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부동산감독기구’가 제2 금감원? “의식주를 왜 감독하나”

여권에서 이른바 '부동산 감독원'을 설립 논의가 활발하다. 부동산 시장을 감독하는 기구를 별도로 설치해 시장 교란행위를 근절하겠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이 벤치마크 대상으로 거론된다. 하지만 금융·부동산 전문가들은 "금융 감독과 부동산 감독은 같을 수 없다"며 우려를 표한다. 
문재인 대통령 10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 10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부동산 감독기구" 文 발언에 바빠진 당정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0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부동산)대책의 실효성을 위해 필요시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 설치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국토교통부 산하 별도 기관으로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를 설치하는 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국토부 내 특사경 및 검찰·경찰·국세청·금융위·금감원·감정원 파견 직원들로 구성된 14명 규모의 부동산시장불법행위대응반을 확대한다는 아이디어다.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감독원이 벤치마크 대상으로 거론된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왼쪽)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준 국세청장,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2일 정부서울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제2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임현동 기자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왼쪽)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현준 국세청장,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12일 정부서울청사 영상회의실에서 열린 제2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 앞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임현동 기자

대통령이 운 띄운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 아이디어는 곧장 당정 의제가 됐다. 12일 진성준 더불어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런 상황에서는 (부동산) 시장 교란 행위를 일삼는 투기 세력을 제대로 감시하고 단속할 수 없다"며 "우리나라 가계 자산 80%가 부동산으로 이뤄졌다는데, 그렇다면 금융감독원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부동산 감독기구가 설치돼야 했는데 그간 제대로 편성돼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같은날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김현미 국토부 장관·은성수 금융위원장을 비롯해 행안부 장관·금감원장·국세청장·경찰청장·서울시장 권한대행 등이 모인 '제2차 부동산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서도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가 논의 대상에 올랐다.
 

금감원은 어떤 기관이길래…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전경. 중앙포토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금융감독원 전경. 중앙포토

대통령의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 발언에 엮여 연일 입방아에 오르내리는 금감원에선 당혹스런 분위기가 감지된다. 금감원 역할을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의 설치 목적인 '시장 교란행위 적발'로만 규정할 수가 없어서다. 한 금감원 관계자는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의 아이디어는 민간 간 거래행위 중 시장 교란 행위를 잡아낸다는 것인데, 이는 굳이 따지자면 금감원 업무 중 일부인 자본시장 불공정 거래 조사 업무와 비슷하다"며 "금감원의 핵심인 감독 및 검사 업무는 이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영역"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4개 감독기관(은행감독원·증권감독원·보험감독원·신용관리기금)을 통합해 1999년 설립한 기관이다. 설립 목적은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을 확립하고 금융 소비자를 보호하는 데 있다. 검사 대상은 정식 인·허가를 거쳐 설립된 금융기관으로 제한된다. 주택시장 과열을 계기로 모든 시장 참여자의 부동산 거래(올해 상반기 주택 매매·전·월세 거래 기준 175만건)를 감독·검사하기 위해 설립된다는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와는 차이가 크다.
 
금감원 운영재원은 대부분 민간에서 조달한다. 금감원 예산(연 3600억원 내외)은 기업이 주식·채권을 발행할 때 내는 '발행분담금(약 18%)'과 금융회사들이 감독서비스 대가로 지불하는 '감독분담금(약 78%)', 그밖에 한국은행 출연료와 기타 수입 수수료로 운영된다. 현재 정부가 구상하는 부동산 시장 감독 기구가 금감원처럼 민간으로부터 합리적인 서비스의 대가로서 운용재원을 마련할 지도 의문이다.
 

