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폭탄, 전셋값 불 붙였다

서울 전셋값은 급등하고, 집값 상승세도 여전하다. 15일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서울 전셋값은 급등하고, 집값 상승세도 여전하다. 15일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본 송파구 일대 아파트 단지. [연합뉴스]

서울 노원구 중계동 84㎡(이하 전용면적) 아파트에 사는 성모(41)씨는 일주일 째 잠을 설치고 있다. 8년간 한 번도 전셋값을 올리지 않았던 집주인이 오는 9월 전세 재계약을 앞두고 8000만원을 올리겠다고 해서다. 3억6000만원인 전세보증금이 4억4000만원이 됐다.
 
다주택자인 70대 집주인은 8년간 보증금 얘기를 꺼낸 적이 없다. 그런데 이번에는 집주인이 “이달 재산세 고지서가 나왔는데 너무 많이 올라서 세금을 내야 한다”며 “미안하다”고 말했다. 성씨는 “8년간 전셋값 한번 올리지 않은 ‘착한 집주인’이라 고마워서 명절마다 선물도 보냈는데 부동산 대책이 원망스럽다”고 말했다.
 
이달 재산세 고지서를 받아든 집주인이 늘어난 세금 마련을 위해 전셋값을 올리는 경우가 나오고 있다. 주택 소유자를 향한 퇴로 없는 규제가 무주택 세입자까지 옥죄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이달 둘째 주 서울 아파트 전셋값은 0.13% 올라 전주(0.10%)보다 상승 폭이 커졌다. 지난해 6월 이후 55주 연속 상승세다.
  
한달새 반포자이 3억, 잠실엘스 2억 올라
 
정부 규제가 정조준한 강남권이 많이 올랐다. 송파구(0.26%)·강남구(0.24%)·서초구(0.21%)의 상승 폭이 크다. 송파구 잠실동 잠실엘스 85㎡는 지난달 9억원 선에 전세 거래가 이뤄졌지만, 현재 11억원 선으로 뛰었다. 같은 기간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84㎡형도 12억원에서 15억원까지 상승했다. 반포동 중개업소 관계자는 “선호 학군 지역이라 재계약하면서 올려달라는 데로 올려주는 상황이고 그나마 시장에 나오는 매물도 없다”고 말했다.
 
전셋값 인상 파도는 강동구(0.30%)·마포구(0.19%)·서대문구(0.14%)·노원구(0.13%)·은평구(0.13%)까지 퍼지고 있다. 마포구 아현동 마포래미안푸르지오 114㎡ 전셋값은 한 달 새 1억원 올라 12억원 선이다.
 
가팔라지는 서울 아파트 전셋값

가팔라지는 서울 아파트 전셋값

관련기사

한 달 새 전세 시장이 요동을 치는 데는 주택 규제 영향이 크다. 공시가격 인상으로 보유세(재산세·종합부동산세) 부담이 커진 데다 세율이 높아지면서 세금이 확 늘었다. 여기에 6·17대책, 7·10대책으로 거래세(취득세·양도소득세)까지 인상되면서 주택 소유자의 퇴로가 막혔다. 위례신도시의 위례박사공인 김찬경 공인중개사는 “고정 수입이 없는 은퇴한 노년층에서 보유세를 내기 위해 전세보증금 인상으로 눈을 돌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임대차 3법(전월세신고제·계약갱신청구권제·전월세상한제) 시행 소식도 전셋값 상승을 자극했다. 임대차 3법이 이달 말 국회에서 통과되면 다음 달 즉시 시행된다. 전세 계약을 최소 4년 이상 유지하고 임대료를 직전 대비 5% 이상 못 올린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이 때문에 집주인들이 미리 임대료를 올리려는 것이다. 김지은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집주인 입장에선 팔아도, 보유해도 세금 폭탄이라면 집값 상승을 기대하며 그냥 버텨보겠다는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입자 위한다는 임대차3법 ‘역효과’
 
세입자가 전셋값 인상 폭탄을 피하기 위해 집을 사려 해도 주택담보대출을 받기가 쉽지 않다. 전세자금대출도 한도가 있고 자녀가 있는 경우 전학 등으로 인해 지역 이동이 쉽지 않다. 여기에 집값은 집값대로 오르고 있다. 이번 주 서울 아파트값은 0.09% 올랐다. 정부의 부동산 대책을 비웃듯 6·17대책 이후 6주 연속 오름세다. 송파구(0.13%)·강남구(0.11%)·서초구(0.09%)를 비롯해 마포구(0.13%)·강동구(0.11%)·노원구(0.11%)·성북구(0.09%) 등이 많이 올랐다. 오른 취득세와 보유세도 부담이다.
 
결국 전셋값을 올려주지도, 집을 사지도 못하는 세입자는 오른 전셋값만큼 월세를 내는 반전세나 월세로 옮겨가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서울 전·월세 전환율은 4%다. 예컨대 전셋값 1억원을 올려주는 대신 반전세로 바꾸면 월 34만원 정도 월세로 내면 된다. 하지만 실제로는 40만원(5%)은 줘야 한다. 올해 도시근로자 1인 월평균 소득(264만원)의 15%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대출 규제로 퇴로 막힌 세입자, 반전세·월세로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사는 민모(36)씨는 “결국 자녀 교육비를 줄였고 저축은 꿈도 꿀 수 없게 됐다”고 토로했다.
 
그러나 여당은 앞다퉈 임대차 보호법을 강화하고 나섰다. 14일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의원이 주택표준임대료를 공시하고 임대료 상한제를 도입하는 내용의 주거기본법 및 주택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시도지사가 매년 표준주택을 선정, 표준임대료를 산정해 이를 임대차계약 시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집주인이 정당한 사유 없이 임차인의 계약갱신요청을 거절할 수 없고 계약 기간은 최장 6년으로 확대하는 내용도 담겼다. 15일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도 주택 임대차보호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발의했다. 이번 임시국회 통과를 앞둔 방안보다 강화된 내용이다. 임대차계약 기간을 4년이 아니라 6년으로 늘이고 증액 상한률도 5%에서 ‘기준금리+3%포인트’ 이내로 낮추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계약갱신뿐 아니라 신규계약에도 적용하는 내용도 담겼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 경제전략연구부장은 “집값 변동성의 원인은 전세 시장인 만큼 집값 안정을 위해 세입자나 낮은 임대료로 임대하는 집주인에게 세액 공제 혜택을 주는 식의 근본적인 구조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보유세 강화가 다주택자를 억제하기 위한 방향이라면 거래세에 해당하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는 개선해서 시장에 매물이 나오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최현주 기자 chj80@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