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찬의 인프라]전 국민 디지털 교육 나서는 독일…"모든 국민이 미래 직업 걱정 없게"

독일 디지털 교육 [독일 연방 노동사회부]

독일 디지털 교육 [독일 연방 노동사회부]

4차 산업혁명은 불가피하게 일자리 변혁을 불러온다. 디지털화와 자동화로 대변되는 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일자리를 잃기에 십상이다. 여기에 고령화가 더해져 나이가 들면 새로 고용시장에 진입하기 힘들다. 신기술을 익히기엔 너무 늦어서다. 결국 주된 직장에서 은퇴하면 연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릴 수 있다. 국가적으로는 생산인력의 손실이다.

"4차 산업혁명으로 소멸되는 일자리 대신 새로 탄생하는 일자리 역량 배양"

독일 연방 노동사회부(BMAS)는 "2025년까지 디지털화와 기술 혁신으로 13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대신에 210만개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긴다. 여기에 대처하는 능력을 미리 배양할 필요가 있다. 현 고용시장에 안주해서는 일자리를 놓치고 방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독일 정부는 이에 대처하고자 경영·노동단체, 전문가와 난상토론을 거쳐  2015년 『노동 4.0 녹서(Green Paper Work 4.0)』를 발간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은 고용노동 정책을 수립하기 위한 토대를 정리해 소개한 책자다. 이를 바탕으로 각종 정책을 하나씩 마련해 나가고 있다.
 
후베르투스 하일 독일 연방 노동사회부 장관(가운데)이 6월 12일 독일 노총(DGB), 독일 경총(BDA) 등의 대표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4차 산업 혁명에 대비한 '국가 지속 고용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독일 연방 노동사회부]

후베르투스 하일 독일 연방 노동사회부 장관(가운데)이 6월 12일 독일 노총(DGB), 독일 경총(BDA) 등의 대표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어 4차 산업 혁명에 대비한 '국가 지속 고용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독일 연방 노동사회부]

독일 전체 아우르는 17개 노사정 단체, 파트너로 참여

올해 6월 12일 독일은 '노동 4.0'의 실현을 위한 대형 실행 프로젝트를 내놨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자리를 잃는 국민이 없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노사정이 함께 했다. '국가 지속 훈련 전략(Nationale Weiterbildungsstrategie·이하 NWS)'이 그것이다. 고용정책의 일대 변혁을 위한 결실이다. 연방 노동사회부는 "독일 연방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적인 지속적 국가교육전략을 마련했다"고 했다. BMAS(독일 연방 노동사회부), BMBF(연방 교육연구부), BMWi(경제에너지부), BDA(독일 경영자총협회), DGB(독일노총), Länder(17개 주정부), ZDH(수공업협회·기술직종사자협의회), DIHK(상공회의소), IG Metall(금속노조), Gesamtmetall(금속·전자산업사용자단체), GEW(교육단체연합), Ver.di(통합서비스노조), IG BCE(광산화학에너지노조), BAVC(화학산업사용자협회), BA(연방고용청) 등 17개 파트너가 손을 잡았다.
 
핵심은 전 국민이 일자리를 확보할 기회를 넓혀주는 데 있다. 정부가 돈을 뿌려 일자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직업훈련을 통한 역량 배양을 꾀하면서다.
 
독일 국가 지속 훈련 전략(NWS) 홍보 포스터. '지식을 공유하세요. 미래를 내다보세요. 함께 성장합시다'라는 표어 아래 이 전략에 동참한 17개 노사정 기관의 로고가 담겼다. [독일 연방 노동사회부]

독일 국가 지속 훈련 전략(NWS) 홍보 포스터. '지식을 공유하세요. 미래를 내다보세요. 함께 성장합시다'라는 표어 아래 이 전략에 동참한 17개 노사정 기관의 로고가 담겼다. [독일 연방 노동사회부]