금융 전문가 "재화를 감독하는 기구를 만든다니"

금감원을 벤치마킹한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를 만들려는 움직임에 대해 금융권 전문가들은 우려를 표한다. 부동산금융 전문가인 조만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사회 시스템의 한 축인 금융이 불완전하게 운영되면 경제주체들의 경제생활 전반에 불안이 번질 것에 대비해 존재하는 게 금감원"이라며 "부동산, 특히 주택은 의식주에 속하는 재화의 하나인데 국가가 이 재화의 거래를 감독하는 기구를 만들 필요가 과연 있겠냐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23일부터 서울 송파구 잠실동과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에서 토지거래허가제가 시행된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23일부터 서울 송파구 잠실동과 강남구 삼성·대치·청담동에서 토지거래허가제가 시행된다. 사진은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연합뉴스

조 교수는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 논의는 경제적인 문제를 훨씬 벗어나는 이슈"라며 "금융감독 방향은 정책 이념에 관계 없이 금융안정이란 가치를 목표로 꾸준하게 지속되지만, 부동산 시장 감독 방향은 정권이 바뀌고 정책 목표가 바뀔 때마다 언제든 목적 자체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별도 기관을 만드는 것이)적절하지 않다"고 밝혔다.
 
이영 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과 교수도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를 만드는 데에는 경제학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 자체가 없다"며 "투기를 막고 탈세를 막기 위해서라면 지금처럼 자금출처 조사하고, 양도세를 강화하는 것만으로도 제도적 장치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시장 개입에 대한 정부실패 가능성도 언급했다. 그는 "지금 정부는 '임대료 문제는 어떡하냐'고 하니까 임대료 전환율을 내린다고 하고, '실거주 여부'를 문제삼으니까 실거주 조사하겠다고 하는 등 한 번 잘못된 원칙으로 시장에 개입하고 난 뒤 모래구덩이에 빠지는 것처럼 계속 규제를 양산한다"며 "감독기구를 만들더라도 시장을 이길 순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부동산 전문가 "문제는 유동성인데 국민을 죄인 취급" 

부동산 전문가들 역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심교언 건국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는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가 있으면 안 된다"며 "정부가 너무 감정적으로 '이것만 때리면 된다, 저것만 때리면 된다' 하면서 (부동산 정책을)정치적으로 악용한다"고 말했다.  
 
심 교수는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를 만든다는 접근방식 자체에 오류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정부는 '투기꾼 몇 명이 서울 집값을 다 올렸다'고 보는데 이런 시각은 문제가 있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의 가장 큰 이유는 세계적으로 워낙 많이 풀린 유동성"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 본 주변 송파구 아파트와 주택 모습. 뉴스1

서울 롯데월드타워 전망대에서 바라 본 주변 송파구 아파트와 주택 모습. 뉴스1

 
권대중 명지대학교 부동산학과 교수 역시 정부의 접근방식을 문제삼았다. 권 교수는 "금감원의 감독·검사 대상은 금융기관인데 이건(부동산 시장 감독기구)는 결국 전국민이 대상"이라며 "이런 발상은 정부가 국민을 신뢰하지 못하고 쥐잡듯 몰아 죄인 취급하면서 통제 경제로 가겠다는 것밖에 더 되나"라고 반문했다.
 

"협회에 조사·고발권 부여…시장에 맡겨야"

권 교수는 "감독기구가 설립되면 최근 3개월, 6개월치 거래내역을 다 뒤집어보고 자급조달계획서나 통장사본, 소득증빙자료를 탈탈 털 것"이라며 "이 경우 경기가 안 좋을 땐 부동산 거래 위축이 심화될 것이고, 거래가 활발해지면 비공식 거래 선호 현상이 나타나서 주택 증여가 늘거나 주택 거래 자금을 불법으로 조성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노원구의 한 부동산에 전월세, 매매 매물 안내문이 써붙어 있다. 연합뉴스

노원구의 한 부동산에 전월세, 매매 매물 안내문이 써붙어 있다. 연합뉴스

 
권 교수는 정부가 감독기구를 만들기보단 민간에 감시기능을 부여할 것을 권했다. 그는 "회원 수 10만7000명에 달하는 공인중개사협회에 불공정·불법 거래에 대한 조사·고발권을 주고 공인중개사협회의 회원 교육을 강화해 시장 투명성을 확보하는 것이 현실적"이라며 "시장을 자율에 맡기되 문제가 생겼을 때만 정부가 개입해서 바로잡아줘야지, 시장을 감독·지휘하면서 끌고가려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