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퍼스펙티브] 중앙선관위, 공정성 의심받으면 나라 내전 상태 빠져

동물농장이냐 베네수엘라냐

나경원 의원 등 야당 측이 지난해 1월 문재인 대통령 대선 캠프의 ‘공명 선거 특보’ 출신인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의 임명 강행을 철회하라며 국회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경원 의원 등 야당 측이 지난해 1월 문재인 대통령 대선 캠프의 ‘공명 선거 특보’ 출신인 조해주 중앙선거관리위원의 임명 강행을 철회하라며 국회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베네수엘라는 차베스·마두로 두 대통령의 20여년에 걸친 사회주의 민중 독재로 나라가 거덜났다. 한 때 ‘남미의 베네치아’로 불렸던 풍요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다. 국가가 개인의 휴가비까지 지급하던 복지 천국은 순식간에 없어졌다. 재정 파탄으로 배급이 중지되자 거리엔 개가 사라졌다. 빈곤과 탄압으로 인구의 20%가 최근 5년간 조국을 떠났다. 차베스(1999년~2013년)와 마두로 정권(2013년~)은 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군부를 선제적으로 장악한 뒤 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언론을 차례로 굴복시켰는데 그들은 합법적이라고 주장했다. 장악과 굴복이 합법적이었다는 주장은 “차베스가 국민이다”라고 외쳐댄 친정부 대중의 지지 구호에 올라타 사실처럼 행세하고 있다. 친정부 언론들이 허무한 주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보면 신성한 독재자, 돼지 나폴레옹이 거짓말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그러면 양떼들이 등장해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는 구호를 합창한다. 네 다리의 짐승 시대가 과거 두 다리의 인간이 지배하던 시절 보다 낫다는 동물 왕국의 찬가다. 대부분의 농장 동물들은 나폴레옹의 과거 말과 지금이 다르다고 고개를 갸웃하는데 그러곤 만다. 곧바로 양떼들의 합창에 휩쓸려 간다. 가끔 머리가 좋거나 기억력이 뛰어난 암탉들이 지도자의 말에 불신를 표시하면 나폴레옹의 친위대인 9마리의 맹견이 으르렁 거리며 달려든다. 소신을 굽히지 않는 어떤 암탉은 개들에 의해 물려 죽는다. 동물농장에서 돼지 집단은 누구도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신성가족이다. 개의 공포와 양들의 묻지마 지지는 통치의 두 수단이다.
 
베네수엘라 민중 독재 정권이 3권(입법, 사법, 행정)과 언론에 이어 마지막으로 장악한 기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였다. 차베스는 이미 헌법 개정으로 중앙선관위를 헌법기관으로 격상시키면서 5명의 위원 가운데 4명을 집권당 성향의 인물들로 채워 넣었다. 퇴임한 선관위원장들을 다른 고위 공직에 재임명했다. 현직 선관위원들의 마음은 콩밭에 갔다. 이렇게 밑밥을 깔아 놓은 덕분인지 마두로 시대에 들어서 베네수엘라 선관위는 권력에 충성하는 개가 되었다.
 
예를 들어 2015년 총선에서 승리한 야당이 마두로 대통령의 국민소환을 추진하자 선관위가 직권으로 중지시켰다. 2016년엔 여당한테 불리한 정치 상황이 조성되자 지방선거를 연기했다. 2017년 7월에 위헌적인 제헌의회를 소집해 야당의 선거 불참 사태를 낳더니 10월 지방선거에선 야당 지지자의 투표방해 사건 등 추악한 선거부정이 난무해도 눈을 감아 버렸다. 2018년엔 대통령 선거 날짜를 집권당의 요구에 따라 두 차례나 일방적으로 조정했다. 급기야 2019년 마두로 대통령의 재선이 불법이라며 야당 출신 과이도 국회의장이 스스로 새 대통령임을 선언했다. 2020년에 들어서자 마두로가 경찰을 동원해 야당의 국회출입을 막은 채 자기 쪽 국회의장을 옹립했다.
 
이로써 베네수엘라에서 여야간 공정한 게임 규칙과 엄격한 심판자는 실종됐다. 선관위는 권력의 인사 개입을 허용하고 한두 번 여당과 거래를 튼 뒤 위헌과 불법적 조치를 대담하게 저질렀다. 민중 독재 세력의 인사와 보상에 의해 중앙선관위가 여당화되자 나라는 ‘한 나라 두 대통령’ ‘한 나라 두 국회의장’의 내전 상태에 빠져 버렸다.
 
권순일 중앙선관위원장(左), 조해주 선관위 상임위원(右)

권순일 중앙선관위원장(左), 조해주 선관위 상임위원(右)

문재인 정부의 2년반을 겪으면서 베네수엘라나 동물농장을 떠올리는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우선 중앙선관위(위원장 권순일)만 해도 이 정권의 초반엔 여야에 엄정했다. 예를 들어 2018년 봄, 청와대가 김기식 신임 금감원장의 국회의원 재직시 위법 문제(셀프 정치후원금, 피감기관 지원 외유)에 대해 유권해석을 의뢰하자 선관위는 과거와 동일한 잣대를 적용해 위법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김기식은 현직에서 사퇴해야 했다. 그러나 심판자의 엄정한 유권해석을 야당조차 인정한 효과는 컸다. 그해 6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압승했지만 야당은 부정 선거 문제를 한 건도 제기하지 않았다.
 
