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공천 대학살' 윤여준 "50% 물갈이? 바꿀 사람 있나"

16대 한나라당 ‘물갈이 공천 파동’ 주역 윤여준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21일 황교안 대표의 단식에 대해 ’압박의 수위를 높여가 다 끝내 안될 때 단식을 통해 투쟁의 폭발력을 높이는 건데 너무 별안간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21일 황교안 대표의 단식에 대해 ’압박의 수위를 높여가 다 끝내 안될 때 단식을 통해 투쟁의 폭발력을 높이는 건데 너무 별안간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강정현 기자

보수 통합과 물갈이. 총선에 나설 자유한국당 앞에 놓인 숙제다. 결과에 따라 보수의 존망이 걸렸다. 한국당 총선기획단이 21일 ‘현역의원 50% 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다. 황교안 대표는 단식 중이다. 최근 야당의 쇄신이 관심이라 ‘보수의 전략가’로 불렸던 윤여준(80) 전 환경부 장관을 만났다. 그는 2000년 16대 한나라당(한국당의 전신) 총선기획단장을 맡아 당시 당의 양대 계파 수장인 김윤환·이기택을 날렸다. YS계 신상우도 함께다. 이 사건은 당시 ‘대학살’로 불렸다. 선거 결과는 한나라당이 과반에 4석이 모자란 1당이었다. 그는 2012년 문재인 대선 후보 캠프에서 국민통합추진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인터뷰는 지난 17일 중앙일보 7층 회의실에서 진행했다. 추가로 전화 인터뷰도 했다.
  
한국당 정체성 이대론 안 된다
 
현역 의원 50% 교체를 어떻게 보나.
“숫자로는 상당한 거다. 숫자로만 보면 국민 뜻에 부응하려 한 것 같다. 하지만 지역 유권자의 판단은 어떻게 반영할지, 미리 %를 정하는 것도 이상하다. 더 중요한 건 누굴 공천할지 사람을 찾아놓기는 했나다. 바꾸는 게 능사가 아니다. 더 나은 사람을 찾는 건 굉장히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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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갈이가 다는 아닐 텐데.
“물갈이도 물갈이지만 당을 어떻게 바꿀 것인지도 정해야 한다. 그래야 거기에 맞는 사람을 충원할 것 아니냐. 한국당은 혁명적으로 변해야 한다. 국민이 요구하는 게 그거다. 당의 정체성을 이대로 가져가선 안 된다.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를 얘기하는데 국민은 그걸 진정으로 실천한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과거 산업화 세력을 승계한 정당이라면 참회해야 한다. 시장경제의 핵심인 공정경쟁을 못 지켜 사회 불평등이 초래됐다고 참회하든지, 뭔가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쳐다본다.”
 
황 대표가 단식에 들어갔는데.
“단식은 극단적인 투쟁 방법이다. 압박의 수위를 높여가다 끝내 안될 때 단식을 통해 투쟁의 폭발력을 높이는 건데 너무 별안간 이란 생각이 든다. 또 요구 조건이 단순해야 하는데 지소미아 등 세 가지나 된다. 야당 생활을 오래 안 해서 그런지…. 야당 대표가 단식해도 국민들이 별로 긴장하지 않는다.”
  
이회창 "너 미쳤구나” 소리질러
 
2000년 공천 물갈이는 어떻게 시작됐나.
“당시 총선기획단장을 맡아 총선을 준비해야 했다. 그때 이회창 총재에게 한 말이 ‘야당은 양적인 개혁을 못 합니다. 질적인 개혁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구시대를 청산한다고 약속했으니 그 상징성이 강한 소수의 정치인을 바꾸는 겁니다.’ 그랬더니 ‘그게 누군데’ 하더라. 그래서 내가 ‘김윤환, 이기택, 신상우’라고 하니 ‘미쳤구나’라고 소리를 지르더라.”
 
그때 물갈이의 원칙은 있었나.
“유권자의 의사가 우선이었다. 여론조사를 했다. 놀랄 만한 게 중진들이 인지도는 높지만, 지지도는 바닥이었다. 이 총재가 믿지 않아 조사기관을 바꿔가면서 세 번 네 번을 조사했다. 결과는 유사했다. 사람을 보내 직접 민심을 들어보고 와도 마찬가지였다. 중앙 정치만 잘해 공천만 받으면 된다는 생각에 평소 지역구에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 대표적 중진 6명을 다 바꾸는 데 모두 지지도가 바닥이니까, 명분이 분명해졌다.”
 
그때 왜 물갈이가 필요했나.
“당시 시민사회에서 낙천운동을 했다. 굉장히 거셌다. 이 총재는 ‘구시대 청산, 3김 시대 청산’을 약속했다. 내가 ‘민심을 거스르는 어떤 세력도 살아남지 못한다. 총재의 약속이기도 하다’며 대폭 교체를 주장했는데 당 중진들이 한사코 반대했다. 그때 엄청 싸웠다.”
 
어떻게 가능했나.
“하여간 당시에도 국민이 뭘 생각하는지와 동떨어진 주장을 하는 분들이 당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었다. 이 총재에게 그분들과 함께 한 자리에서 ‘태평양이 겉에서 보긴 잔잔한데, 그 밑에 거세게 흐르는 해류를 봐야 한다. 국민의 요구가 얼마나 거센지 아느냐. 거스르면 당이 망한다’고 했다.”
 
