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인생 지치고 힘들 때 필요한 ‘내편’이라는 지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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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사진 김명희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32)

 
반가운 봄비가 내린다. 흙을 가진 모든 이들이 분주하다. 밭에 갖가지 모종 심고 북을 돋우는 모습들. 비닐 멀칭을 하느라 들판마다 사람의 뒷모습이 꽃처럼 번진다. 나도 해마다 옥상 작은 텃밭에 소꿉장난하듯 이것저것을 심는다. 텃밭 농사 두 해가 지나면서 제법 실하게 성장한 머위나 두릅나무는 보기만 해도 대견하다. 며칠 전에 오이, 토마토, 고추, 가지, 고구마, 상추 모종을 심었다. 오늘은 옥수수 모종 열 포기를 더 심었다.
 
인천항 바닷바람이 통과하는 건물 옥상이다 보니 단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다. 연약한 모종들이 뿌리내리려면 어딘가 기댈 곳이 절실하다. 바람에 시달리는 동안 작은 모종들의 뿌리가 들뜨지 않게 관리하는 것은 중요하다. 죽은 나뭇가지들을 지지대로 세워주고 모종과 나무를 정갈하게 묶어주다 문득 든 생각 하나.
 
바람 조용할 날 없기로는 인생도 빼놓을 수 없다. 살다 보면 어디 평안한 날만 있는가. 때론 실수로, 때로는 내 뜻과 무관하게 외부로부터 들이닥치는 강풍을 맞는다. 바깥의 폭풍에 휘말리고 상처가 생기고 꺾일 때가 있다. 인생 여로에서 뜻밖의 강풍을 맞았을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 옥수수 모종들이 기댈 작은 나뭇가지처럼, 우리에게도 지지대가 필요한 날들이 있다. 지친 어깨를 잠시만 기대어도 모진 강풍을 이겨낼 힘이 생긴다.
 
사람인(人) 자의 의미가 ‘인간은 서로 기대어 의지하며 살아가는 존재’라고 하지 않던가. 사계절을 견딜 모종들. 태풍도 천둥도 거뜬히 넘어야 한다. 식물들에 지지대가 필요하듯, 인간에게도 지지대가 필요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따뜻한 지지대가 되어야 한다. 이 버팀목은 평화로울 때는 존재의 소중함을 잘 모른다. 송곳 같은 바람이 나를 찌르고 비틀고 종래는 천둥번개가 꺾어버리려 달려들 때 누구도 홀로 버티기 힘들다. 그럴 때 가까이 있는 내 편이 말없이 어깨 하나를 내어주는 힘은 우주를 들어 올리는 힘보다 세다. 인생을 살면서 강풍을 만나고 상처받고 휘청거릴 때마다 묵묵히 믿어주고 응원해주는 ‘내편’이 있다는 것은 든든한 무형의 집 한 채를 가진 것과 같지 않을까.
 
식물들에게 지지대가 필요하듯, 인간에게도 지지대가 필요하다. 누군가 가장 힘겨울 때 그를 믿어주고 이해하고 그의 편이 되어주는 일은 때로, 소중한 한 생명도 살린다. [사진 Pixabay]

식물들에게 지지대가 필요하듯, 인간에게도 지지대가 필요하다. 누군가 가장 힘겨울 때 그를 믿어주고 이해하고 그의 편이 되어주는 일은 때로, 소중한 한 생명도 살린다. [사진 Pixabay]

 
요즘 여러모로 핍진한 세상이다. 인터넷 세상에 길들여진 우리들은 차분히 생각할 여유를 갖기란 쉽지 않다. 갈수록 많은 것을 놓치며 사는 것은 아닌가 우려스럽다. 물론 다 그렇진 않지만, 온정은 무뎌지고 인심은 날로 사납고 이기적이며 차갑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 안에 있는 따뜻한 지지대를 떠올려보자. 이것은 돈이 드는 일도 아니다. 우리 주머니에 두 가지 물건이 들어있다고 상상해보자. 하나는 모난 돌멩이고 하나는 막대기다.
 
무엇을 꺼내 든 우리 자유다. 어떤 일이 있을 때 익명에 기대어 무작정 돌부터 던져 상대를 흔들고 흠집 내고 후벼 파기보다는, 조용히 막대 하나 꺼내어 지친 그의 발밑에 세워주는 것은 어떨까? 누군가를 믿어주는 일은 지지대를 세워주는 것과 같다. 자살 충동은, 이 세상에 내 편이 없다는 절망감을 비집고 들어오는 치명적인 바이러스다. 누군가 가장 힘겨울 때 그를 믿어주고 이해하고 그의 편이 되어주는 일은 때로, 소중한 한 생명도 살린다.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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