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소미아 파국 막아 다행, 문제는 지금부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의 종료시한(23일 0시)을 코앞에 두고 정부가 유예 결정을 내렸다. 한·일 갈등 국면 속에 정부가 지난 8월 내렸던 종료 결정을 스스로 보류했다. ‘종료통보 효력정지’란 표현을 사용하면서 언제든지 지소미아를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를 붙였지만 갑작스런 파국은 일단 막은 셈이 됐다. 지소미아 종료로 인한 한·미 동맹의 심각한 균열과 한·미·일 안보협력의 혼선을 막고 문제 해결을 위한 시간을 갖게 된 점에선 다행스런 일이다.
 
정부는 이틀 연속 국가안보회의(NSC)를 소집하고 해외 출장 중이던 정경두 국방장관까지 불러들이는 등 막판까지 고심을 거듭했다. 사흘 전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국민을 상대로 “지소미아 종료 문제는 일본이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며 “군사정보 공유는 모순되는 것”이라고 밝힌 것에서 한발 물러섰다. 그만큼 지소미아 종료가 몰고 올 후폭풍에 대한 정부의 부담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그 배경에는 지소미아를 한·미·일 안보협력의 필요조건으로 보는 미국의 강력한 압박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 시점에서 지난 몇 개월간의 혼란을 냉정하게 되짚어 보고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지난 8월 실무부처의 신중론과 전문가들의 강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지소미아 파기를 결정한 정부가 이제 와서 한발 뺀 모양새가 되었다. 정부의 초강수로 인해 과연 얻은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에 맞서는 조치라고는 해도, 현실은 지소미아를 대응 카드로 뽑아든 정부의 의도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강경 일변도의 미숙한 대응책이 드러낸 한계다.
 
일본의 입장 변화를 끌어낸 것도 그리 크지 않았다. 일본은 수출규제(일본의 표현으로는 수출관리)가 정당하다며 양자 협의를 거부해 왔으나 앞으로 국장급 협의를 실시하기로 한 정도다. 그나마 한국이 일본의 조치를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했던 걸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걷어들이기로 한 데 따른 것이다.
 
반면 그 사이 치른 비용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특히 한·미 동맹의 신뢰에 상처를 남긴 것은 뼈아픈 일이다. 당장 한·미 방위비 분담협상 등 어려운 난제들에 대해서도 이번 지소미아 파문을 교훈 삼아 슬기롭게 헤쳐나가야 한다. 지소미아 파기 찬반을 놓고 갈라선 국민 여론의 균열을 봉합해 나가는 것도 과제다.
 
파국은 막았지만 문제가 끝난 것은 아니다. 수출규제 문제에 대한 양국의 이견을 좁히고 한·일 갈등의 근본 원인이 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 내는 숙제가 남아 있다. 더이상 느긋하게 상대방의 입장 변화만을 기다릴 게 아니라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일본 측은 문희상 국회의장이 방일 기간 중에 제시한 한·일 기업의 자발적 출연과 국민 성금에 의한 기금 설립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소송을 낸 강제동원 피해자들과 국민 여론을 함께 만족시킬 수 있는 방안을 서둘러 마련하고 이를 바탕으로 일본과 협의해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일본 정부 또한 완강한 입장을 접고 성의를 보여야 마땅하다. “수출규제와 강제징용 해법은 별개”라는 식의 주장으로는 한국 여론의 반감을 불러일으켜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한국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나라”라는 비난도 협상 진전을 위해 자제해 주기를 촉구한다. 12월 하순 중국에서 열릴 예정인 한·중·일 3국 정상회의 때까지 해법을 도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양국 정상이 만나 합의를 이뤄 내는 방안을 기대해 본다.  
 
정부는 이제 우리 외교안보 정책의 근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을 해야 할 때다. 지소미아 혼란의 책임이 있는 사람에 대한 문책을 포함, 외교안보라인의 쇄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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