잿더미 된 발달장애인 콩나물 공장, 희망의 싹 다시 틀까

화재 전 콩나물을 생산하던 모습. [사진 우리마을]

화재 전 콩나물을 생산하던 모습. [사진 우리마을]

“내 심장도 같이 타는 것 같았어요.”
 
김용식씨(37·가명)는 불이 났을 때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 7일 오전 4시 반쯤 김씨가 일하는 우리마을 콩나물 공장에 불이 났다. 운송 기사가 콩나물을 가지러 왔다가 1층에서 불꽃이 튀는 걸 발견했다. 김씨는 “처음엔 소방훈련을 하는 줄 알았다. 검은 연기를 보고 나서야 불이 난 줄 알았다”고 말했다. 소방차가 출동했지만 불길은 오전 9시가 다 돼서야 잡혔다. 건물이 화재에 취약한 샌드위치 패널 소재로 되어있던 게 문제였다. 결국 330㎡ 크기 2층 건물이 전부 불탔다. 권희성씨(32·가명)는 “장애인 근로자 중엔 가장 먼저 왔는데 이미 건물이 까맣게 타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공장 바깥쪽에 위치한 건조실에서 전선이 합선돼 불이 났다고 보고 있다.
 
김씨는 10년째 이 공장에서 일해왔다. 우리마을은 발달장애인(지적장애, 학습장애, 자폐성 장애 등) 50명이 일하는 장애인 직업 재활 시설이다. 우리마을 발달장애인들은 보통 3~5세 정도의 인지능력을 가졌다. 우리마을은 2000년 김성수 전 대한성공회 대주교가 발달장애인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만들었다.
  
화재 전 콩나물을 생산하던 모습. [사진 우리마을]

화재 전 콩나물을 생산하던 모습. [사진 우리마을]

김씨에겐 콩나물 공장은 특별하다. 1000만원 넘는 빚을 여기서 갚았다. 그는 2010년 우리마을에 오기 전 다른 장애인 직업재활 시설에 있었다. 그곳에서 각종 세금과 보험료를 김씨 혼자 떠안았다. 그가 한글을 모른다는 사실을 악용해 사업장을 김씨 명의로 등록했기 때문이다. 보호자가 없어 도움도 받지 못했다. 우리마을에 오고 나서야 돈을 모아 빚을 갚았다. 그는 “콩나물 공장에서 일할 수 있어서 빚 갚는 일도 힘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화재로 천장과 벽이 다 뜯겨 뼈대만 남았다. 공장을 지탱하던 철골도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다. [사진 우리마을]

화재로 천장과 벽이 다 뜯겨 뼈대만 남았다. 공장을 지탱하던 철골도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다. [사진 우리마을]

현장엔 노란 소방통제선이 한달 동안 그대로 있었다. 건물도 불이 났을 때 모습 그대로였다. 천장과 벽이 다 뜯겨 뼈대만 남았다. 근로자들이 작업하던 기계도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탔다. 대당 값이 1~2억원씩 하는 기계들이다. 한쪽엔 콩나물이 바닥에 눌어붙은 채 허벅지 높이까지 쌓여있었다. 탄내와 콩나물 썩는 냄새가 건물 밖까지 진동할 정도였다. 불에 탄 콩나물은 모두 22t이다. 건물 피해액도 20억원이 넘는다. 이대성 우리마을 원장은 “건물을 아예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한다”고 했다. 인천시에서 7000만원을 받아 지난 7일 겨우 철거를 시작했다. 그러나 나머지 금액은 여전히 우리마을의 몫이다. 더 큰 문제는 공장이 다시 세워지기 전까지 장애인 근로자들이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원장은 “다시 일하려면 1년 이상 걸릴 것”이라고 했다.
 
2001년 처음 콩나물 사업을 시작했을 땐 동네에서 비닐봉지에 콩나물을 담아 팔았다. 지금은 연 18억원 매출을 낼 정도로 사업이 성장했다. 장애인 근로자들은 오전 9시가 되면 위생복을 입고 기계 앞에 선다. 3시까지 작업을 마치고 나면 집과 기숙사, 그룹홈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이들은 매달 약 90~13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는 건물이 복구될 때까지 임시 작업장에서 부품 조립을 해야 한다. 월급도 36만원 정도로 줄어든다. 이 원장은 “더는 콩나물 수익을 낼 수 없어 월급 줄 돈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급여를 안 줄 수는 없기 때문에 반 이상 급여를 낮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화재로 천장과 벽이 다 뜯겨 뼈대만 남았다. 공장을 지탱하던 철골도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다. [사진 우리마을]

화재로 천장과 벽이 다 뜯겨 뼈대만 남았다. 공장을 지탱하던 철골도 종잇장처럼 구겨져 있다. [사진 우리마을]

# 이들 중에는 우리마을에서 받은 월급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많다. 공장에서 받는 돈이 생계급여 같은 복지 급여 지급 기준보다 높아서다. 월급이 줄면 그만큼 생계에 치명적이라는 얘기다. 올해 생계급여 기준 소득은 1인 가구 기준 약 51만원이다. 장애인의 소득은 실제 받는 임금의 반으로 계산된다. 그래도 소득이 51만원 이상 잡혀 정부에서 생계급여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김씨와 권씨도 모두 공장 임금만으로 생활하고 있다.
 
권씨는 공장이 복구될 때까지 우리마을을 나가기로 했다. 퇴사를 하면 8개월 동안 실업급여와 퇴직연금을 같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줄어든 월급으로는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어쩔 수 없이 한 선택이다. 비장애인 직원들은 장애인들 급여 지급이 가장 우선이라고 말한다. 이정은 사무국장은 “장애인들 급여만 해결되면 나머지 운영비는 어떻게든 아껴 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마을에 들어온 모금액은 3억원이다. 인천시에서 재건축 비용까지 지원 받아도 기계 설비 비용 등 10억원 이상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정작 장애인 근로자들은 돈보다도 일을 못 하는 게 더 걱정이다. 기자가 만난 이들은 하나같이 “공장이 복구돼서 다시 일하는 게 가장 큰 소원”이라고 말했다. 2017년부터 콩나물 공장에서 일한 유진태씨(40·가명)는 20만원을 우리마을에 후원했다. 유씨 가족도 50만원을 냈다. 유씨는 “친구들과 함께 다치지 않고 일했으면 하는 마음에 모아둔 돈을 냈다”고 말했다. 이대성 원장은 “콩나물 작업이 수익성은 낮지만 장애인들 스스로 사회 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데 의미가 있었다”며 “자발적으로 1000원, 2000원씩 모아 대안학교에 장학금도 후원해 왔다”며 안타까워했다.
 
※우리마을 후원 신한은행 140-010-327944 대한성공회서울교구사회복지재단
 
김여진 인턴기자 kim.yeojin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