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단체 바로 허가취소한 정부, 정의연엔 "재판 뒤 판단"

“피고인들이 보조금 등을 부정수령한 사실은 의문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감사원장은 이번 사안을 엄중히 감사해주길 바란다”
‘일본군 성노예 문제 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전직 이사장인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불구속 기소되자 사법시험준비생모임(사준모)은 곧바로 감사원에 감사청구서를 제출했다. 정의연이 그동안 부정한 방법으로 수령한 보조금을 환수 조치하라는 게 감사청구서의 핵심 내용이다. 
 

유령 학예사 내세워 보조금 수령…일부 단체 ‘엄중 감사’ 요구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회의진행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환경노동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회의진행을 바라보고 있다. 뉴스1.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보조금법)에 따르면 보조금은 '국가 외의 자가 행하는 사무 또는 사업에 대해 국가가 이를 조성하거나 재정상의 원조를 하기 위해 교부하는 돈'이라고 돼 있다. 혈세를 집행하는 데 대한 무거움과 함께 부당하게 유용할 경우 엄중 처벌이 뒤따를 것이란 경고의 의미도 함께 담긴 셈이다.
 
검찰에 따르면 윤 의원 등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운영하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법률상 박물관 등록 요건을 갖추지 못했는데도, 마치 학예사가 실제 근무하는 것처럼 허위 신청해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로부터 총 3억6750만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수령한 혐의를 받는다. 또 2014~2020년까지 여성가족부의 '위안부 피해자 치료사업', '위안부 피해자 보호시설 운영비 지원사업'에 인건비 보조금 신청을 하는 등 7개 사업에서 6500여만원을 부정 수령한 혐의도 받고 있다.
 
검찰 수사결과 발표 이후 유관 부처·지자체가 여론의 요구에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재판 결과에 따라 정의연에 지급한 보조금을 취소하거나 반환할지 결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국회에서 “보조금 집행 중 위반이 있으면 엄격하게 조치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모두 일정한 전제가 달렸다. ‘재판 결과에 따라’, ‘위반이 있으면’이라는 단서다.
 

“재판결과 보겠다”는 정부, 수사중인 탈북단체는 '법인 취소' 

통일부는 지난 7월 17일 대북전단 및 물품을 살포한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 2곳의 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큰샘' 모습. 연합뉴스.

통일부는 지난 7월 17일 대북전단 및 물품을 살포한 탈북민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 2곳의 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했다. 사진은 이날 오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큰샘' 모습. 연합뉴스.

정부가 행정을 집행하면서 신중한 기조를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과거 사건과 비춰보면 정부 대응에 상당한 온도차가 느껴진다는 점이다. 지난 6월 불거진 탈북자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사건이 한 예다. 
 
당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함과 동시에 서울시·통일부·여가부 등에 협조공문을 보내고 “법인 설립 허가 목적과 다른 해당 단체에 대해 자체 조사 등을 통해 허가 취소, 보조금 환수, 수사 의뢰 및 고발 조치를 해달라”고 강하게 촉구했다. 이 지사는 당시 "남북한 갈등 유발과 국가 안보를 해치는 이적 행위를 반복적이고 지속해서 실행하고 있는 단체들"이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현재도 경찰 단계에서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재판 결과에 따라’라는 단서는 언급되지 않았다. 7월17일 통일부는 경찰 수사 중인 탈북자 단체 자유북한운동연합과 큰샘 두 곳의 법인 설립 허가를 취소했다. 통일부는 당시 입장 자료를 내고 “두 법인의 소명 내용과 관련 증거자료를 종합적으로 검토한 결과 민법 제38조의 법인 설립허가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최종 판단했다”고 밝혔다. 중앙정부가 민법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음을 시사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 정의연 보조금 부정수령 사건에 대한 정부·지자체 대응은 다르다. 서울시는 지난 15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검찰 측에서 학예사 근무 허위 등록에 따른 서울시 보조금(1억5000여만원) 부정 수령에 대한 부분은 잘못됐다고 지적했다”면서도 “현재는 학예사가 채용돼 근무하고 있다. 보조금 지원 부정은 법원이 판단하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조금의 예산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는 ‘중앙관서의 장은 허위의 신청이나 기타 부정한 방법으로 보조금을 교부받은 때는 교부 결정의 전부 또는 일부를 취소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전문가 “통상적인 절차 맞지만, 서울시 책임도” 

 더불어민주당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관련 사기·횡령·배임 등 8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윤미향 의원의 당직과 당원권을 모두 정지하기로 16일 결정했다. 사진은 같은날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모습. 뉴스1.

더불어민주당이 정의기억연대(정의연) 관련 사기·횡령·배임 등 8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윤미향 의원의 당직과 당원권을 모두 정지하기로 16일 결정했다. 사진은 같은날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모습. 뉴스1.

이와 관련해 전삼현 숭실대 법학과 교수는 “서울시가 보조금 교부를 승인했다고 해서 신청 당시 있었던 하자(근무하지 않은 학예사를 근무한 것처럼 꾸민 것)까지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며 “서울시가 승인 전 이를 확인하지 못한 것은 임무의 해태(책임을 다하지 않음)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익명을 원한 한 국립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향후 보조금 교부 결정을 취소하는 것은 재판의 대상은 아니지만, 지급한 보조금을 환수하는 경우는 유·무죄를 따지는 형사재판과 별도의 행정소송을 거치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여기에 환수 조치가 잘못 집행됐을 때의 번거로움까지 고려하면 법원의 판단을 보는 것은 통상적 처리 방식에 크게 벗어난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라고 말했다.
 
세금 집행의 엄중함과 행정 집행의 신중함. 모두 중요한 가치지만 이번 사안에서도 중요했던 건 사안을 처리하는 균형 잡힌 태도와 일관성이다. 여권 인사가 포함된 사건에선 지극히 신중한 태도를, 탈북자 단체가 연루된 사건에 대해선 정부 재량을 총동원해 공격하는 건 적어도 일관성 면에서 맞지 않는 처사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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