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모리코네는 숨졌다” 영화음악 거장이 남긴 특별한 부고

 
2020년 7월 6일(현지시간) 평생 살아온 이탈리아 로마에서 숨을 거둔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 [EPA=연합뉴스]

2020년 7월 6일(현지시간) 평생 살아온 이탈리아 로마에서 숨을 거둔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 [EPA=연합뉴스]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숨졌다. 가까운 친구들과 다소 소원했던 이들 모두에게, 이런 식으로 (부고를) 전한다. 사랑을 담아 작별을 고한다.” 
 
지난 6일(현지시간) 타계한 20세기 영화음악의 거장 엔니오 모리코네(1928~2020)가 자신의 부고(obituary)를 스스로 작성했다가 사망 발표와 함께 공개해 화제다. 92년 평생을 천상의 선율에 매진하며 ‘영화 이상의 추억’을 선사했던 예술가다운 행보다.
 
이탈리아 현지 언론에 따르면 모리코네의 ‘셀프 부고’는 그의 가족 변호사가 셋째 아들 지오바니 모리코네로부터 e메일로 받아 이날 언론에 공개됐다. 1쪽짜리 공개편지에서 모리코네는 무엇보다 그의 가족과 지인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름을 하나하나 다 언급할 수는 없다”면서도 “형제와 다름없었고 내 인생 마지막까지 곁을 지켜준 페푸치오(Peppuccio)와 로베르타(Roberta)는 꼭 언급하고 싶다”고 썼다. 이 가운데 페푸치오는 그 이름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시네마천국’(1988)의 쥬세페 토르나토레 감독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모리코네는 토르나토레와 의기투합한 ‘시네마천국’이 대성공을 거둔 뒤 ‘에브리바디스 파인’(1990) ‘말레나’(2000) 등 여러 작품을 함께 하며 각별하게 지냈다.  
 
6일(현지시간) 엔니오 모리코네가 타계한 병원 바깥에서 그가 직접 작성했던 부고 편지를 가족 변호사가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6일(현지시간) 엔니오 모리코네가 타계한 병원 바깥에서 그가 직접 작성했던 부고 편지를 가족 변호사가 언론에 공개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1956년 결혼해 64년 간 해로한 아내 마리아 트라비아와의 사이에서 둔 3남 1녀 이름도 열거했다. 마르코, 알렉산드라, 안드레아, 지오바니 순서다. 이들과 함께 며느리와 손주들도 거명했다.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아내를 불렀다. “아내이자 일생의 파트너였던 마리아에게, 지금까지 우리 부부를 하나로 묶어주었던 각별했던 사랑을 되새기고 싶다. 이제 이를 포기해야 해서 미안하다. 당신에 대한 작별인사가 가장 가슴 아프다”고 하면서다.
 
모리코네는 이 같은 작별인사를 하는 이유를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다른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모리코네의 셀프 부고가 언제 쓰여졌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모리코네는 열흘전쯤 낙상사고로 대퇴부 골절상을 입은 뒤 병원에서 치료 받다가 6일 영면에 들었다.
2009년 엔니오 모리코네와 아내 마리아가 외출하는 모습. 1956년 결혼한 이들은 슬하에 3남1녀를 두고 평생을 해로했다. [EPA=연합뉴스]

2009년 엔니오 모리코네와 아내 마리아가 외출하는 모습. 1956년 결혼한 이들은 슬하에 3남1녀를 두고 평생을 해로했다. [EPA=연합뉴스]

 
다음은 이탈리아어 원문을 영국 대중지 데일리 미러가 옮긴 영문 번역문이다. 독자 이해를 위해 한국어로도 옮겼다.
 I, Ennio Morricone, am dead. 나, 엔니오 모리코네는 숨졌다.  
 
I am announcing it this way to all my close friends and even to those who have been a bit distant, I say goodbye with much love. It is impossible to name you all. 가까운 친구들과 다소 소원했던 이들 모두에게, 이런 식으로 (부고를) 전한다. 사랑을 담아 작별을 고한다. 모두의 이름을 거론하는 건 불가능하다.
 
But I want to particularly remember Peppuccio and Roberta, you have been like siblings to me and very present in the last years of our life. 하지만 형제와 다름없었고 내 인생 마지막까지 곁을 지켜준 페푸치오(Peppuccio)와 로베르타(Roberta)는 꼭 언급하고 싶다.
 
There is only one reason that pushes me to say goodbye in this way and have a private funeral: I don't want to disturb. 이 같은 작별인사를 하는 이유는 장례식을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다.
 
I would like to say goodbye with much affection to Ines, Laura, Sara, Enzo and Norbert, for sharing most of my life with me and the family. 나와 내 가족과 대부분 생을 함께 해준 Ines, Laura, Sara, Enzo 그리고 Norbert에게 지극한 애정의 작별을 고한다.
 
I want to remember my sisters with love Adriana, Maria and Franca and their loved ones and I want to let them know how much I loved them. 내 누이 Adriana, Maria, Franca와 그들의 사랑하는 사람들도 기억하고 싶다.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아주길 바란다.
 
A profound farewell to my children, Marco, Alessandra, Andrea and Giovanni, my daughter in law Monica, and my grandchildren Francesca, Valentina, Francesco and Luca. 나의 아이들 Marco, Alessandra, Andrea, Giovanni와 며느리 Monica, 그리고 내 손주들 Francesca, Valentina, Francesco, Luca에게도 절절한 작별을 전한다.  
 
And the final goodbye to my wife Maria, my life partner, I would like to renew the extraordinary love that held us together and I am sorry to abandon our love. The most painful farewell is to you. 마지막 인사는 아내이자 일생의 파트너였던 마리아에게. 지금까지 우리 부부를 하나로 묶어주었던 각별했던 사랑을 되새기고 싶다. 이제 이를 포기해야 해서 미안하다. 당신에 대한 작별인사가 가장 가슴 아프다.
 
1928년 이탈리아 로마에서 트럼펫 주자의 아들로 태어난 고인은 평생 400여편의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황야의 무법자’(1964) ‘미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이상 1984) ‘시네마 천국’(1988) ‘러브 어페어’(1994) 등 선율만으로 명장면이 떠오르는 탁월한 창조력을 발휘했다. 현지 언론은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인해 그의 장례식장에 팬들의 접근이 엄격히 통제된다고 전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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