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통 공부하고 점심시간엔 시음… '위스키 학교' 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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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영 사진 김대영

[더,오래] 김대영의 위스키 읽어주는 남자(45)

어린 시절, 어머니의 등짝 스매싱을 피할 수 있는 마법의 말이 있었다. "공부하고 올게요." 아무리 큰 잘못을 저질렀어도, 이 한 마디에 화를 누그러뜨리지 않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저 졸지 말고 공부 열심히 하라며 등을 토닥일 수 밖에 없다. 맛있는 거 사 먹으라며 용돈까지 쥐여주게 된다. 그런데 만일, 학교에 가서 공부한다는 게 술이라면? 여기, 위스키를 배우러 학교에 간 사람들이 있다. 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그들의 등짝에 애도의 뜻을 표한다. 
 
<아시가쿠보 위스키학교>
지난 10월 29일, 일본 치치부 시의 폐교가 된 한 초등학교에서 입학식이 열렸다. 여기에 일본에서 주류판매업을 하고 있는 한정목 씨가 참석했다. 학교에는 8개의 반으로 나뉜 약 100명의 학생과 각 반의 담임선생님, 그리고 5개 교과 선생님들이 있었다. 그들 모두 초등학교를 다닐 나이는 훨씬 지났지만, 학구열은 엄청났다. 바로 위스키에 대한 학구열이었다. 1박 2일 간, 위스키를 공부하는 위스키 학교가 개교한 것이다.
 
일본 치치부 시에 있는 아시가쿠보 학교 전경. [사진 한정목]

일본 치치부 시에 있는 아시가쿠보 학교 전경. [사진 한정목]

 
대부분의 학생은 바텐더나 주류영업원, 증류소직원 등이었고, 위스키 애호가들도 있었다. 수업을 담당한 선생님들은 일본 위스키 증류소 직원들이 맡았다. 수업은 30분씩 진행됐는데, 이과1, 이과2, 산수, 생물, 사회 등 5과목이었다. 보리가 맥아가 되는 과정, 위스키 제조에 필요한 계산과 실습, 일본산 오크통, 해외의 다양한 증류기 형태 등에 대해 배웠다. 하룻동안 배운 지식은 반 대항 레크리에이션을 통해 우승을 가렸다.

 
산수 수업을 담당한 ㈜벤처위스키 블렌더, 미사와 슈 선생님. [사진 한정목]

산수 수업을 담당한 ㈜벤처위스키 블렌더, 미사와 슈 선생님. [사진 한정목]

 
물론, 수업만 있었던 건 아니다. 체조 시간에는 위스키 제조과정에서 몸을 쓰는 동작을 활용해 단체로 ‘위스키체조’도 했다. 공강이나 점심 시간에는 역대 치치부 위스키 축제 한정판이었던 위스키를 비롯해, 다양한 위스키를 자유롭게 마셔볼 수도 있었다. 학교에서 공개적으로 술을 마시다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위스키 학교에선 오히려 장려되는 일이었다. 

 
공강이나 점심 시간에는 다양한 위스키를 시음할 수 있었다. [사진 한정목]

공강이나 점심 시간에는 다양한 위스키를 시음할 수 있었다. [사진 한정목]

 
자연스럽게 1박 2일을 동고동락한 학생과 선생님들은 친해졌다. 한정목 씨는 “위스키라는 공통 분모가 연령, 성별, 국적을 떠나 하나로 뭉치게 했다”며 “bar에서 바텐더의 친절한 설명으로 위스키를 이해하는 것도 좋지만, 직접 참가하는 이벤트에서 배우는 것은 위스키를 더 친숙하게 만들어줬다”고 말했다. 이어 “위스키가 하나의 관광자원으로 지역경제에도 큰 역할을 할 수 있음을 알게됐다”고 말했다.
 
아시가쿠보 위스키학교의 실행위원 중 한 명이자, 도쿄에서 J’s Bar를 운영중인 하스무라 씨는 “위스키에 대한 보다 풍부한 배움과 위스키를 사랑하는 사람 간의 교류를 위해 이번 행사를 준비했다”며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누구나 추억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 초등학교를 행사 장소로 정했다”고 했다. 그는 이번 행사의 가장 큰 매력에 대해, “위스키에 대해 잘 모르는 내용을 물어볼 수 있는 선생님과 위스키 이야기를 나눌 동급생이 바로 옆에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아시가쿠보 위스키 학교, 제1회 졸업증서수여식. [사진 한정목]

아시가쿠보 위스키 학교, 제1회 졸업증서수여식. [사진 한정목]

 
일본의 위스키 붐은 현재진행형이다. 올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신생 위스키 증류소 소식이 들려온다. 일본에서는 거의 매 달,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부터 최남단 오키나와까지 위스키 축제가 열리고 있다. 이제 일본에서는 위스키가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어 가는 것 같다. 한국에서 위스키 학교가 개교하는 날은 언제일까, 교실에 앉아 위스키를 마시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하다.
 
중앙일보 일본비즈팀 과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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