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후월드] 文에 ‘외교관 성추행’ 꺼낸 女총리, 국민엔 “코로나 정복” 선물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AP=연합뉴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 [AP=연합뉴스]

 
지난 28일 한국과 뉴질랜드 정상 간 통화에선 매우 이례적인 일이 발생했습니다.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한국 외교관 성추행 의혹’을 직접 거론한 것인데요. 뉴질랜드 언론은 한국 외교관이 자국의 직원에게 의사에 반한 신체 접촉을 했다는 의혹을 2017년 말부터 꾸준히 제기하고 있습니다.  
 
정상 간 통화에서 자국민 한 사람의 피해 사실을 언급한 국가수반. 파장만큼이나 아던 총리에 대한 관심이 높습니다. 한국 네티즌들은 "국민 한 사람의 아픔도 지나치지 않고 해결하려고 노력하네", "뉴질랜드 총리 멋있다" “정치인과 관료들이 본받아야 할 자세”란 반응을 보였지요. 
 
문재인 대통령(왼쪽)은 지난 28일 청와대에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오른쪽)와 전화 통화를 했다. [뉴스1·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왼쪽)은 지난 28일 청와대에서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오른쪽)와 전화 통화를 했다. [뉴스1·연합뉴스]

 
아던 총리는 사실 알고 보면 뉴질랜드를 '코로나 청정국'으로 만든 영웅으로 꼽힙니다. 그의 신속하고도 단호한, 그러면서도 따뜻한 리더십이 뉴질랜드의 코로나 방역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는 평이 나옵니다.  
 
그는 한국 나이로 올해 41세. 2017년 38세에 노동당 대표에 선출돼 단숨에 총리직에 올랐지요. 당시 세계 최연소였습니다. 젊은 나이에 '벼락 총리'가 돼 지켜보는 눈이 많았는데요. 
 
하지만 진정한 리더는 위기 속에서 존재감을 나타내는 법. 뉴욕타임스(NYT)는 "코로나19 위기 대응의 '마스터 클래스(master class·대가)'는 저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라고 했습니다.  
 
저신다 아던 총리(왼쪽)가 2018년 6월 출산한 딸, 약혼자 클라크 게이포드와 포즈를 취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저신다 아던 총리(왼쪽)가 2018년 6월 출산한 딸, 약혼자 클라크 게이포드와 포즈를 취했다. [로이터=연합뉴스]

 
그는 양성평등을 몸소 보여주는 여성 정치인이기도 합니다. 그에겐 세 살 난 딸이 있는데요. 뉴질랜드 총리로는 처음으로 재임 중(2018년 6월) 출산한 후 6주 만에 국정에 복귀해 화제를 낳았습니다. 아이의 아빠인 방송인 출신의 클라크 게이포드와는 지난해 약혼했지요. 그는 "일과 육아를 성공적으로 병행할 것"이라고 말해 워킹맘들의 지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의 인기는 지지율이 증명합니다. 뉴질랜드 방송인 뉴스허브가 지난 4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아던 총리의 지지율은 60%에 육박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후 3개월 만에 20.8%포인트나 오른 것이지요. 집권 2년 반 만에 '스타 총리'가 된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서도 자국민 보호 최우선

뉴질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봉쇄 조치'를 시행한 나라로 꼽힙니다. 아던 총리는 코로나19가 유럽에서 확산하자 재빨리 국경의 문을 닫았지요.
 
사태 초기부터 국민을 향해선 "모든 뉴질랜드인이 집에 머물고, 교류를 중단하길 원한다"는 명확하고, 단호한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코로나 사태에서도 자국민 보호를 최우선에 둔 것이지요.  
 
아던 총리가 지난 6월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선언하며 활짝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던 총리가 지난 6월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선언하며 활짝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효과는 컸습니다. 확진자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현저히 적자 지난 4월 뉴질랜드는 세계 최초로 코로나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선언합니다. 당시 아던 총리는 "우리가 해냈다"며 그 공을 국민에게 돌렸습니다. 지난 6월 종식이 가까워졌다고 발표하면서는 "뉴질랜드에서 감염자가 한 명도 없다는 보고를 받고 딸 앞에서 잠시 춤을 추기도 했다"며 웃었지요.  
 
대학에서 언론정보를 전공해서인지 그는 국민과 소통하는 데 능합니다. 봉쇄 기간엔 페이스북 생방송을 통해 수시로 국민에게 메시지를 전했지요. 딸을 재워두고 집에서 입는 편안한 옷차림을 한 그는 대화하듯이 정부의 대책을 설명했습니다.
 
"아던 총리의 브리핑엔 거짓 정보가 없고, 누구를 탓하거나 비난하는 내용도 없다"는 찬사가 나왔습니다.    
 
아던 총리가 페이스북 생방송을 통해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한 대국민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는 집에서 입는 편안한 옷차림으로 대화하듯이 설명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아던 총리가 페이스북 생방송을 통해 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위한 대국민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그는 집에서 입는 편안한 옷차림으로 대화하듯이 설명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인구 약 482만 명인 뉴질랜드는 지금까지 누적 확진자 1560명, 누적 사망자 22명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는 필요할 땐 단호했습니다. 데이비드 클라크 뉴질랜드 보건부 장관이 지난 4월 봉쇄령을 어기고 가족과 나들이를 간 사실이 드러나자 그를 내각 각료 서열 중 꼴찌로 강등시켰지요.  
 
