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진 모녀 '이기적 여행'에 소송…관광객 끊긴 제주의 고민

지난 25일 오후 제주대학교 앞 벚꽃길에 시민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 25일 오후 제주대학교 앞 벚꽃길에 시민들이 모여 사진을 찍고 있다. 최충일 기자

지난 25일 오후 6시 제주대학교 앞 벚꽃길.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관련해 국가 차원의 ‘사회적 거리두기’ 권고 중에도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았다. 갓길 주차장은 렌터카와 제주도내 차량들로 가득 들어찼다. 
 
 상춘객들은 만개한 벚꽃을 배경으로 연신 사진을 찍었다. 대부분 마스크를 착용했지만 일부 시민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 사람이 많이 몰릴 것을 염두에 두고 장사에 나선 푸드트럭도 보인다.
 
 국내 최고의 관광지 제주도가 딜레마에 빠졌다. ‘코로나 청정지대’ 혹은 ‘코로나 안전지대’라는 분위기 속에 여전히 상당수의 관광객들이 찾고 있어서다. 제주도는 이날까지 전국 17개 광역 지자체 중 가장 적은 7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하지만 제주도민들은 이런 상황이 반갑지만은 않다. 27일 오전 현재까지 제주도내 확진자 모두가 외부에서 온 이들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확진자가 아니라도 유증상 시기에 제주에서 관광을 한 후 제주를 떠나 확진된 이들도 제주도민의 걱정을 키웠다.  
 
 미국 유학생 A씨(19·여)는 지난 20일 어머니 등 일행 3명과 함께 제주에 와 24일까지 4박 5일간 제주 관광을 한 후 확진 판정을 받았다. 특히 A씨는 제주에 온 지난 20일 저녁부터 오한과 근육통, 인후통 등 코로나19 관련 증상을 보였던 만큼 제주도는 충격에 휩싸였다.
 
26일 오전 제주 여행 후 서울 강남구 보건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미국 유학생 A씨(19·여)가 묵은 제주시 회천동 한화리조트에 일시 폐쇄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뉴스1

26일 오전 제주 여행 후 서울 강남구 보건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미국 유학생 A씨(19·여)가 묵은 제주시 회천동 한화리조트에 일시 폐쇄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뉴스1

 
 제주를 여행한 관광객이 확진 판정을 받자, SNS를 통해 중국인에 이어 내국인 관광객도 막아야 한다는 극단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제주시내 한 커피전문점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가게 입구에 ‘이시국 여행자 출입 금지’를 써 붙인 것을 알리기도 했다.  
 
 제주도민의 우려가 극에 달했다고 판단한 제주도는 급기야 이 모녀에 대해 민사소송을 걸겠다고 26일 발표했다. 27일에는 "모녀의 이동 동선을 세부적으로 검토해 형사고발을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제주도는 A씨 모녀의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 제주도와 도민들이 입은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고 소송 절차를 진행 중이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도민을 대신해 유증상 입도객들에 강력히 경고하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청구되는 손해배상액이 1억원을 넘길 것으로 보고 있다. A씨 모녀의 접촉자 47명이 격리됐고, 방문 장소 20곳에 방역이 이뤄지고 일부는 휴업에 들어간 점 등을 고려해서다.    
 
 이런 제주도의 움직임에 관광업계는 ‘어쩔 수 없다’면서도 우려가 크다는 입장이다. 제주도는 코로나19 여파에도 하루 평균 관광객 1만4000∼1만6000여 명이 방문하고 있다. 지난해 같은 기간 하루 3만명 이상이 찾은 것과 대비해 40∼50%에 그치고 있다.
 
