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흥규의 한반도평화워치] 한반도에 갇힌 외교·안보에서 세계 조망하는 전략으로

미·중 전략 경쟁과 한국의 길 

그래픽=최종윤

그래픽=최종윤

미국 중심의 천하질서가 크게 요동치더니 이제 본격적인 미·중 신냉전 시기가 도래하고 있다. 지난달 23일 미국 국무장관 폼페이오의 닉슨재단 연설과 지난 5일 중국 외교부장 왕이의 신화사 인터뷰를 종합하면, 미·중은 물러서지 않고 상호 대립과 대결도 불사하겠다는 명백한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미·중 간 전략 경쟁은 이제 체제 경쟁이라는 극한 대치로 전환하고 있다. 언제든 소규모 군사적 충돌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미·중은 1979년 수교 이래 최악의 관계에 직면해 있다. 강대국 간 소규모 군사 충돌은 상호 의지와는 관계없이 언제든 대규모 전쟁으로 치달을 수 있다.
 
중국은 그간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전방위 제재와 압력에 대해 대체로 신중한 입장을 취해 왔다. 무역 압력에 대해서는 수세적 대응 방식을 취해 왔고, 정치·외교 분야에서는 미국과의 전면 대결은 원하지 않고 위기관리를 추구한다는 메시지를 일관되게 보냈다. 하지만 중국은 이제 미국과의 장기적 전략 경쟁을 당연시하면서, 자신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듯하다. 왕이 부장의 최근 인터뷰를 보면 세계적으로 그간 미국이 수행해오던 역할을 중국이 수행할 수 있고, 중국에 손상을 입히는 어떤 대상도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는 명백한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국수주의적 열정 지닌 미·중 지도자
 
중국은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홍콩 보안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미국은 지난달 21일 휴스턴 주재 중국 총영사관에 폐쇄 조처를 내렸다. 중국은 쓰촨성 청두 주재 미국 총영사관 폐쇄로 맞불을 놓았다.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닉슨도서관 앞 연설에서 “시진핑은 파산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의 진짜 신봉자”라며 “(중국은) 세계 패권 장악에 나선 새로운 전체주의 독재 국가”라고 단언했다. 중국을 중국 공산당과 분리하고, 중국 공산당 정권 교체에 미국이 나서겠다는 의지마저 드러냈다. 그간 상호 정치체제에 대한 공격과 전복을 논하는 것은 미·중 관계의 금기였다. 미국은 이제 미·중 관계에 어떤 마지노선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포했다.
 
신냉전 시기의 도래라는 미·중 갈등 전환기에 한국의 외교·안보 환경은 더욱 급박해졌다. 최근 국내외 일각에서 중국이 트럼프를 선호한다는 견해가 널리 회자됐다. 이는 트럼프가 중국이 오히려 대응하기 수월한 정치인이란 의미도 존재하지만, ‘경제 민족주의자’로서 경제적 이익만 확보된다면 언제든 미·중 관계를 완화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도 담겨 있다. 현재의 미·중 관계 악화도 대선용이며, 대선 국면이 지나면 미·중 관계가 개선될 수도 있다는 낙관론도 전제된다. 이제 이러한 희망은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미·중은 모두 국수주의적 열정을 지닌 지도자들이 ‘자신의 길’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신냉전의 길로 들어서고 있다. 오는 11월 3일 실시될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바이든의 우세를 점치고 있지만, 아직은 명확하지 않다. 문제는 두 후보 모두 중국과의 대결을 심화시킬 것이란 점이다.
 
트럼프 대외정책의 핵심은 명백히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 인도·태평양전략의 큰 틀 안에서 경제는 시장경제와 신뢰를 공유한 국가들끼리만 태평양 번영네트워크(Pacific Prosperity Network, PPN)로 연대하고, 외교·안보는 태평양 억지구상(Pacific Deterrence Initiative, PDI)에 따라 중국에 대한 군사적 압박 조치를 가속할 것이다. 그  내역에는 동아시아·서태평양 지역에 사드와 같은 대중 미사일방어체계(MD)의 강화와 중거리 핵탄두 미사일 배치와 같은 초유의 공세적 조치가 수반된다. 조만간 실행될 이 조치들은 이 지역에서 1962년 쿠바 미사일 사태를 연상시킬 수 있을 정도로 폭발적 갈등과 대결 상태를 야기할 것이다. 미국 공화당 내에서 폼페이오 같은 신냉전주의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당내 지지를 얻고 있는 것은 트럼프 2기의 대중 정책을 가늠하게 한다.
 
