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들, 작은 평수 집 못짓게 해" 청원…강남 전원마을 무슨일

서울 강남구 자곡동 한 전원마을 신축 공사 현장. 신축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은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건축주는 1년 반 넘게 공사 진행이 안 되고 있으며 지난 9월 초 주민들과 충돌로 현재는 공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은경 기자

서울 강남구 자곡동 한 전원마을 신축 공사 현장. 신축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은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건축주는 1년 반 넘게 공사 진행이 안 되고 있으며 지난 9월 초 주민들과 충돌로 현재는 공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은경 기자

서울 강남구의 한 전원마을에서 집을 새로 지으려는 건축주와 마을 주민 간 일어난 갈등이 최근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지난 10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36년 평생 가장 억울한 이야기’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댓글이 수백 개 달린 이 글은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퍼져 나갔다. 
 
글쓴이 A씨의 주장은 이렇다. “아버지가 중소기업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은퇴한 뒤 노후를 보내기 위해 30년 가까이 소유해온 40평짜리 땅에 20평대 주택을 지으려 건축 허가를 받았다. 땅이 그린벨트에 있지만 집을 지을 수 있는 대지였기에 건축 허가가 적합하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아 지난해 초 공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주변 부자분들이 특혜 불법 허가(?)라는 이유를 대며 공사를 막았다. 구청과 경찰은 뒷짐만 지고 있다.”
 
A씨는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서도 억울함을 호소했다. 지난 14일 공개된 ‘부자분들의 집단 이기주의에 대해 엄정 처벌 부탁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청원글에는 15일 오후 6시 기준 1만5000여 명이 동의했다. 온라인 커뮤니티나 SNS에서는 ‘가진 자들의 특권이냐’ ‘무슨 억지 주장으로 정식 허가를 받은 공사를 못 하게 하는 거냐’ 등의 댓글이 달렸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비판이 일었는지, 양측의 주장이 무엇인지 살펴봤다.
 
청원글 전문 보기-클릭이 안 될 시 www1.president.go.kr/petitions/592718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서울 강남구 자곡동 한 전원마을 신축 공사 현장. 신축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은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건축주는 1년 반 넘게 공사 진행이 안 되고 있으며 지난 9월 초 주민들과 충돌로 현재는 공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은경 기자

서울 강남구 자곡동 한 전원마을 신축 공사 현장. 신축을 반대하는 현수막이 붙은 차량들이 주차돼 있다. 건축주는 1년 반 넘게 공사 진행이 안 되고 있으며 지난 9월 초 주민들과 충돌로 현재는 공사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최은경 기자

 
글에 등장하는 지역은 강남구 자곡동의 쟁골마을이다. 1972년 개발제한구역으로 지정된 이곳은 정비사업으로 취락지구가 들어서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15일 정오쯤 찾은 마을 입구에서 경비실과 각 세대 위치를 표시한 표지판이 눈에 띄었다. 골목을 따라 단독주택들이 들어서 있었다. 마을 주변 한 공인중개사는 “최근 매매가 없지만 시세는 20억원대 후반 정도”라고 말했다. 이곳에는 전원생활을 누리려는 전직 장관, 기업 회장 등도 살고 있다. 마을 안쪽으로 좀 더 들어가니 공사 중인 건물 뼈대가 보였다. 주변에는 공사를 반대하는 현수막을 단 차들이 주차돼 있었다. 한 마을 주민은 얼마 전부터 공사를 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 
 
A씨는 청원글에 “마을운영위원회가 난개발을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다음의 내용을 담은 건축 허가 반대 의견서를 구청에 제출했다”고 썼다. 
다음의 내용이란 ‘우리 마을은 최소 100여 평 대지에 최소 60~90평 건물임에도…’ ‘겨우 40평 안 되는 땅에 건축하겠다니 어이없는 무임승차다’ ‘서울시 최우수 푸른 마을의 명성에 걸맞는 쾌적하고 아름다운 주변 경관을 갖춘 최고급 주택지로서 재산적 가치의 하락은 불 보듯 뻔하다’ ‘마을의 개별 가옥과 달리 소형이라 마을 전체의 위상과 가치의 하락이 우려…’ 등이다. 
지난 15일 찾은 강남구 쟁골마을 전경. 최은경 기자

지난 15일 찾은 강남구 쟁골마을 전경. 최은경 기자

 
또 A씨는 “우리나라에 아직도 이런 이기주의가 남아있는지 몰랐다”며 “공사를 하려고 하면 누군지 알 수 없는 분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물리적으로 공사를 막는다. 차로 도로 통행 자체를 막아 공사 차량 진입을 고의로 막는 것은 물론이고 차들 사이로 힘겹게 지나가는 공사 인부분들의 진입은 온몸으로 막는다”고 주장했다. 덧붙여 “이렇게 1년 반이 넘도록 공사 진행이 안 되고 있다”고 했다. 
 