제주도내 한 커피전문점 입구에 걸린 '이시국 여행자 출입금지' 팻말. [SNS 캡쳐]

제주도내 한 커피전문점 입구에 걸린 '이시국 여행자 출입금지' 팻말. [SNS 캡쳐]

 관광업을 하는 문모(50)씨는 “불안해하는 도민들이 많은 상황에서 대놓고 관광객 유치에 나설 수도 없는 상황이라 답답하다”며 “4월 이후 조금이라도 풀릴 것을 기대하고 있지만, 이번 소송 등의 여파로 시장이 더 얼어붙으면 다시 제주에 와주라 사정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관광 제주의 딜레마는 지난 2월 4일 무사증 중단 결정 때에도 거론됐다. 이 영향에 따라 지난달 16일 제주~중국 정규 노선이 끊겼고 지난 1일부터는 홍콩·대만 등 중화권 노선, 태국 노선이 중단됐다. 지난 9일에는 도쿄·오사카·후쿠오카 등 제주~일본 3개 직항 노선도 잠정 중단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B씨 모녀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기 전에 여행한 것을 놓고 소송을 하는 것은 지나친 대응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모녀의 제주여행 당시 미국발 입국자에 대해서는 유럽발 입국자 등과는 달리 2주간 자가격리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미국발 입국자에 대한 자치구 명단 통보는 27일 0시를 기해 이뤄진 것이어서 B씨 모녀는 제주여행 당시 자가격리 대상이 아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민 변호사는 27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국가나 지자체가 개인에게 민사소송하는 것은 남용 위험성과 함께, 일반화에 따른 전체주의 국가화 우려가 있다”며 “법조인인 원희룡 지사는 재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 25일 오후 제주 여행 후 서울 강남구 보건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미국 유학생 A씨(19·여)가 묵은 제주시 회천동 한화리조트에서 방역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뉴스1

지난 25일 오후 제주 여행 후 서울 강남구 보건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미국 유학생 A씨(19·여)가 묵은 제주시 회천동 한화리조트에서 방역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뉴스1

 정순균 서울 강남구청장도 강남구에 사는 B씨 모녀에 대해 해명에 나섰다. 정 청장은 이날 브리핑을 갖고 "모녀도 코로나19 발생에 따른 선의의 피해자"라며 "치료에 전념해야 할 모녀가 사실상 정신적 패닉상태에 빠져있다"고 말했다.
 
 정 구청장은 "여행 출발 당시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지정된 자가격리 대상자도 아니었고, 특별한 증상이 없어 제주도 여행길에 나섰다"며 "A씨는 여행 출발 당일인 20일 미약한 인후통 증상이 있었지만 코로나19 감염에 대해서는 크게 우려하지 않았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정 청장은 또 "역학조사 결과 딸에게 코로나19 특유증상인 미각과 후각에 이상증세가 나타난 것은 여행 마지막 날인 24일부터이며, 이날 오후 5시 서울 상경 직후 강남구 선별진료소를 방문해 검사를 받았다"며 "제주도의 고충이라든지, 제주도민이 입은 피해에 대해선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지만, 이들 모녀도 코로나19 발생에 따른 선의의 피해자"라고 말했다.
 
지난 26일 오전 제주 여행 후 서울 강남구 보건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미국 유학생 A씨(19·여)가 묵은 서귀포시 표선면 해비치호텔에서 투숙객들이 빠져나가고 있다. 뉴스1

지난 26일 오전 제주 여행 후 서울 강남구 보건소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미국 유학생 A씨(19·여)가 묵은 서귀포시 표선면 해비치호텔에서 투숙객들이 빠져나가고 있다. 뉴스1

 
 한편 제주도는 신종 코로나 사태가 오는 6월까지 지속하면 최대 350만명의 관광객이 감소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른 피해 금액은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내다봤다. 최근 조사된 제주관광산업의 연매출 6조5000억원의 23% 수준이다.   
 
 제주도는 이에 따라 해외 방문 이력이 있는 모든 입국자가 자가격리 조치를 철저히 지키지 않을 경우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정부에 건의했다. 제주도는 27일 오전 진행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영상 회의에서 A씨 모녀의 사례를 제시하며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제주=최충일 기자, 최경호·김현예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