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영화 기생충과 올해의 사자성어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2019년이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올해 많은 일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영화 기생충을 본 것이 기억에 남는다. 봉준호 감독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우리 사회의 빈부 격차와 계급을 풍자하면서도 예술성과 재미를 함께 갖춘 영화였다. 탄탄한 각본에 배우들 연기도 좋았다. 올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청룡영화상 최우수 작품상 등 국내외에서 이미 많은 수상을 했고 큰 화제가 됐다.
 
얼마 전에 중국 서부의 한 대학을 방문해 경제학 전공 교수, 학생들과 모인 자리에서도 영화 기생충이 화제였다. 중국 정부가 영화관 개봉을 허가하지 않는데도 모두 영화를 봤으며 정말 인상 깊다고 했다. 중국에서도 심각한 문제여서인지 한국의 빈부 격차, 사회 계급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젊은 학생들은 또래인 박소담이 연기한 기정(제시카) 역에 관심이 많았다. 기정은 그렇게 뛰어난 포토샵 기술을 갖고 있는데도 왜 직업이 없느냐, 한국엔 그렇게 청년 일자리가 없느냐는 질문도 있었다. 기택의 가족 중에 왜 하필이면 기정이 죽어야 하는지도 질문이 있었다. 갑론을박이 많았지만, 제시카는 겉은 멀쩡하지만 가장 허위(虛僞)와 가식(假飾)의 인물이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설득력이 있었다. 제시카는 졸업장을 위조하고, 모함으로 박 사장의 운전기사와 가정부를 쫓아내고, 어린아이에게 엉터리 미술치료를 하면서도 자기 가족을 위한 일이라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 기정은 가난한 부모 만나 재능을 살리지 못한 불쌍한 소녀라는 항변도 있었다.
 
당시 중국에서 영화 기생충과 겹쳐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화제였다. 증명서 위조, 증거 인멸, 사모펀드 관련 의혹 등 많은 혐의를 받으면서도 법무부 장관이 되고 다시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로 복직했다. 자녀의 명문대 입학을 위해 부모의 모든 인맥과 편법이 동원되는 한국 사회의 모습에 청년들은 좌절했다. 남이 할 때는 그렇게 비난하던 행위를 자신과 가족이 할 때는 너무나 뻔뻔하게 합리화하는 이중 잣대에 많은 사람이 분노했다.
 
누구나 마음속에 이중 잣대를 갖고 판단하는 위선적인 성향이 있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은 귀인 편향(歸因 偏向, attribution bias)을 갖는다고 설명한다. 다른 사람의 잘못된 행동이나 태도는 그 사람의 기질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자신의 잘못은 사회규범이나 주변 상황 때문으로 생각하는 편향된 성향이 있다는 논리다. 예를 들어 운전 중에 다른 차가 앞에 갑자기 끼어들면 교양 없는 난폭한 운전자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자신이 갑자기 차선을 바꿀 때는 차량 흐름이나 다른 불가피한 이유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일 뿐, 자신은 원래 규칙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고 변명한다.
 
귀인 편향은 잘못된 결과에 상처를 입지 않고 자존감을 지키려는 인간의 본능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런 성향이 너무 심해서 자신이나 자신이 속한 그룹의 잘못은 전혀 인정하지 않고 모두 합리화하는 성향을 보이면 문제가 심각하다. 잘못과 실수를 깨닫고, 반성하고, 정직하고 진실한 삶을 새롭게 살아야 한다. 영화 속 제시카도, 현실의 조국도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기 전에 멈췄어야 했다.
 
2019년에는 우리 사회에 허위와 가식, 이중 잣대가 넘쳤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내로남불’이 사자성어처럼 사람들 입에 오르내렸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의 ‘내로남불’에 국민의 실망이 컸다. 과거에는 위장전입, 탈세, 자녀 채용 특혜 의혹이 있는 고위공직 후보자를 청문회에서 그렇게 비난하더니 이제는 이중 잣대를 갖다 댄다. 야당 때는 블랙리스트와 권력 남용을 비난하더니 정권을 잡고는 입맛에 맞지 않은 사람들을 몰아내기 위해 비슷한 일을 반복한 증거가 나와도 적반하장(賊反荷杖)의 태도를 보인다.
 
“대학을 졸업해도 비정규직 알바 말고는 일자리를 찾을 수 없는 암담한 현실이니 경제 실패를 겸허히 인정하라”면서 전 정권을 몰아세우더니 경제가 추락하는데도 정책 실패는 인정하지 않는다. 세계경제 위기 때 수요를 창출하기 위한 공공투자 사업은 그렇게 비난하더니 이제 선심성 재정지출을 마구 늘려 국가채무가 증가해도 아전인수 격으로 해석하기에 바쁘다. 전 정권은 불통이라고 비난하더니 우리는 항상 옳다는 식으로 한쪽 진영 논리만 대변하면서 국론분열은 더 심해졌다.
 
영화 기생충은 비극으로 끝났지만 2019년의 한국은 2020년으로 이어진다. 정치, 사회 분열은 심각하고 경제 전망은 밝지 않다. 대외 환경은 복잡하고 위험도 크다. 국가의 앞날을 가름하기 어려운 엄중한 시기이다. 새해에는 문재인 정부가 남 탓, ‘내로남불’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를 바란다. 작년 말에 교수신문은 올해의 사자성어로 ‘임중도원(任重道遠)’을 선정했다.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멀다’라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중요한 과제가 너무 많다. 이제 그간의 잘못과 실수를 돌이켜 보고, 무너진 사회 공동체를 다시 세우고 국민 모두의 삶의 질을 높이는 통합의 정치로 새롭게 출발하길 바란다.
 
이종화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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