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향미 덕에 ‘미쳤어’ 섹시 퀸 벗어났죠

손담비는 ’데뷔하기 전까지는 내 이미지가 세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며 ’향미를 시작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얻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키이스트]

손담비는 ’데뷔하기 전까지는 내 이미지가 세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며 ’향미를 시작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얻고 싶다“고 말했다. [사진 키이스트]

‘짠내 폭발’. 21일 종영한 KBS2 수목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임상춘 극본, 차영훈 연출)을 요약하기에 가장 적절한 단어가 아닐까. 게장으로 유명한 옹산 바닷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여서일 뿐 아니라 고아로 버려진 미혼모 동백이(공효진)와 유복자로 태어난 동네 순경 황용식(강하늘)을 비롯해 어느 하나 짠하지 않은 캐릭터가 없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동백이 대신 두루치기 배달을 갔다 죽음을 맞은 최향미(손담비)는 짠내의 최고봉이다. 술집 ‘물망초’에서 자라 떠돌다 ‘까멜리아’로 흘러들어왔지만 “날 가만둘 리가 없는” 팔자가 그를 시도 때도 없이 괴롭히며 “비뚤어지고 싶게” 만든 탓이다. “갖고 싶은 건 많지만 가질 수 있는 건 없는” 그는 동백이의 게르마늄 팔찌며 가디건 등을 주워다 입으며 헛헛한 마음을 달래려 했다.
 
서울 신사동에서 만난 손담비(36)는 한결 가벼운 표정이었다. 캐릭터 특성을 살리기 위해 5개월간 뿌리염색을 하지 않아 정수리 부분은 까맣고, 아래는 푸석한 갈색 머리카락 상태로 지냈던 그는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검은색으로 염색하는데 ‘이제 향미를 떠나보내야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기분이 오묘했다”고 말했다. “향미는 버는 족족 동생에게 보내야 하는 앤데 염색할 돈이 어디 있겠어요. 제가 먼저 헤어 디자이너에게 제안하면서 둘 다 편했죠.”
 
먼저 캐스팅된 공효진이 “대본을 읽는 동안 네 생각이 많이 났다”며 직접 손담비를 추천했다. “인생 운 좋으면 제시카고 운 나쁘면 최향미”라는 대사처럼 기구한 팔자를 소화해야 했던 그는 “쉽지 않은 역할이라 더 욕심이 났다”고 했다. “주연이냐 조연이냐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타당성 있는 캐릭터인가를 살펴보는 편인데 향미는 왜 그렇게 무시 받으면서도 돈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지 충분히 설명이 됐죠. 키를 쥐고 있는 인물이기도 했고. 저는 안 할 이유가 없었어요. PD님이나 작가님은 의아하셨을 수도 있지만.”
 
‘동백꽃 필 무렵’ 속 손담비. 무표정한 모습이 눈길을 붙든다. [사진 팬엔터테인먼트]

‘동백꽃 필 무렵’ 속 손담비. 무표정한 모습이 눈길을 붙든다. [사진 팬엔터테인먼트]

공효진은 손담비의 어떤 모습에서 향미를 떠올렸을까. 두 사람은 실제로도 절친한 사이다. 지난 5월에는 정려원·김소이·김모아 등과 함께 제주도로 어머니 동반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둘이 까멜리아에 나란히 앉아 있으면 누가 봐도 제가 사장 같잖아요. 그렇게 화려하게 생긴 애가 하면 좋겠단 생각을 했대요. 본인과는 대조되는 느낌의. 또 저랑 얘기하면서 제가 상대방이 아닌 먼 산을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눈빛을 몇 번 봤다나요. 속으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하면서. 전 잘 모르겠지만 말이죠.”
 
그는 “주변에서 정말 많이 도와줬다”며 감사를 표했다. “향미가 대사량은 많은데 느릿느릿 말하잖아요. 뇌를 거치지 않고 입에서 바로 말하는 것 같은데 뭔가 다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라 딕션이 중요했거든요. 그래서 툭하면 려원 언니 집으로 리딩 연습하러 가고, 현장에서는 오정세 선배님을 붙들고 연습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명대사로는 동백이에게 건네는 당부 “물망초 꽃말이 뭔지 않아? ‘나를 잊지 말아요.’ 너 하나는 나 좀 기억해주라. 그래야 나도 세상에 살다 간 것 같지”를 꼽았다.
 
특히 샤크라·티티마 등 걸그룹으로 시작한 정려원과 김소이와는 “가수 출신 연기자들이 잘돼야 한다. 그러려면 더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다고 했다. 2007년 가수로 먼저 데뷔해 ‘미쳤어’(2008) ‘토요일 밤에’(2009) 등 히트곡을 배출한 그에게는 어딜 가나 ‘섹시퀸’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원래 배우를 꿈꿨던 그는 2009년 ‘드림’부터 차곡차곡 필모그래피를 쌓아갔고, ‘빛과 그림자’(2011~2012)로 MBC 연기대상에서 우수상을 받기도 했지만, 여전히 손담비의 대표작은 ‘미쳤어’다.
 
2013년 싱글 ‘레드 캔들’ 이후 배우 활동에 전념한 것도, 부잣집 딸 같은 화려한 역할은 전부 고사한 것도 같은 연유에서다. “‘미쳤어’ 이미지가 10년 넘게 갈 줄은 몰랐어요. 다행히 향미 덕분에 벗어날 수 있게 됐죠. ‘전국노래자랑’에서 지병수 할아버지가 선보인 ‘할담비’ 덕분에 좀 더 친근해지기도 했고요.”
 
‘미추리 8-1000’ 등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활약한 그는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내려놓는 법을 알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제가 팬덤이 있는 건 아니잖아요. 대중에 가깝게 다가가기 위한 노력을 해야죠. 향미 역할을 하면서 준비하던 음반을 접어서 아쉽긴 하지만 언젠가 또 가수로서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는 날이 오겠죠. 배우로서는 이제 막 시작인 것 같아서 앞으로 더 열심히 해보려고요. 액션도 좋고, 악역도 좋고. 안 해본 역할이 더 많으니까요. 노래도 못하고 춤도 못 추던 제가 가수 활동을 하면서 얻은 가장 큰 교훈은 노력으로 안 되는 건 없다는 거예요.”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