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러나라"→"갑자기 왜"→"자르겠다"…인천공항 사장 전말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16일 인천공항공사 대강당에서 정부의 사장 해임 추진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뉴스1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16일 인천공항공사 대강당에서 정부의 사장 해임 추진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뉴스1

“자진 사퇴를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국토교통부 고위관계자)
“아니, 갑자기 제가 왜 나가야 합니까? 저도 나갈 때는 사퇴할 명분이나 퇴로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어렵다고 하시면 해임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국토부)
“직고용 문제도 있고 코로나 사태로 공사도 비상경영 중인데, 꼭 그만둬야 한다면 일을 마무리한 뒤 내년 상반기 정도로 했으면 합니다.”(구 사장)
 

“자진사퇴 요구받아…해임 건의까지 일주일”

구본환 사장은 이달 초 서울 모처에서 국토부 고위관계자와 식사를 하다가 “갑작스러운 요청을 받았다”며 이 같은 내용을 공개했다. 국토부가 구 사장에 대한 해임을 추진하는 사실이 알려지자 16일 인천국제공항 청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자청한 자리에서다. 구 사장은 “당장 자진사퇴하는 건 전혀 생각할 수 없었고 여기까지 오게 된 건 불과 일주일밖에 안 걸렸다”며 “(내년 상반기 사퇴라는) 절충안까지 제안했지만, 그것마저도 (국토부가) ‘노(NO)’를 했다”고 했다.
 
구 사장은 지난 6~7월 2개월간 국토부 감사를 받은 결과를 지난 14일 등기로 받았다고 밝혔다. 국토부의 해임 건의 사유는 ‘국정감사 당시(‘19.10) 태풍 위기 부실 대응 및 행적 허위 보고’와 ‘기관 인사운영의 공정성 훼손 등 충실의 의무 위반’이다. 그런데 구 사장이 기자회견에서 가장 먼저 밝힌 건 두 가지 사유에 대한 해명이 아닌, ‘직고용’ 문제였다.
 

“해임 진짜 이유? 상상에 맡기겠다”

그는 자진 사퇴를 요청받은 상황을 밝힌 뒤 “직고용 관련 소감을 말씀드리겠다”고 입을 열었다. “보안검색요원 직고용 발표 후 노조원들이 난입해 하마터면 압사 사고가 날 뻔 했다. 그 후로 3개월간 통원치료를 받았는데 (노조뿐 아니라 관계기관으로부터도) 따뜻한 위로나 격려를 받아본 적 없다”는 하소연이었다. 구 사장은 최근 인천지방검찰청에 당시 충돌했던 노조 집행부 5명을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고발했다. 다만 ‘해임을 추진하는 진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상상에 맡겨두겠다”고 말을 아꼈다.
 
인천국제공항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 후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약속한 첫 현장이다. 문 대통령은 당선 다음 날 첫 외부 공식일정으로 인천공항을 찾아 “인천공항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시작으로 공공부문ㆍ민간기업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진통은 컸다. 공사가 당초 약속했던 정규직화 대상자 일부를 ‘자회사 정규직화’가 아닌, ‘공사 직고용’으로 진행하면서다. 정규직뿐 아니라 정규직화 대상자들까지 반발했다. 논란은 ‘공정성’ 화두로 이어졌다.
 

일각선 “구 사장 ‘인국공 사태’ 희생양 가능성”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16일 인천공항공사 대강당에서 정부의 사장 해임 추진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뉴스1

구본환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이 16일 인천공항공사 대강당에서 정부의 사장 해임 추진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뉴스1

구 사장이 노조와의 전면전을 불사하며 직고용을 진행한 건 나름대로 정부에 ‘충성심’을 보인 것 아니겠냐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구 사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노조와의 충돌로) 다치고 심적으로도 어려운 상황인데 따뜻한 위로는 커녕 나가라고 하니까 당혹스러웠다”고 했다. 특히 “정규직 전환은 정책적으로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것도 사실”이라며 “정규직화는 끝났지만, 직고용은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구 사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부는 구 사장의 자진사퇴를 원했지만, 구 사장이 이를 거부하자 해임 건의 카드를 꺼낸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그 절차와 통보 방식이 통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 관심이 컸던 인국공 사태의 장본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논란이 컸던 사태를 꼬리 자르기 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는 이유다. 국토부 전직 관료는 “구 사장이 ‘인국공 사태’의 희생양이 될 가능성이 크다”며 “얽히고설킨 정책 문제를 풀기보다 사장 ‘해임’ 카드로 사람들의 불만을 잠재우려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래도 꼬이고 저래도 꼬이는 사장 해임 

국토부의 해임 건의 사유가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법에 명시된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이하 공운위)의 해임 사유(수사 및 감사 결과나 경영평가, 비위 등)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구 사장도 해임 건의 사유에 대해 “분명히 소명된 사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법인카드 사용내역에 대해선 “지인들과의 식사 자리에 잠시 들러 법인카드를 주고 다음 날 돌려받았다가 그마저도 오해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해서 취소 후 현금 결제한 것”이라고 했고, 인사운영 문제와 관련해선 “기관 인사운영에 대해 감사받은 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직원 한 명을 직위 해제한 데 대한 감사일 뿐이었고, 그 결정 역시 인사위원회의 토론을 거쳐 자연스럽게 결정된 것”이라는 것이다. 구 사장은 공운위에서 자신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공운위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정부의 스텝은 이미 꼬일 대로 꼬인 상황이 됐다. 해임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정부가 공공기관 CEO를 무리하게 해임하려고 했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는 셈이 된다. 반면 해임을 결정한다면 대통령의 1호 공약 이행에 문제가 생기니 토사구팽(兎死狗烹·사냥하러 가서 토끼를 잡으면, 사냥하던 개는 쓸모가 없게 되어 삶아 먹는다)한 것 아니냐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되어서다. 국토부 관계자는 “해임 요건에 해당할지 아닌지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에서 판단할 것”이라며 “공운위 절차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참나...” 국토부 차관 문자메시지 포착 

한편 이날 구 시장의 기자회견에 대해 손명수 국토부 2차관이 지인과 나눈 문자메시지가 포착됐다. 손 차관은 “인국공 노조들이 사장 해임이 공론화되면서 이를 이유로 정규직 전환 관련 노사전(노사정) 컨설팅과 협의에 응하지 않고 지연 전략으로 가려고 할 겁니다. 걱정이네요”라는 메시지를 받고 “고용노동비서관실과 협의하면서 진행해야지”라고 썼다. 또 “구 사장님이 해임 건의 사유에 대한 본인 입장을 말씀하실 텐데 고용비서관실에서는 정규직 전환 정책 관련해 폭탄 발언하실까 우려하고 있다”는 메시지에는 “참나….”라고 답했다.
 
추인영·염지현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