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상의 시시각각] 부동산 꿀릴 것 없다?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후반인 2006년 말 “부동산 말고는 꿀릴 것 없다”고 했다. 이듬해 신년 기자회견 때는 국민에게 사과도 했다. 노무현 정부를 능가하는 부동산 실책이라는 비판에도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당당하다. ‘국민과의 대화’에서 문 대통령은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고 장담하고 싶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꿀릴 것 없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의 부동산 판(版)이다. 대통령 발언에 대한 간단한 팩트 체크부터 해보자.
 
① “대부분 기간 부동산 가격을 잡아 왔다”=한국감정원 주간 주택가격동향 자료를 찾아 봤다. 문 대통령 취임(2017년 5월 10일) 이후 서울 아파트 가격이 상승한 주는 93차례, 하락한 주는 37회였다(11월 11일까지). 2017년 8·2 대책 직후 5주간 주춤한 것을 빼면 취임 후 2018년 11월 초까지 쉼 없이 올랐다. 이후 9·13 조치 영향으로 32주 연속 하락을 기록하긴 했으나 올 6월 하순 이후 다시 21주 연속 오르고 있다. 3분의 1 채 안되는 하락 기간을 ‘대부분 기간’으로 볼 수 있나.
 
② “전국적으로 가격이 안정화되고 있다”=수치만 보면 맞는 말 같다. 한국감정원의 전국공동주택 실거래가격지수는 1% 남짓 상승에 그친다. 그러나 이를 안정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왜곡이다. 서울은 폭등, 지방은 폭락이라는 두 개의 ‘불안’이 합쳐져 있을 뿐이다. 따로 떨어진 열탕과 냉탕을 두고 ‘목욕탕 물 온도가 적당하다’고 주장하는 격이다.
 
③ “전·월세 가격 안정됐다”=맞다. 2017년 12월 초 100이었던 전세지수는 현재 전국 94.2 서울은 98.2 수준이다. 그러나 이게 현 정부의 성과인지는 의문이다. 전·월세 안정은 입주 물량 증가 덕분인데, 공급이 결정된 것은 전 정부 때였다. 최근에는 정시 확대와 특목고 폐지, 분양가 상한제 등이 잇따라 나오면서 일부 지역 전셋값 불안이 커졌다. 최근 대단지 입주를 앞두고 물량이 쏟아지는 서울 강동구 고덕·상일동은 예상과 달리 시세가 떨어지지 않고 있다. 전세 수요 급증을 예상한 집 주인들이 버티기에 나섰기 때문이다.
 
허상만 봐서는 제대로 된 해결책이 나올 리 없다. 17번의 대책이 쏟아졌지만, 시장은 그때마다 “지금이 기회”라며 비웃었다. “집값 잡으면 피자 쏘겠다”는 대통령 의지에 기대를 걸었던 젊은이들은 지금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다) 체념 상태다. 전 정부 말(“빚내서 집 사라”) 들었던 사람들은 웃고 있고, 현 정부 말(“사는 집 말고는 파시라”) 따랐던 사람들은 땅을 치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실책은 무능력 때문인가, 헛된 소신 때문인가. 시장의 욕망을 통제할 수 있다는 규제 일변도 정책은 노무현 정부까지 포함해 7년 이상의 시행착오에도 바뀌지 않는다. 결과는 의도와는 딴판이다. 무주택 실소유자 대출까지 제한하는 바람에 알짜배기 아파트는 ‘줍줍족’(현금으로 미분양 아파트를 사는 사람들)의 차지가 되고 있다. 임대주택을 늘려야 한다는 고집은 다주택자의 매물만 잠기게 했다. 공급 대책이라며 물량 과잉 지역인 경기도에 신도시를 짓겠다는 바람에 강남의 희소성만 부각했다. 이명박 정부는 반값 아파트를 표방하며 강남 인근에 보금자리 주택을 대량 공급했다. 전셋값 상승, 로또 아파트 논란 같은 부작용은 있었지만, 임기 동안 강남 집값 하나는 확실히 잡았다.
 
대통령은 ‘더 강력한 대책’을 내비쳤다. 뭐가 있을까. 전·월세 상한제, 계약갱신청구권? 부작용이 만만찮다. 최후의 수단은 보유세 인상일 것이다. 과연 꺼낼 수 있을까. 조세 저항에 맞설 용기가 있을까. 집값을 잡으려는지 표를 잡으려는지, 애매모호한 부동산 정책을 보면 이런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태산을 울릴 듯했던 분양가 상한제는 꺼내놓고 보니 말이 좋아 핀셋이지, 그냥 쥐 한 마리였다. 이렇게 총선을 넘길 것이다. 총선이 끝나면 대선이다. 정권이 표와 집값 사이를 계산하는 사이 무주택 서민과 청년을 짓누르는 아파트 그림자는 더욱 짙어지고 있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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