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살리고 흙 속 갇힌 아빠…"살려주세요" 맨발 모녀의 절규

밤새 많은 비가 내린 2일 오후 경기도 안성 일죽면의 한 양계장이 산사태로 무너져 있다. 연합뉴스

밤새 많은 비가 내린 2일 오후 경기도 안성 일죽면의 한 양계장이 산사태로 무너져 있다. 연합뉴스

“엄마랑 딸이랑 맨발로 ‘살려달라’ 외치면서 온 동네를 뒤집고 다녔어요. 아저씨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2일 많은 비가 쏟아져 산사태로 주민 1명이 매몰돼 숨진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화봉리 마을 주민들은 피해 현장 근처에서 삼삼오오 모여 이날 오전 긴박했던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시간당 100㎜ '물 폭탄' 

2일 산사태로 무너진 경기도 안성 일죽면의 양계장의 집. 채혜선 기자

2일 산사태로 무너진 경기도 안성 일죽면의 양계장의 집. 채혜선 기자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7시 10분 화봉리의 한 양계장에서 산사태로 토사가 밀려 들어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양계장 바로 아랫집에 사는 60대 부부는 “태어나서 이렇게 많은 비가 쏟아진 건 처음 봤다”며 “7시쯤 양계장 집 딸과 아내가 문을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외쳤다. 모녀는 폭우 속에서 동네 곳곳을 돌아다니며 도움을 요청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70대 주민 A씨는 “아침에 모녀가 맨발로 찾아와서 같이 구조를 도우러 갔다. 비가 너무 많이 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며 “사망자는 폭우로 집에 갇힌 가족을 구하고 집을 지키려다 변을 당했다. 모녀는 창문으로 탈출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또 다른 주민은 “착실하게 살던 사람이다. 먹고살 만해지니까 이런 사고를 당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소방당국은 2시간에 걸쳐 양계장 건물과 집 등을 수색해 오전 9시 18분 토사에 매몰돼 숨진 B씨(58)의 시신을 수습했다. B씨는 산사태 직후 집 밖으로 탈출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집 안에 함께 있던 B씨의 아내와 딸 등 다른 가족 3명은 탈출했다.
 
이날 안성에서는 매몰된 주민 1명이 극적으로 구조되는 일도 있었다. 죽산면 장원리에 사는 C씨(73·여)다. C씨는 신고 약 3시간 만인 10시 50분쯤 구조됐다.
 

범람 우려에 주민 대피 

밤새 내린 집중호우로 둑이 무너진 경기도 이천시 산양저수지 부근 마을에서 2일 오후 중장비를 이용한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밤새 내린 집중호우로 둑이 무너진 경기도 이천시 산양저수지 부근 마을에서 2일 오후 중장비를 이용한 복구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날 경기 남부 지역에 쏟아진 폭우로 저수지 일부 둑이 무너지고 범람 우려가 있는 하천 근처에 사는 주민들이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는 등 곳곳에서 피해가 잇따랐다. 
 
경기도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이날 자정부터 오후 2시까지 집계된 누적 강수량은 안성 286.5㎜, 여주 264㎜, 이천 231㎜, 용인 204.5㎜ 등이다. 
 
오후 2시 기준 인명피해는 사망 1명, 부상 2명이다. B씨와 C씨 외에도 용인시 원삼면에서 주택 응급복구 중 급류에 휩쓸려 부상한 주민이 나왔다.
 
주민 대피 인원은 64명(여주 27명·이천 37명)이다. 경기 여주시는 이날 오전 8시 50분 점동면 원부리 청미천을 가로지르는 원부교 지점에 내려진 홍수주의보가 홍수경보로 한단계 격상하자 버스 1대를 동원, 원부리 마을주민 200여 명을 점동초·중학교로 대피시켰다. 용인시도 백암면 백암리를 지나는 청미천이 범람할 것에 대비해 마을 주민들을 백암면사무소와 백암중 다목적체육관으로 대피하게 했다. 이천시도 이날 오전 7시 30분 율면산양저수지 둑 일부가 무너졌다는 신고를 받고 인근에 사는 주민들을 모두 대피시켰다. 
 
주택 침수 신고는 안성 21곳, 이천 20곳, 광주 2곳, 용인 10곳, 여주 1곳 등 모두 54건이 접수됐다. 안성시 관계자는 "비 피해 신고가 이어지고 있어 실제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안성=채혜선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