바이든 역시 트럼프의 대중 정책을 계승할 가능성이 높다. 미·중 신냉전 시대로의 진입은 미국 여론 전반에서 강력한 지지를 얻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 비영리기관 퓨리서치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중국에 대한 부정적 태도는 역대 최고다. 미국민의 66%가 중국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는 50%대였던 1989년 천안문 사태 직후보다 더 악화돼 있다.
  
새로운 외교·안보 태세로 전환 시급
 
바이든은 민주당의 전통적 국제주의 담지자다. 국제 정치에서 미국의 특별한 리더십을 강조하고, 자유주의 국제 질서를 수호하며, 필요하다면 국제적 개입도 지지한다. 트럼프 못지않게 바이든도 미국의 대중국 군사 우위를 확보하고자 하는 정책을 지지한다. 트럼프와의 결정적 차이는 바이든이 동맹을 중시하는 민주당 지지자들의 선호(70%)를 따를 것이란 점이다. 국제 협력을 강조한다는 면에서 어느 후보자보다 강한 지지를 표방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중국은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면 중국에 대항하는 국제 연대를 구축해 미·중 전략 경쟁이 전면적 대결로 치달을 것으로 우려한다.
 
한국 입장에서는 트럼프가 되든, 바이든이 대통령이 되든 미·중 전략 경쟁과 신냉전 시기의 도래라는 엄청난 구조적 압력에 제약을 받을 것이다. 선택의 압력과 긴박성도 더욱 가중된다. 이 도전에 응전하기 위해 한국 정부는 기존 한반도 중심의 외교·안보적 프레임을 넘어서야 한다. 미·중 전략 경쟁과 신냉전에 직면한 ‘미·중을 제외한 전 세계’를 전략 공간으로 하는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기존에 한 번도 걷지 못했던 길을 헤쳐나갈 수 있는 새로운 태세로 시급히 전환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땅은 구한 말 당면했던 국제적 위기와 내부 갈등의 싸움터로 다시 전락할 수 있다.
 
올해를 자주국방 태세 전환 원년으로 만들어야
미·중 전략 경쟁 격화와 신냉전 도래로 한국엔 엄청난 선택과 압박이 밀려오고 있다.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 주둔 같은 사안은 이 구도 아래서 상수가 아니라 변수로 취급받을 개연성이 커졌다. 한국 입장에서 안타까운 점은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미·중 전략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에서 북한 비핵화가 결코 정책 우선순위에 오르기 어렵다는 점이다. 바이든은 북·미 정상회담 자체에 부정적이지는 않겠지만, 트럼프의 톱다운 방식보다는 실무협상에 근거한 접근으로 전환하면서 협상은 더욱 난항을 거듭할 것이다. 북한에 대한 압박도 더욱 강화될 것이다.
 
주목할 점은 미국의 젊은 세대가 공화당이나 민주당의 전통적 대외정책과는 다른 성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그들은 러시아·이란·북한 같은 전통적 적대국들에 대해 별 관심을 보이지 않고 군사력 사용과 국방비 증액에 소극적이다. 미국의 군사적 우위 유지나 독자적 리더십 유지에 대한 지지도 크게 낮아지고 있다.
 
민주당의 새로운 진보적 국제주의자들은 국제적 협력을 강조하고 인권·기후변화 등에 관심이 많다. 미국의 지구촌 리더십을 다른 나라와 나누는 것도 인정하는 추세다. 이런 분위기에서 누가 대통령이 되든 60여 개국에 달하는 미국의 동맹과 우방에 대한 재평가와 재조정은 불가피해 보인다.
 
신냉전 시기에 한국은 한·미 동맹에 안보를 전적으로 의존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스스로 군사·안보적 기초 역량을 확보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하고 있다. 한국의 새로운 안보·대북 라인은 미·중 신냉전 시대에 대비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전략적 시야가 한반도를 넘고, 미·중 양자택일 프레임을 넘어서 전 세계로 향해야 한다.
 
올해는 한국의 자주국방 태세 전환 원년이 돼야 한다. 그래야 한국은 세계 차원의 전략 문제를 논의할 수 있도록 한·미 동맹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또 중국과는 존중받는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로 고도화하고, 북한과는 상호 안보 확보에 기반을 둔 공존을 추구할 수 있다.
 
김흥규 아주대 중국정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