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도 관노와 잠자리"…’미투’ 그녀는 홀로 떨고 있다

서울광장의 고 박원순 시장 분향소. [뉴시스]

서울광장의 고 박원순 시장 분향소. [뉴시스]

또 한 사람의 사회 최고 지도층 인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1990년대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의 무료 변론을 맡아 직장 내 성희롱이 명백한 범죄임을 밝혀낸 박원순 서울시장이다. 그는 최은순 변호사 등과 고소장에 이렇게 썼다. “호숫가에서 아이들이 장난 삼아 돌멩이로 개구리를 맞힌다. 아이들은 장난이지만 개구리는 치명적 피해를 입는다.”
 
특유의 온화한 미소와 함께 그가 보여준 행보는 많은 여성에게 큰 힘이 됐다. 2018년 3월 안희정 충남지사에 대한 수행비서 김지은씨의 ‘미투’ 폭로 땐 “영웅들의 용기 있는 행동”이라며 이들이 외롭지 않도록 연대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그런 박 시장으로부터 수년간 지속적으로 성추행당했다며 한 미약한 영웅이, 엄청난 용기를 내서, 사회적 연대를 기대하며, 그를 고소했다. 전 비서인 이 여성이 지난 8일 성폭력 범죄 특별법 제10조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추행” 혐의로 고소한 다음 날 박 시장은 몇 마디 메모만 남긴 채 저세상으로 떠났다.
 
그의 극단적인 선택이 이 고소와 연관된 것인지, 연관됐다면 억울하다는 항변인지, 자신이 해 온 말과 실제 행동이 너무 달라 도저히 얼굴을 들 수 없어서인지 알 수는 없다. 하나, 이 시점에서 돌이켜볼 일은 최근 10여 년 사이에 일어난 지도층 인사의 극단적 선택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성완종 전 의원, 노회찬 전 대표 등. 수사 중이던 ‘뇌물수수’ 사건 등은 이들이 스스로 목숨을 던지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고, 그 ‘사안’을 거론하는 것은 ‘망자에 대한 불경’이 되는 사회 분위기가 지배한다. 잊을 만하면 일어나는 이 일은 사회 전체에 극심한 트라우마를 안겨준다. 박성희 이화여대 교수는 “이젠 공적 책임의식이 결여된 공직자의 극단적 선택과 그것이 사회에 주는 악영향에 대해 냉철하게 돌이켜 볼 때”라고 말했다.

관련기사

 
더욱이 이번엔 불안에 떠는 피해 호소인이 존재한다. ‘서울특별시장(葬)’으로, 시민 분향소까지 설치된 상황에서 박 시장에 대한 유력 인사들의 애도와 공덕 칭송은 오롯이 피해 호소인에 대한 2차 가해로 이어진다. “그가 한 여성에게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모른다. 나머지 모든 여성이, 그만 한 ‘남자사람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한 진보 진영의 역사학자도 있다. 친여 성향의 네티즌들 사이엔 “이순신 장군도 관노와 잠자리에 들었다. 그렇다고 제사를 안 지내냐”는 말까지 나온다. 공인으로부터 위력에 의한 성폭력을 당했다고 호소하는 국민은 그 누구든 국가가 보호해야 할 대상인데도, 지켜주는 ‘국가’가 보이지 않는다.
 
20·30대들은 공분한다. ‘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 형태의 가해였다’는 정세랑의 소설 『시선으로부터』의 문장을 공유하며 연대의 목소리를 낸다. “여성인권, 약자, 피해자 중심 어쩌고 하던 분들이 아닌가. 누구도 피해자 인권엔 한마디도 없다.” “수년간 성추행한 사람은 성자로 애도되고, 피해자는 자신이 착하고 멀쩡한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된 것이 아닌가.” “‘님의 뜻을 기억하겠습니다’란 현수막에 기가 막힌다. 아무렇지도 않게 2차 가해를 하는 세상이다. 이 나라가 너무 싫다.”
 
불편한 사안에 얽힌 유력 인사의 극단적인 선택, 애도 분위기로 장악되는 세상, 정작 문제를 제기한 이들이 죄인이 되는, 이 불행한 사이클은 그렇지 않아도 약자가 기댈 곳 적은 우리 사회에 이런 메시지를 던진다. “내가 잘못해도 죽음을 택하면 다 덮어져.” “내가 피해자지만 결국 내가 가해자가 돼.” 우리의 딸, 여동생들이 고통과 두려움 속에 참고 지내게 할 순 없다. 그들이 용기를 내도록 해야 할 책임은 우리 사회의 몫이다. 망자(亡者)에 대한 개인적인 애도와는 다른 차원의 문제다.
 
김수정 정치에디터 kim.suje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