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실리콘밸리,판교]내 눈엔 외계어, AI에겐 알짜 정보…비식별화 스타트업 딥핑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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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 기자 사진 김원 기자
개인정보 비식별화 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데이터3법(개인정보보호법·신용정보법·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오는 8월 시행을 앞두고 있어서다. 새 법은 정보 주체의 동의를 받아야만 활용할 수 있는 개인정보와 개인을 식별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지운 익명정보 사이 가명정보 개념을 추가했다. 가명정보는 추가 정보 없이는 특정인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든 정보다. 법이 시행되면 정보 주체의 동의 절차 없이 가명정보 데이터를 상업적으로 활용할 길이 열린다. 하지만 이와 비례해 개인정보 유출을 둘러싼 우려도 점차 커지고 있다.

개인정보·가명정보·익명정보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개인정보·가명정보·익명정보는.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018년 6월 설립된 딥핑소스는 개인정보 데이터를 가명정보로 활용하는 핵심기술인 ‘비식별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이다. 딥핑소스의 기술을 적용하면 개인정보 데이터는 우리 눈으로는 알아볼 수 없지만, AI(인공지능)는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바뀐다. 비식별화해도 필요한 핵심 정보는 그대로 남아 있기 때문에 AI가 원본을 분석할 때와 거의 같은 결과를 얻어 낼 수 있다. 또 데이터 원본에 개인정보가 포함돼 있어도 비식별화 과정에서 사라지기 때문에 별도의 개인정보 활용 동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비식별화 작업을 거치면 영상이나 사진 속 정보를 활용활 수 있다. [사진 딥핑소스]

비식별화 작업을 거치면 영상이나 사진 속 정보를 활용활 수 있다. [사진 딥핑소스]

지난 20일 서울 강남구 딥핑소스 사무실에서 만난 창업자 김태훈 대표는 “‘데이터를 돈 주고 사는 거냐?’고 묻던 국내 기업 인식이 많이 바뀌었다”며 “데이터3법이 본격 시행되면 가명정보를 활용한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비식별화 기술은 영상, 이미지, 텍스트, 음성 등 숫자 배열로 표현이 가능한 모든 데이터에 적용할 수 있다. 이미지와 영상은 지직거리는 텔레비전 화면처럼 바뀌는데, 이때 개인정보는 사라지고 핵심정보만 남는다. 텍스트의 경우 전혀 알 수 없는 ‘외계어’로 변환된다. 예를 들어 ‘안녕하세요’가 ‘다호챠다니’ 같이 바뀌지만, AI는 이것을 ‘인사하는구나’로 인식할 수 있다.
 
기술의 활용도는 다양하다. 마트, 백화점 등의 보안 카메라에 녹화된 고객 동선을 수집해 마케팅에 활용하고자 할 때, 기존에는 고객에게 일일이 찾아가 정보 활용 동의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비식별화 기술을 적용하면 번거로운 과정 없이 바로 분석이 가능하다.  
 
 비식별화 작업을 거치면 영상이나 사진 속 개인 정보를 활용활 수 있다. [사진 딥핑소스]

비식별화 작업을 거치면 영상이나 사진 속 개인 정보를 활용활 수 있다. [사진 딥핑소스]

김 대표는 “보안 카메라, 비디오 분석 등이 주력 분야”라며 “예를 들어 은행 현금 지급기에 생체(얼굴) 인증 적용 시, 원본 사진을 서버에 저장하면 안 되지만 우리 기술을 쓰면 카메라에 아예 비식별화 기술을 탑재해 바로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카이스트 출신인 김태훈 대표는 삼성전자(책임연구원), 올라웍스(최고기술책임자·CTO) 등에서 컴퓨터 비전 기술을 개발했다. 이미지 인식 기술을 보유한 올라웍스는 2012년 인텔에 350억원에 인수됐다. 인텔에 남았던 김 대표는 회사 개발 인력의 1% 이내에 해당하는 ‘핵심 엔지니어’로 영상 인식 기술과 AI 용 프로세스 개발 등을 맡았다.  
 
김태훈 딥핑소스 대표. 김원 기자

김태훈 딥핑소스 대표. 김원 기자

김 대표는 2018년 5월 유럽연합(EU)이 ‘개인정보 보호 일반규칙(GDPR)’을 시행할 무렵 인텔을 나와 새 회사를 창업했다. GDPR은 EU 소속 시민권자의 개인정보를 다루는 기업에 정보 보호 의무를 강화하고, 이를 어길 시 최소 1000만 유로(약 129억원)의 과징금을 내도록 하는 법안이다. 김 대표는 “인텔에서 AI 딥러닝에 활용할 이미지를 중국 등에서 사 왔는데  EU에서 GDPR을 시행하면서 개인정보 활용 동의 절차 등이 까다로워졌다”며 “ 장당 100원 수준이던 이미지의 가격도 10배 넘게 뛰는 걸 보고 비식별화 기술의 사업적 가능성을 봤다”고 말했다. 이어 “나라별 지역별로 요구하는 개인정보 수준이 제각각 다른 탓에 기업은 최고 수준의 안전장치를 원한다”며 “개인정보를 지우면서도 활용 가치를 높인 기술에 관심을 보이는 기업들이 많다”고 말했다.  
 
초기 스타트업이지만 글로벌 IT 기업들과 협업을 이어나가고 있다. 지난 1월에는 일본 통신사 KDDI 등으로부터 55억원 규모 투자를 받았다. 인텔, 삼성생명, LG전자, 서울아산병원 등이 현시점 주요 고객이다. 보쉬(독일), 엑시스(스웨덴) 등과는 개인정보 비식별화 기술이 탑재된 보안 카메라 개발을 논의 중이다. 김 대표는 “최근 데이터 거래 플랫폼(나초스)을 열어 비식별화된 데이터를 거래하기 시작했다”며 “지난해까지 원천 기술 개발에 주력했다면 올해부터는 제품화에 전력을 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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