마을 주민들은 A씨 주장에 대해 “큰 집에 사는 사람이 작은 집에 사는 사람에게 뭐라고 하는 것처럼 프레임을 짠 것”이라며 “층별 면적을 따지면 기존 주택들과 큰 차이도 없다”고 반박했다. 구청에 제출한 반대 의견서 내용에 대해서는 “마을 주민들이 취락지구 형성 시 법에 따라 150평 중 50평씩 기부채납해 도로나 상수도 등의 인프라를 갖췄으니 신축 건축주도 똑같이 기부채납해야 하지 않느냐는 취지에서 한 말이지 다른 뜻은 없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건축 허가 과정에 위법 사항이 있다며 강남구청장을 상대로 건축허가 취소 소송을 벌이고 있다. “개발제한구역법 제15조에 따라 집단취락지구의 주택 수와 경계선이 정해져 있어 현재 58가구인데 A씨 아버지가 건물을 신축하면 사실상 59가구가 된다. 이를 변경하는 국토교통부령 없이 구청이 허가를 내준 것은 위법”이라는 등의 이유에서다.   
마을 주민들이 차로 공사 차량 진입을 막는다며 건축주 측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사진.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마을 주민들이 차로 공사 차량 진입을 막는다며 건축주 측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사진.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주민이 올린 반박글 전문 보기-클릭이 안 될 시 www.bobaedream.co.kr/view?code=freeb&No=2088018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강남구청에 따르면 A씨 아버지인 건축주는 2017년 구청에 건축허가를 신청했다. 구청은 이 땅이 개발제한구역이라도 지목(地目)이 대지라 신축이 가능하지만 1986년 건축물이 멸실될 때 이축(移築)이 이뤄졌다고 보고 허가를 반려했다.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개발제한구역법)에 따르면 건물을 철거하고 다른 곳에 이축하면 기존 토지에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없다. 
 
이어진 서울시 행정심판에서도 허가가 기각되자 건축주는 반려 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 소송을 냈고 승소했다. 이를 토대로 2018년 건축 허가를 재신청, 이듬해 구청이 건축을 허가했다.
 
마을 주민들은 “구청장이 취락지구에 접한 토지로 이축을 허가할 수 없다는 법제처 유권해석도 있다”며 “건축주가 5년 후 용도 변경해 카페로 바꾸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고 했다. 마을 한쪽에서는 또 다른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이와 관련해서는 “오래된 집을 부수고 증·개축하는 공사는 문제가 없다. 30여 년 동안 건물이 없던 땅에 신축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공사 진행을 막았다는 A씨 주장에 대해서는 “정당하게 집회 신고를 했다. 허가 과정에 위법성이 있다고 판단해 건축주에게 관련 재판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지만 공사를 강행해 물리적으로 막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건축주 측 용역 20여 명이 마을 곳곳에서 주민들의 통행을 막고 위협한다며 마을 주민 측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사진.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건축주 측 용역 20여 명이 마을 곳곳에서 주민들의 통행을 막고 위협한다며 마을 주민 측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사진. [사진 온라인 커뮤니티]

 
한 마을 주민은 온라인 커뮤니티에 A씨 글에 대한 반박글을 올리기도 했다. A씨 아버지가 전문 부동산업자이고 자연녹지지역에 해당 건축 허가가 나온 것을 법적·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으며 마을 주민들이야말로 평생을 건실하게 일해 온 중산층이 대부분인데 고통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다. 주민들은 A씨 아버지와 강남구청 공무원 간 부정행위가 의심된다며 담당 공무원을 상대로 직무유기 등 혐의로 소송을 내기도 했다. 
 
A씨는 15일 중앙일보에 “상대방 측이 쓴 반박글을 보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거짓말을 섞어가며 가족을 피눈물 나게 한다. 억울한 마음으로 글을 썼는데 평범한 아버지를 땅 투기꾼으로 모는 태도에 할 말을 잃었다”고 말했다. 
 
건축주 측은 마을 주민들을 상대로 공사방해 중지 가처분 소송 중이다. 건축주 측은 “구청과 모종의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이며 마을 주민들이 낸, 건축허가처분 취소 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건축허가 효력을 중지해달라는 집행정지 신청도 이미 기각됐다”고 말했다. 
 
강남구청은 이 건과 관련해 “소송 중인 사안이라 특별히 밝힐 입장이 없다”고 했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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