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쓰고 카메라 선 트럼프, 하루 확진자 7만명에 결국 백기

11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의 월터 리드 국립 군의료센터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스크를 쓴 채 카메라 앞에 섰다. [로이터=연합뉴스]

11일(현지시간) 미국 메릴랜드주의 월터 리드 국립 군의료센터를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스크를 쓴 채 카메라 앞에 섰다. [로이터=연합뉴스]

좀처럼 마스크 쓴 모습을 보이지 않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마스크를 착용한 채 카메라 앞에 섰다. 메릴랜드주(州) 월터 리드 국립 군의료센터를 방문한 자리에서다. 그가 공식 석상에 마스크를 쓰고 나타난 건 처음이다. 지난 1월20일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가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첫 감염 사례를 확인한 이후 약 반년 만, CDC가 마스크 착용을 권고한 지 3개월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아마 앞으로도 마스크를 쓸 것"이라면서 "오늘처럼 병원에서 수술대에서 내려온 장병과 이야기를 나눠야 하는 특별한 환경에서는 마스크를 쓰는 게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마스크 착용을 반대한 적이 없다, (적절한) 시간과 장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의 월터 리드 국립 군의료센터에 들어서면서 마스크를 쓴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1일(현지시간) 메릴랜드주의 월터 리드 국립 군의료센터에 들어서면서 마스크를 쓴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EPA=연합뉴스]

그는 이날 전용 헬기 마린원에서 내릴 때는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가 의료센터 입구 통로로 들어갈 때 마스크를 썼다. 황금색 대통령 직인이 새겨진 남색 마스크였다. 병원에서 나올 때는 다시 마스크를 벗은 상태였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에서 코로나19가 재확산하는 상황에서도 공공연히 마스크 착용에 거부감을 나타내왔다. 방역보다 경제 재개가 시급하다는 인식에서다. 마스크를 쓴 대선 경쟁자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조롱하기도 했다.
 
하지만 하루 신규 확진자 규모가 3만명을 넘어서기 시작하면서 공화당 내에서도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어 일일 확진자가 5만명을 넘어서자 트럼프 본인도 한발 물러섰다.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마스크에 대찬성"이란 입장을 밝힌 것이다. 
 

마스크 쓰기 전날 미국 하루 7만명 확진 

코로나19 봉쇄가 풀린 지난달말 미국 마이애미 해변가에 몰린 사람들의 모습. [EPA=연합뉴스]

코로나19 봉쇄가 풀린 지난달말 미국 마이애미 해변가에 몰린 사람들의 모습. [EPA=연합뉴스]

트럼프가 결국 마스크를 쓴 건 하루가 다르게 악화하는 코로나19 상황 때문이란 분석이다. 10일 미국 내 신규 확진자는 6만8000여명에 달했다. 처음 6만명 선을 넘은 데 이어 단숨에 7만 명 선까지 육박한 것이다. 전날인 9일엔 5만9886명이었다.  
 
특히 급증세를 주도하는 건 경제 재개를 서두른 남부 지역이다. 조지아·유타·몬태나·노스캐롤라이나·아이오와·오하이오 등 6개 주에서 각각 일일 확진자 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결국 조지아와 텍사스에서는 주지사와 시장이 '재봉쇄'를 언급하기에 시작했다. 그렉 애보트 텍사스 주지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상황은 더 나빠질 것"이라면서 "마스크를 쓰는 것보다 과감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방역 지침을 어길 때 내리는 처벌도 강화하고 나섰다. 1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주 북부 욜로 카운티는 지난 7일 공공 보건 지침을 어긴 사업장에 최대 1만 달러(약 1200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규정을 통과시켰다. 같은 주 내 산타모니카, 웨스트할리우드 시는 지난 2일 마스크 착용 지침을 강화하고 위반 시 수백에서 수천 달러의 벌금을 매기겠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참모들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마스크 착용을 끈질기게 애원했다고 CNN은 전했다. "마스크를 착용해 지지자들에게 모범을 보여달라"는 설득이었다. 미국 내에서는 마스크가 정치적 상징물처럼 여겨지면서 공화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마스크 착용률이 눈에 띄게 낮았다. 
  

뼈아픈 메시지 선점 실패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지난 6월 24일 오후 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을 찾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맞서 싸운 의료진과 만나 이야기 나눈 뒤 본인의 휴대전화를 꺼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지난 6월 24일 오후 대구 중구 계명대 대구동산병원을 찾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맞서 싸운 의료진과 만나 이야기 나눈 뒤 본인의 휴대전화를 꺼내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뉴스1]

비단 공화당 지지자뿐 아니라 당초 미국 등 서구에선 마스크 착용에 대한 거부감이 컸다. 아시아와는 달리 환자나 의료진이 착용하는 것이란 인식과 문화가 강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이유도 한몫했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마스크를 쓰면 유약하고 상황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노 마스크'를 고수해왔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이 심각한 감염 상황을 강조하며 "마스크를 착용해야 한다"고 나선 것도 배경이 됐다. 마스크 착용을 자신에 반대한다는 정치적 상징으로 여긴 것이다. 
 
하지만 하루 확진자가 7만명 언저리로 진입하자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앞서 지난 1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는 "(카메라 없는 곳에서) 마스크를 쓴 적이 있다"며 미리 군불을 때기도 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