"미래에도 계속 일하려면 디지털화해야…인생의 자연스런 부분"

BMAS는 "직업과 기술의 범주가 변하고, 새로운 직업이 등장함에 따라 디지털 변화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게 평생 일을 하기 위한 핵심 열쇠"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NWS에 대해 "실업 또는 실업이 임박했을 때만 (직업훈련을) 실시하는 것이 아니라 (실업을) 예방하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구직자와 재직자가 미래에도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노력의 일환으로 '국가 지속 훈련 전략'이 채택됐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디지털화와 자동화는 우리 앞에 다가온 우리의 것이다. 미래에도 계속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변해야 한다. 인생의 자연스러운 부분으로 이해해야 한다"고도 했다. 한마디로 디지털화로 대변되는 고용시장의 변화에 범국가적으로 선제 대응해야 생산인력의 확보는 물론 개개인의 일자리도 보전할 수 있다는 얘기다.
 
BMAS는 "(NWS는) 디지털화 가능성이 넓어지는 만큼 추가 직업훈련 교육의 길을 여는 장치"라고 소개했다. 구체적인 예시도 했다. "예컨대 도소매, 은행·보험 분야에서는 인간이 하던 일이 기술적인 솔루션으로 대체될 가능성 높다. 반면 교육, 보건·의료, 간호 분야에서는 인간의 일에 대한 수요가 더욱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등의 산업분야에서는 생산시스템의 변화에 따라 업무내용이 크게 변화하고 새로운 기술이나 자격취득이 필수가 된다."

일본 노동정책연구소도 독일 국가 훈련 전략에 주목

일본 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JILPT)도 NWS에 주목했다. JILPT는 최근 보고서에서 "독일에선 듀얼시스템으로 대표되는 청소년 초기훈련이 보편적인 직업훈련이다. 청소년기를 지나면 마이스터 제도와 같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사회적으로 확립된 교육훈련 제도는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독일의 이번 NWS는 "디지털화에 따른 환경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계속 훈련'에 중점을 두고 수립된 포괄적인 국가전략"이라고 평가했다.
 
독일 화학 산업 회사의 디지털·자동화 공정. [독일 화학산업사용자협회(BAVC)]

독일 화학 산업 회사의 디지털·자동화 공정. [독일 화학산업사용자협회(BAVC)]

독일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87%에 달하는 기업이 산업에 맞는 훈련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NWS는 이런 요구에 부응해 세 가지 활동을 병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①기업 차원의 지속적 훈련 ②실업자에 대한 계속 교육 강화(모든 실업자가 3개월 이내에 수강하도록 보조금 성격의 인센티브 지급) ③직업전환 훈련이다. 이 가운데 NWS가 특히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세 번째 항목이다. 디지털화에 따라 비즈니스 모델의 변경이 필요한 기업이 많은데, 여기서 일하는 직원에 대한 전환 훈련이다. 독일 상공회의소의 자료를 인용하면 사실상 모든 기업의 근로자가 전환 훈련 대상이 된다. 기존 근로자에게 변화에 걸맞은 재교육과 재훈련을 하는 셈이다. 물론 실업자의 재취업 전략도 이를 기반으로 한다.

기존 근로자, 변화에 맞춘 디지털 전환 직업훈련에 초점

이를 위해 NWS에는 기관별로 10가지 행동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예컨대 연방 교육연구부(BMBF)는 대화형 학습 플랫폼인 디지털 직업교육 플랫폼을 개발하고, 노동부와 경총, 상공회의소는 평가 인증 방안을 만드는 식이다. 굳이 훈련시설에 가지 않아도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노조도 국가 훈련 전략의 실현을 위해 각종 제안을 하고, 홍보한다. 독일 금속노조(IG Metall)는 근로자 실태 조사를 거쳐 '트랜스 포메이션 조업단축 수당' 도입을 제안했다. 고용을 유지하면서 훈련의 접근성과 참여율을 높이고, 시장 변화에 대처할 새로운 기술과 자격 취득을 목적으로 하는 시책 중 하나다.