아던 총리는 "평상시라면 그를 해임했겠지만, 코로나19와 싸우는 게 최우선"이라며 그를 유임시켰는데요. 이달 초 클라크 장관은 "저의 장관직 수행은 정부의 전염병 조치에 대한 국민 반응에 악영향을 끼친다"면서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습니다.  
 

월급 자진 삭감, 출장 동참 약혼자 경비는 사비로 

아던 총리는 '제왕적 리더십'을 가진 일부 정치인들과 달리 소탈한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대표적 사례가 봉쇄령이 완화된 지난 5월 약혼자 게이포드와 함께 브런치를 먹으러 간 카페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총리 커플은 일반 시민들과 똑같이 자리가 나길 기다렸고, 카페는 1m 거리 두기 지침을 준수한 자리가 나지 않자 총리 커플을 돌려보냈습니다. 총리실 대변인은 "총리도 보통 사람들처럼 기다리겠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저신다 아던 총리(왼쪽)와 그의 약혼자 클라크 게이포드. [AP=연합뉴스]

저신다 아던 총리(왼쪽)와 그의 약혼자 클라크 게이포드. [AP=연합뉴스]

 
지난해 아던 총리와 약혼한 게이포드 역시 겸손한 자세로 국민적 호감을 얻고 있습니다.    
 
아던 총리가 2018년 9월 태어난 지 3개월 된 딸과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 참석했을 때입니다. 게이포드는 딸을 안은 채 아던 총리가 연설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요. 당시 그는 “아이를 돌보는 사적인 일”로 따라 왔기 때문에 여행 경비는 개인적으로 부담했다고 밝혔습니다.
 
지역방송 낚시 프로그램을 진행하던 인기 방송인이었던 게이포드가 딸의 육아를 거의 도맡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사실혼 관계이지만,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습니다.
 
아던 총리의 약혼자 게이포드가 지난해 유엔 총회에서 아던 총리가 연설을 하는 가운데 딸을 돌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던 총리의 약혼자 게이포드가 지난해 유엔 총회에서 아던 총리가 연설을 하는 가운데 딸을 돌보고 있다. [AFP=연합뉴스]

 
방역에 성공한 뉴질랜드도 경제적 손실은 피하진 못했습니다. 실업률이 봉쇄령 직후 8.5%까지 치솟았는데요. 아던 총리는 "경제가 어렵다"고 말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난 4월 앞으로 6개월 동안 총리 자신과 장관들의 월급을 20% 삭감한다고 밝혔습니다. "정치인들이 솔선수범해야 한다"면서요. 뉴질랜드 총리의 한해 연봉은 약 3억4700만원으로, 다른 국가 정상들에 비해 높은 편이지만, 뉴질랜드 타 공공기관장들에 비해선 적다고 합니다.
 

위기 때마다 빛난 공감 리더십 

그는 나이는 젊지만, 정치 경력은 20년이 넘습니다. 17세에 노동당에 입당해 2008년 28세에 청년층을 대표하는 비례대표로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이후 4선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2017년 8월 당권에 도전해 노동당 대표로 선출되는 파란을 일으켰습니다. 진보 성향의 당 여성 대표란 점에서 ‘뉴질랜드의 힐러리’로 불렸지요.  
 
아던 총리가 지난6월 한 어린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던 총리가 지난6월 한 어린이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다. [AP=연합뉴스]

 
당시 집권당은 국민당이었는데요, 아던 총리는 9년 만에 정권 교체를 이뤄냈습니다. 그해 총선에서 노동당은 승리하지 못해 원내 2당에 머물렀지만 한 달 만에 군소 정당을 모아 연정을 이뤄냈습니다. 이로써 그는 당 대표가 된 지 2개월 만인 2017년 10월 일약 총리직에 올랐습니다. 
 
취임 초기 그는 젊은 층과 여성, 진보 진영에서 '저신다마니아(Jacindamania)' 열풍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모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국내에선 “이미지에 치중한다”, “화려한 겉치장에 가려진 본질이 없다”는 비판도 받았지요. 그가 취임한 이듬해 뉴질랜드의 경제신뢰지수는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정부가 추진한 저소득층 주택 사업도 지지부진하는 등 경제 분야에서 고전했습니다.  
 
아던 총리가 히잡을 쓴채 지난해 3월 이슬람 사원에서 발생한 테러에 희생당한 피해자의 유가족을 끌어 안고 있다. [AP=연합뉴스]

아던 총리가 히잡을 쓴채 지난해 3월 이슬람 사원에서 발생한 테러에 희생당한 피해자의 유가족을 끌어 안고 있다. [AP=연합뉴스]

 
하지만 그는 위기에 강한 지도자였습니다. 지난해 3월 뉴질랜드 이슬람 사원에서 테러가 발생해 50명이 사망하자 그는 신속하고 강력하게 대처해 호평을 받았습니다. 검은색 상복에 검은 히잡을 쓰고 유족들을 안으며 눈물을 흘리는 '공감 리더십'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사건 며칠 후 그는 의회 연설에서 이런 명언을 남겼습니다. "나는 테러범의 이름을 결코 부르지 않겠다. 악명만 높아지기 때문이다. 범인이 아닌 희생자들의 이름을 부르며 기억하자." 리더란 어떤 의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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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후후월드]는 세계적 이슈가 되는 사건에서 주목해야 할 인물을 파헤쳐 보는 중앙일보 국제외교안보팀의 온라인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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