‘미쳤다’고 할 만한데 그 발상은 어디서 나왔나.
“특별한 발상이 아니고 3김식 정치 청산이란 총재의 공약이다. 그래서 정치개혁을 약속했다. 3김식 정치를 상징하는 인물을 바꿔야 했다. 김윤환·이기택·신상우씨였다. 김윤환·이기택 두 사람은 당시 한나라당의 양대 산맥이었다. 이 총재가 미쳤다고 한 게 그 보스를 치라니까 ‘제정신이냐’고 한 거다.”
 
어떻게 설득했나.
“두 세력은 이념적 결사체가 아니었다. 추종하는 보스의 정치 장래에 대한 기대 때문에 뭉쳐진 세력이었다. 대의명분을 가지고 공천에서 탈락을 시키면 꼼짝 못 할 거다가 제 논리였다. 처음엔 그걸 안 믿더라. 나중에 설득이 되긴 했다. 그랬더니 ‘인간적으로 못 한다’고 하더라. ‘내 손으로 어떻게 그 사람들의 목을 치냐’면서.”
 
그래서.
“‘국민과 역사 앞에 약속했는데 이걸 안 지킬 거냐. 그것도 개인적인 신의 때문에, 국민과 한 약속과 개인적인 신의 간에 어느 것이 우선이고, 어느 게 무거운지를 판단을 하라’고 했다. 그러니까 묵묵부답이더라고. 설득하느라 힘들었다.”
 
얼마나 걸렸나.
“한 달 더 걸렸을 거다. 그렇게 괴로워하더라. 법관 출신이라 논리를 들고 대들면 말은 못했다. ‘당신 말이 맞긴 맞는데…’라며 괴로워했는데 끝내 설득이 됐다. 큰 결심을 했던 거다.”
 
물갈이 이후는 어떻게 됐나.
“그분들이 대단한 죄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지 않나. 상징성 때문이지. 그래도 당을 만들어 나갈 줄은 생각 못 했다. 이 총재를 격렬하게 비난하며 민국당을 만들어 총선에 나섰다. 대부분 낙선이었다. 그걸 보고 ‘참 국민이 무섭다’고 느꼈다. 소름이 돋더라. 그렇게까지 무섭게 심판하리라고 생각은 못 했다.”
 
지금 상황과 비교하면 어떤가.
“넓게 보면 비슷한 측면이 있고, 좁혀 보면 좀 다르다. 이 총재는 당에서 카리스마가 있었다. 나름 국민이 원하는 쪽으로 개혁했다. 반면 황교안 대표는 당내 기반이 약하고 핸디캡도 많다. 통합 대상인 유승민 의원이 지금의 한국당 모습으로는 못 한다고 하지 않나.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것이다. 근데 이 요구는 친박 세력의 반대를 받고 있다. 황 대표가 여기서 갈지자 행보를 하게 되면 그야말로 국민적 신뢰를 금방 잃어버린다. 필사즉생의 길로 가야 한다. 명분을 살리기 위해서 당을 개혁했다 선거에서 지면, 정치적으로 살 수도 있다. 엉거주춤 봉합하는 수준으로 선거를 치르면 분명 실패할 것이고, 장래는 없다.”
 
한국당이 나가야 할 방향은 개혁 보수인가.
“물론이다. 지금 국민이 요구하는 게 그거 아닌가.”
 
그 공천에 대해 이 전 총재와 후일담을 나눈 적은 있나.
“없다. 공천이 발표되자 언론에서 ‘공천 대학살’ ‘원흉 윤여준’이라 했다. 당이 발칵 뒤집혔다. 이 총재 댁에 갔다. ‘두려우세요’ 하니 ‘아니야’라고 하는 데 자신이 없어 보였다. 그냥 ‘걱정하지 마세요. 이깁니다’고 했다. 그리고 ‘원흉이라고 이름이 났으니 책임지고 집으로 가겠다. 그걸로 바로 수습하시라’고 했다. 그렇게 수습하고 선거를 치렀다. 전 바로 집으로 갔다.”
  
청와대 출신 대거 출마 독약될 수도
 
보수 통합이 가능할까.
“될 거다. 황 대표 입장에선 지금 상태로 독자적으로 승부를 걸어 이길 자산이 전혀 없다. 책임을 져야 하니 통합을 해서 선거를 치르면 상대적으로 유리하지 않나.”
 
우리공화당은 어떻게 해야 하나.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이 무효다’ 이렇게 주장하는 세력하고 같이 가려 해선 앞으로 못 간다.”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유리할 거라고 예상했던데.
“‘오늘 치른다 그러면 한국당이 이기기 어려울 거다’ 그렇게 얘기했다. 시간이 더 가봐야 안다. 문 대통령의 지지도가 40% 이상 나온다. 정당 지지도만 단순 비교하는 거보다는, 대통령의 지지도를 유심히 봐야 한다.”
 
여당에선 청와대 출신들이 대거 출마 한다고 하는데.
“여당이 2년 반 동안 자기 역할을 제대로 못 했다. 청와대의 통치 수단이 되는 역할을 번번이 해왔다. 대통령에 충성심이 강하다는 인식을 주는 청와대 출신들이 당에 들어가 출마하면 국민은 당을 일사불란하게 통제하기 위해 출마시키려고 하는구나 할 거다. 지금까지도 당을 장악해서 여당이 제구실을 못 하게 했는데 이제는 완벽히 통제하려고 그러는 구나라는 인식을 주기 쉽다. 치명적인 독약이 될 수 있다.”  
 
신용호 논설위원  
 
※김혜린 인턴기자가 인터뷰에 참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