 신장한 것이다. 무엇이 우리의 수명을 이렇게 늘렸을까? 학자들은 그 원인을 세 가지로 꼽는다. 첫째 상하수도의 정비, 둘째 의학의 발전, 셋째 식량 산업 발달로 인한 양질의 영양공급이다.
 

짧은 건강수명 탓에 골골 10년  

65세 이상 노인의 연간 진료비가 증가하면서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는 '건강수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중앙포토]

65세 이상 노인의 연간 진료비가 증가하면서 건강하게 노후를 보내는 '건강수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중앙포토]

 
기대수명이 늘어난 것은 좋지만, 문제는 병치레 없이 혼자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나이, 즉 건강수명이 이를 쫓아가지 못한다. 통계청의 발표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의 건강수명과 기대수명의 차가 10년이 넘는다. 그러니까 10여 년을 골골하면서 남의 도움을 받고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다 보니 장수가 축복이 아니라 오히려 재앙이 되었다는 말도 있다.
 
과거 노인이 아프면 대개 그것이 노환인지, 병환인지 가리지 않고 우선 병원으로 모셨다. 그러다가 임종이 가까워지면 의료진이 환자를 퇴원시켜 집으로 가기를 종용했다. 병원에서 죽는 것도 객사라고 간주해 피했다. 그러나 요즘엔 이런 일이 드물다. 가족이 원하지 않을뿐더러 의료진도 그랬다가는 병원 수익에 지장을 줄 수 있다. 일본의 경우 평생 쓰는 의료비의 20%가 죽기 직전에 쓰인다고 한다. 만약 이런 연명 의료가 사라진다면 병원의 매출이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얼마 전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70대 노부부가 아파트에서 투신해 스스로 생명을 끊었다. 할아버지는 심장질환을 앓았고 할머니는 위암으로 투병 중이었다. 주머니에는 하느님 곁으로 간다는 유서가 들어있었다. 몇 년 전 할머니의 병간호에 지친 할아버지가 자동차를 몰고 청평호수로 뛰어들어 함께 삶을 마감한 경우도 있다. 왜 이들은 극단적 선택을 해야만 했을까.
 
극단적 선택은 어떻게 해서든지 피해야 한다. 당사자도 심한 고통을 느끼지만 남은 가족이 받는 충격도 적지 않다. 자살을 막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뒤따라 죽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극단적 선택은 남은 가족에게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환자가 자신이 원하는 때에 편안히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어떨까.
 
2015년 8월 호스피스 간호사를 지낸 75세의 영국 할머니가 스위스로 건너가 스스로 안락사를 택했다. 왜 그녀는 비교적 건강한데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일까? 그녀는 죽기 전 언론을 통해 죽음을 선택한 이유를 밝혔다.
 
"나는 이제 막 언덕 꼭대기에 올랐다. 앞으로 내려가기만 할 뿐 더는 좋아지지 않는다. 보행기로 앞길을 막는 늙은이가 되고 싶지 않다. 70살까지 난 매우 건강했고, 원하는 어떤 활동에도 참여할 수 있으며, 여전히 바쁘고 쓸모가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게 바뀌었다. 비록 지금 건강해도 내 삶이 다했고 죽을 준비가 돼 있다.”
 
올해 한국인 2명이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감행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 있다. 이미 스위스에서는 연간 1600명이 안락사를 택하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pxhere]

올해 한국인 2명이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감행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 있다. 이미 스위스에서는 연간 1600명이 안락사를 택하고 있다. [사진 중앙포토, pxhere]

 
스위스에서는 연간 1600명이 안락사를 택한다. 의사는 약을 처방하고 환자 스스로 복용하는 의사 조력자살이다. 환자는 가족들에 둘러싸여 편안하게 생을 마감한다. 네덜란드에서는 더 많은 사람이 안락사를 택하고 있다. 네덜란드 안락사 협회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2013년 안락사로 세상을 떠난 사람이 4849명에 이른다. 네덜란드는 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모르핀을 주사해 죽음에 이르는 적극적 안락사까지 허용하고 있다. 주사를 택한 사람이 4501명, 약을 선택한 사람이 286명이었다. 주사를 선택하는 사람이 많은 것은 약보다 효과가 높기 때문이다.
 
스스로 일상생활을 할 수가 없어 남에게 폐를 끼쳐야 한다면 안락사도 괜찮은 선택이다. 중환자실에서 호수를 여러 개 몸에 꽂고 아무도 없는 새벽에 윙윙거리는 기계 소리 들으며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여론조사를 보니 우리나라 사람의 80%가 안락사를 지지하고 있다. 이제 우리도 안락사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때다.
 

안락사 공론화 논의 필요 

사회에서 공론화가 이루어지면 먼저 두 개의 반대세력에 부딪힐 것이다. 하나는 종교계다. 생명은 신이 주신 것이므로 인간이 스스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또 하나는 의료계다. 의사들은 자신의 사명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해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
 
네덜란드처럼 개인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주는 방법은 어떨까. 고통이 있더라도 연명 의료를 원하는 사람은 그에 걸맞은 치료를, 고통 없이 생을 마감하고 싶은 사람은 또 그에 알맞은 처치를 하는 것이다. 우선은 사회 여러 계층의 인사들이 이 문제를 공론화해 서로 의견을 나누었으면 한다. 실행 여부는 그다음에 결정해도 늦지 않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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