그랬던 중앙선관위가 2019년 1월, 문재인 대선 캠프에서 활동한 기록이 있는 조해주 상임위원이 취임하면서 중립성을 의심받기 시작했다. 조해주는 야당의 인사청문회 거부 속에 문 대통령이 임명을 강행한 태생적 한계에 갇혀 있다. 지난 13일 선관위는 야당이 등록 신청한 ‘비례자유한국당’의 당명 사용을 금지시켜 중립성에 의문을 일으켰다. 선관위의 결정은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중앙선관위는 비례 위성정당의 명칭 사용을 원천적으로 차단해야 한다”고 주장한 지 사흘만에 나온 것이어서 의심이 증폭됐다. 선관위가 공정성에 의심을 살 때 닥칠 가장 큰 문제는 선거에서 국민 승복을 받아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주권을 도둑질당했다는 국민 피해의식이 퍼져 나가면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험에 빠진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3권과 언론은 권력의 생산이 공정하고 정당하다는 전제 위에 성립한다. 전제가 흔들리면 폭력과 내전의 원시 권력 상태로 돌아가고 만다. 30년 이상 중앙선관위가 힘겹게 쌓아온 한국의 민주주의 기반이 권순일 위원장, 조해주 상임위원 체제에서 무너졌다는 소리를 듣지 말아야 할 것이다.
 
9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앙선관위는 1989년 이회창 선관위원장 명의로 노태우 대통령을 비롯한 여야 총재들한테 혼탁 선거운동을 우려하는 경고 서한을 보내고 가차없이 당선자들을 고발한다거나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발언한 노무현 대통령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판정및 중립의무 준수 요청이라는 단호한 조치(위원장 유지담)를 취한 전통을 갖고 있다. 이 때의 중앙선관위원장과 선관위원들도 대통령으로부터 임명장을 받았으나 민주주의를 생성 단계에서부터 지키는 헌법 기관으로서의 자부심과 사명감으로 구성원들은 정파성을 자제했다. 선관위는 상대적으로 힘있는 여당의 독주를 견제해 왔다. 선관위가 문재인 정부 들어 심화된 ‘온 나라의 친여 인사화’ 현상에 휩쓸린다면 베네수엘라 비극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동물농장에서 왕 노릇하는 돼지 나폴레옹은 짐승들의 기억을 조작하는 방식으로 통치의 효율을 높였다. 저항적 행동을 유발할 수 있는 불편한 기억을 편안하게 바꿔 주었다. 기억의 조작은 생짜배기로 가짜를 들이밀기 보다 기존의 사실에 작은 거짓을 하나씩 덧붙여 짐승들이 받아들이기 쉽게 했다. 예를 들어 동물농장의 7개 조항 헌법 중 제4조는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된다’이다. 이는 동물반란이 성공한 뒤 인간의 모든 것을 부정하는 적폐청산 정신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나폴레옹의 신성가족(돼지 집단)이 침대에서 자는 것이 목격되었다. 지도자와 그 가족의 헌법 위반 행위에 말과 염소가 혼란스러워 했다. 이들이 문제를 제기하려 하자 나폴레옹 정권은 헌법이 쓰여 있는 농장 담벼락의 제4조를 ‘어떤 동물도 시트가 있는 침대에서 자서는 안된다’로 몰래 바꿔 놓았다. ‘침대’ 앞에 ‘시트가 있는’이라는 관형구를 슬그머니 얹어 넣은 것이다. 그런 뒤 나폴레옹의 어용적 지식인인 스퀼러라는 돼지가 맹견 두 마리를 끌고 나타나 “헌법은 시트가 있는 침대에서 자지 말라고 했다. 시트가 없는 침대에선 자도 된다는 얘기”라는 요설을 늘어 놓자 말과 염소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갔다.
 
문재인 정부에서도 스퀼러같이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정권 수사를 중단시켜 놓고 검찰을 개혁했다고 한다. 대통령 주변 수사를 중단하는 것이 검찰 개혁이라는 말은 처음 들어 본다. 어떤 스퀼러는 ‘검찰권 절제’라는 표현을 썼는데 이런 말은 민생 사범 서민 수사에 적용할 일이다. 또 다른 스퀼러는 살아있는 교활한 권력의 부패·비리를 잡기 위한 수사를 인권 침해라고 주장했다가 온 세상이 웃자 거둬 들였다. 인간 공동체에서 권력은 없어서 안되지만 경계해야 할 물건이다. 필요악이다. 선한 권력은 없다. 권력을 믿어선 안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 모든 권력은 감시받고 견제받아야 한다. 동물농장의 권력이든 베네수엘라의 권력이든 한국의 권력이든 마찬가지다.
 
전영기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