독일 노동계, 훈련참여율 높일 방안 제안하는 등 적극적…독일 정부 "의미있는 제안"

독일에는 한국처럼 조업단축 수당이 있다. 기업이 경영상 어려움을 겪을 때 직원의 고용을 유지하면 정부가 임금의 일부를 보전해주는 제도다. 독일은 이 수당과 근로시간계좌제(연장 근무를 했을 경우 시간 외 수당 대신 일한 만큼을 휴가계좌에 적립해 휴가로 사용하는 제도)와 같은 유연한 근무체계를 적절히 병용함으로써 기업의 기능 유지와 실업억제 효과를 꾀해 왔다. 이런 병행 제도 덕분에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대량 실업 사태가 발생하지 않고 경기 회복을 빠르게 이끌었다. 유럽연합(EU)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를 두고 '독일 고용의 기적'이라는 평가를 했다. IG Metall의 제안은 이런 장점을 원용했다. 직업 전환 훈련을 받게 되면 그만큼 일하는 시간이 줄어 임금이 감소할 우려가 있다는 점에 착안해 직장인이 더 많이 전환 훈련에 참여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전략인 셈이다. 배치전환을 놓고 파업까지 벌이는 한국 노조와는 대비되는 대목이다.
 
한델스브라트(Handelsblatt) 보도에 따르면 후베르투스 하일(Hubertus Heil) 연방 노동사회부 장관은 "조업단축 수당을 훈련과 자격취득으로 묶는 것은 의미 있는 제안"이라며 "제도 도입과 함께 다양한 지원책을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찬 고용노동전문기자 wolsu@joongang.co.kr
<한국은…>

고용노동부는 지난 9월 직업훈련 체계 변화를 꾀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민간에서 필요에 따라 훈련 과정을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정부가 훈련 과목과 훈련 시간까지 일일이 지정해서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경영 환경 변화를 따라갈 수 없다는 비판을 수용한 조치다. 일단 시범사업으로 출발한다.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기 위한 걸음마를 뗀 셈이다. 갈 길이 멀다는 뜻이기도 하다.

선진국에 비하면 우리의 직업훈련 시스템은 크게 뒤진다. 1970~80년대 정부 주도의 고도성장기 시절 시스템에서 크게 바뀐 게 없다. 아직도 정부 주도이고, 규제 위주다. 민간에 이양했다는 것조차 그렇다. 정부가 시시콜콜 간섭한다. 심지어 훈련 단가까지 정한다. 이러니 기업체에서 실제로 운영하는 첨단 기기 실습은 꿈도 못 꾼다. 단가가 안 맞아서다.

또 훈련비 지급을 담당하는 기관에는 정부 출신 인사가 간다. 민간인 침범 불가 지역이다. 행정 마인드로 비용 지출을 하기 때문에 민간 기업에서 필요한 훈련을 하기 어렵다.

노사정의 움직임도 더디다. 정부의 규제혁신은 제자리 걸음이다. 사회안전망 확충에는 열을 올리지만 실업 상태에 있거나 실업 위험이 있는 사람을 일자리로 불러들이고, 취업시키는 훈련 과정 개편은 속도가 나지 않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나 대한상공회의소 같은 경제단체는 정부가 내놓는 직업훈련 정책에 대해 비평은 해도 자체 훈련시스템 개발이나 체계 개편을 위한 방안을 낸 적이 없다. 이런 사정은 노동 단체도 마찬가지다. 고용부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 노사단체는 실현 가능한 정책을 제안할 역량이 부족하다"며 "설령 협의를 하더라도 상대의 의견을 반대하기 위한 논리 개발에만 열을 올릴 뿐 독일 같은 노사정의 '자체 연구→협의→합의' 모델을 구현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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